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엔스
며칠 전 할아버지가 실종신고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누구를 신고하겠냐고 물어도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핸드폰에서 자식들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곧 아들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아버지가 쇼하는 거니 혼자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집은 어두운 원룸이었다. 택배로 받은 베지밀이 쌓여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삶을 찾으라고, 외로울 땐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라는 메시지를 몇 번이고 보냈다.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글귀들에도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되었는지 물었다. 집도 구해주고 음식도 보내주고 아들의 의무를 다하느라 힘든데 아버지의 푸념까지 들어줘야 하니 살 수가 없다는 아들의 원망 섞인 메시지가 소리를 지르는 듯했지만, 할아버지는 듣지 못했다. 다만, 사는 게 서글프고 외롭다 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어쩌면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뿌린 것도 없이 뒤늦게 자식들의 애정을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소중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나. 최선의 삶을 사는 줄 알았지만 잘못된 삶이었더라는 회의는 누구나 한다. 그것이 비단 할아버지만의 과오는 아니다.
최선의 선택이 모두를 구원하는 것도 아니다. 한평생 아들 하나 잘 키운 보람으로 살아온 엄마는 아들을 잃었다. 유서 한 장 없이, 소문 한 토막 없이, 아들은 평소 하지 않던 설거지를 해놓고 먼 땅으로 여행을 떠나 착화탄을 피웠다. 엄마는 우리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들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 했다.
결핍은, 상실은, 외로움은 죽을 때까지 인간을 덮쳐온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 살아도 세계는 나의 것이 아니다. 가족은 가장 위험한 종류의 안전망이기도 하다. 나를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죽이기도 하므로.
인간을 더 외롭게 만드는 건, 당연한 것을 경멸하는 인간의 위선이다. 외로움을 죄악시 여기는 콘텐츠를 종종 본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고 해서 생존을 중지할 수는 없는 일인데, 세상은 인간에게 왜 외롭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해명을 요구하는 건 우월한 개체의 특권이다. 우리는 곧잘 우리가 아닌 것에 정상성을 부여하고 자연발생적인 요소에 해명을 요구한다. 결핍은 죄가 아니다. 외로움도 죄가 아니다. 배고픈 이가 음식을 찾듯, 외로운 이가 사람을 찾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외로움이 악취를 풍긴다 해도, 이미 존재하는 것에 해명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외로움의 정서는 극복할 수 없다. 둔감한 유형과 예민한 유형으로 나뉠 뿐, 이미 감각한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진단해 봐야 거대한 기만과 허상의 한 자락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외로운 감각에 대해 사회 적응적인 선택을 갱신하는 노력 정도일 테다.
그러므로 눈감지 말라. 지금 내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서 영원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오만은 떨지 말자. 제대로 보자.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이 퀴퀴한 외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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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책>, 다이앤 엔스
외로움은 친밀감을 향한 갈망이 충족되지 않는, 누그러지지 않는 욕망이다. '외로움의 갈망은 대개 허기만큼이나 물리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외로움의 의미를 고민할 때 육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51)'
육체적 감각과 함께 맥락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자발적인 고독을 필요로 할 때조차도 주변 세상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고독을 옹호하는 것은 고유한 내면의 삶을 가진 독자적 개체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것(102)'인데, 인간은 고독한 작업을 할 때도 타인이 일궈놓은 지식, 문화의 공적 맥락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근본적이고 실존적 차원에서 언제나 혼자인 동시에 함께(110)'인 셈이다.
책에서는 외로움의 맥락으로 이성애 커플 중심의 사회적 맥락, 폐쇄적인 가정에서 여성이 전적으로 육아의 책임으로 고립되는 문화적 맥락, '일상적 에로스'를 박탈당한 디지털 환경과 인간의 창의성을 식민지화 한 지식노동으로의 이행 등을 말한다. 우리는 외로움을 질병으로 치부하는 세태에서 벗어나, 복잡다단한 삶의 영역에서 외로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p181 우리는 서로에게 민감하고 서로에게 반응하며 소통하고 교감하는 영혼들이다.
p193 우리는 존엄을 탐한다. 조금이라도 존엄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어떻게든 그 기회를 움켜잡는다.
p200 내가 외로웠던 것은 다른 이들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세계가 없었고 나의 존재가 중요한 공적 세계, 내 목소리가 중시되는 공적 세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p268 돌봄의 조건은 접촉과 애정, 온정이다.
p279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은 타인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랑받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의 실체를, 즉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성격운 이루는 생각과 느낌, 선택, 행위의 총합을 알(280)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p284 (내 인생은 한 편의 농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삶을 목격하고 매일 밤 나와 그 삶에 관해 얘기하는 건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p285 목격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