존 윌리엄스
계획을 세우는 건 어렵지 않다. 이유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정답을 끼워 맞춰 그럴듯한 서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어긋남을 묘사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삐그덕 대는 대화가 사랑이라고, 어떻게 독자를 설득했지? 그것이 놀랍다. 특히 이디스와 사랑에 빠진 순간은 <롤 베스타인의 환희>를 읽는 듯했다.
삐걱거리고 어긋나는 순간이 삶의 본질이다. 농사꾼 스토너가 문학을 만났을 때, 결혼할 여자를 만났을 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헤어졌을 때.. 사랑의 사건은 어긋나는 대화와 이전과는 달라진 시선으로 묘사된다. 어떤 사건은 삶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현재로 회귀한다. 후회와 그리움, 잊지 못한 감정과 그 불순물이 끊임없이 현재에 투사된다.
그토록 잡다하게 뒤섞인 것이 우리의 경험이라면, 성공과 실패 따위는 삶을 평가하기에는 빈약한 단어가 아닌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해도, 그는 살아 있었다. 삶이라는 책을 만지작 거리면 흐르는 짜릿한 전율이 그 증거다.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삶이었다고 평하지만 그는 열정을 다했다. 그의 삶은 말 없는 사랑이자, 소리 없는 열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위화의 <인생>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삶 전체를 조망하는 소설은 내가 노를 젓고 있는 이 강물이 어차피 바다로 향할 것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애써 계획하고 이유를 찾고 정답을 부르짖어도, 결국 수많은 어긋남을 끌어안아야 한다. 스토너는 사랑할 때 말을 잃었고 푸구이는 모든 걸 잃어 살아남았다.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내 뼈와 살로 경험한 전율을 사랑하기를, 내 삶이 어긋난 지점마다 사랑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음을 기억하기를, 때론 가혹하리 만큼 고통스러울지라도 삶이 내게 한 말에 귀 기울이기를, 소설이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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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너 >
- (전자책 p31)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 (p48)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 (p434)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 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 (p440) 이제 마흔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p459) 스토너는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p613)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681-682)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