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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개의 공론장 Dec 09. 2020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형성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N개의 공론장⑧] 공론장 기록 

공론장 일자: 2020년 10월 25일, 11월 8일

장소 :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주최 : 정성원 · 청년허브

기록 : 김미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책'을 지우고, ‘공간' 혹은 ‘도시'를 집어넣으면 어떨까요? 우리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이 도시에 있던가요? 그러나 이 도시가 우리의 발목을 잡거나, 혹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내칠 때도 있지 않던가요? 대도시 서울에서 지난 근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공간 형성은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기치로 하는 가운데 많은 가치들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사라져 가는 마을들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또 다른 공간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공간을 소유와 자본의 관점이 아닌, 개인성을 담보하는 가운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공간의 개념으로 정의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예술가와 시민, 도시와 교외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공간의 꼴을 상상하는 데 함께해주세요.

왼쪽부터 1차, 2차 공론장 진행사진



1차 공론장 발제 : 공간 형성과 활용의 다른 가능성


1차 공론장에서는 공간 형성과 활용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이번 공론장을 기획한 정성원 발제자의 소회와 목표를 듣고 아래와 같은 논의를 나누었습니다. 


발제 
1. 본 공론장을 시작하기까지_공간 형성과 활용의 다른 가능성(정성원)

2. 건축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전체를 향해 열려 있는 개별 건축 공간의 형성(강지영)


발제 및 대화 요약 

공간의 계량할 수 없는 측면에 대해서 논의할 때에는 사람과 공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논의되면 좋을 것 같다.  

그에 앞서 계량할 수 있는 공간과 그 외에 공간에 대해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무 아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을 때 그 약속 장소의 영역이 그림자까지인지, 나무가 보이는 영역까지인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바라보는 비 물리적 공간에 대해 대략적인 정리를 하고 싶다. 건축에서는 흔히 '기둥과 기둥 사이의 지붕 밑을 공간이다' 라고 정의하고 이를 물리적 공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 물리적인 공간의 경우에는 조명에 의한 빛의 반경과 같이 하나의 기준에 의해 생기는 반경[인식반경] 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한다. 인식의 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공간에 사용된 재질에 따라, 구조물이나 오브제에 따라 다른 공간으로 느껴질 만큼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요인들로 공간은 다르게 형성되어진다고도 생각해왔다.

   

현재 공연 준비 중인 문경의 현장(시멘트 공장)에는 담장이 없다. 그곳 사람들은 40-50년을 함께한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것 같다. 어렸을 적의 경험으로 되짚어볼 때 대문을 하나 공유한 채 4-5가구가 함께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의 나는 나의 방을 넘어 대문을 공유하는 모든 공간을 나의 집이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문경에서도 어르신들이 본인의 집에서 이웃의 집으로 유유히 넘어가신다. 담이 없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이웃의 집도 자신의 집으로 인식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공유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고 있다.

   

비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인식의 반경에 대한 지적이 흥미롭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창이나 대문과 같은 특정한 건축적 요소 혹인 장소나 개인의 기억에 의해 인식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사물에서 시작되는데, 캐리어와 커튼이 그렇다.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현재 거주하는 곳은 임시거처같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짐을 놓을 수 있는 곳이라면 무리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집이라는 개념도 점차 변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을 집으로 인식해오다가 캐리어와 같은 개인의 짐을 놓을 수 있고 커튼으로 나의 공간을 나눌 수 있다면 집으로 인식하게끔 바뀌었다.

   

집이 무엇인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여러 형태의 거처를 경험하고 하물며 부모님의 집에서도 나의 공간이 사라지기도 했고, 1년간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게스트하우스와 한인 민박 등에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이 경험들을 통해서 현대에는 '집'이라는 것에 정의를 내리거나 기존의 정의된 '집'의 필요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개인의 공간이 필요하면 카페가 있고 하루 묵을 곳을 제공하는 서비스 또한 많이 있다. 그래서 집을 규정하는 특징이 무언지 모르겠다. 여행을 하고 귀국해서 동네의 역에 내렸을 때 안도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 이 경험으로 중요한 것은 집이 아닌 심리적 안정을 주는 커뮤니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현재 거주하는 신도시의 모든 부분에서 공간의 역사를 느낄 수 없는데, 오로지 선산에서만 느낄 수 있다. 이것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으며 또 선산에 오르면 새로운 기분이 환기된다. 

   

‘프라이버시 속에서 자아가 형성이 되고 이것이 곧 공적 삶의 토대가 된다’라는 명제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활용은 어떤 것일까?

   

개인적인 공간이 공공성을 띠어야 할 때 충돌 지점이 있다. 예로 든 스미요시의 주택의 경우 개인의 공간과 나뉘어 공유 공간으로 활용되는 중정이 집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의 개인성과 공공성의 풍요로움을 담보하는 공간일 텐데, 이 중정이 만약 도로와 만나는 곳으로 옮겨진다면 그 역할은 바뀔 것이다. 이를 융합하여 활용하는 일례로 마당을 들 수 있다. 이는 온전히 개인성을 위한 것도 공공성을 위한 것도 아닌 외부와 내부의 완충지대가 된다. 개인성과 공공성은 나뉘어서 그 목적에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야만 궁극적으로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고, 이 두 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만족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을까.

   

창문에 대한 정치성 주제로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를 통해 프라이버시의 영역과 공공성의 영역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프라이버시를 나의 의지로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면 결국 개인성과 공공성은 공존하는 셈이 된다. 창문은 공간의 소유자인 나의 의지로 열고 닫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점이 문과는 다르다. 문은 안과 밖에서 모두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집에서 방문이 아닌 창문으로 부엌의 어머니와 교류한다. 나는 이게 좋다. 같은 방식으로 개인성과 공공성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네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생태계 교통마을이라는 도시재생사업에 3년간 참여한 경험이 있다. 공터와 낮은 주택이 많았고 무언가 기획해볼 수 있겠다고 느꼈다. 실제 공간의 활용이 어떠한지 알아보니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빈 공간이 주변의 여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고 느끼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1차 공론장 토론 요약 

나는 해방촌 근처의 주민으로, 이태원 2동에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곳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태원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면 대부분은 이태원1동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태원1동이 강력한 상권을 갖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해방촌은 소외된 채 주거의 기능만으로 표상화되어 있었다. 나뭇가지형 도로가 갖추어진 환경이 자생적인 공동체의 발생을 유도하는 것 같다. 골목이 많고 이것이 완충지역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해방촌에는 이런 곳이 많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와 상충하게 될 때 잔가지를 치는 형식으로 행정이 진행된다. 그래서 완충지대는 얼마나 남았는지 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된다. 

도시재생에 관련하여 기획과 운영 및 교육 일을 하고 있다. 주민과 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지원센터의 가장 큰 단점은 관과 주민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함에도 지원센터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성격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행정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는 점이다. 재생사업 정책에 따라 생성되고 난 후 2-4년 정도의 기간 안에 뚜렷한 결과와 과정도 없이 사라지는 식으로,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문래동의 경우는 공업지역이 1980년대, 그 역할을 잃어가면서 비어 있는 공간이 생기기 시작해 예술가들이 모였다. 6시 이후의 한적해지는 동네는 예술가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되었고 그 공간 안에서 그들의 연대가 강해졌다. 도시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상업시설이 들어섰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의 공동체를 와해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므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문래동, 을지로, 상수동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크게 받은 대표적인 곳이다. 행정적 측면에서 예술가들의 표면적인 이미지를 악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지점이 아쉽다. 예산 측면에서도 공공미술, 공공조형 등에 예산을 많이 책정하나, 실제로 예술가가 받는 금액은 약 10% 정도로 그 비중이 높지 않다. 

자산화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즉 관이 공간을 만든 후 주민에게 이양한 후 서서히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주민들에게 소유권이 생기므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소유하고 우리가 운영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간단한 사례로 강진구의 여러 협동조합이 자본을 모아 건물을 매입하여 그 지역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더라도 그 영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재생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는 자연스러운 형태에서의 생명력을 갖고 있는 공간을 인위적으로 정돈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재생의 개념이 바뀌어야 함과 동시에 새롭게 그 공간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왜 그곳에 들어가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될 것이다. 이제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가니 오늘의 논의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오늘 공간 자체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 나의 공간과 타인과 관계되는 공간을 이야 기 했고, 실제 사례에 의해 열린 공간과 완충지대가 현실의 문제와 부딪혔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되짚어보았다.   



2차 공론장 2020년 11월 8일

1차 공론장에서 건축가 관점에 주목했다면, 2차 공론장에서는 공연예술가 관점에서 바라본 공간의 형성과 활용을 논의했습니다. 건축이 아닌 인접미술 전공자들이 바라보는 공간 개념을 나누어보는 기회였습니다. 1차 공론장은 발제를 모두 마친 뒤 토론을 진행한 반면, 2차 공론장에서는 1차 발제와 2차 발제를 나누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발제 1. 인접예술가(조형예술) 관점에서 바라본 공간의 형성과 활용(이도현)

처음 공론장을 기획했던 7~8월에는 서울 삶을 중점적으로 인식하다 보니, 도시에서의 공간 형성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이후 지역에서 거주할 기회가 생기니 공간 문제는 도시에 국한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를테면 외화 기술 지원 항목으로 UN에서 3대 사업을 선정할 즈음, 한국의 교외 지역에 지어진 시멘트공장이 있는데, 지금은 산업시설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개인성을 담보하면서 공동체성을 촉진하는 공간 활용에 관해서는, 특정 도시/마을 단위에 국한하지 않고, 비도시 교외 지역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공연예술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공동체의 과거를 나누게 하는 하나의 장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활기 잃은 지역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같이 이야기 나누게 하는 예술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공간에 누적된 시간들을, 방문자들이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버려진 공장의 넓은 공간을 배경으로, 스무 명 정도 되는 어린이들이 그 공간의 역사를 담은 노래를 합창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이들의 합창을 뒤로, 배우들이 현장 연극을 벌이는 것도 가능하겠죠.  그의 발제 뒤로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토론 1. 주제에 관한 자유 대화 

한 공간의 이야기를 내러티브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기획은 있는 그대로 공간을 잘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공간에 압축된 시간은 머물렀던 사람들의 시간이기에, 최대한 편집/가공하지 않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각 부지를 따라 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이야기가 흘러가게끔 정보를 배치하려고 해요. 어두운 공간에서는 영상으로, 자연광이 충분한 공간에서는 퍼포먼스로 이들의 역사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휴공간을 다른 용도로 쓰려는 시도가 많은데, 공간 자체를 보존하려는 그 역사를 소개하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공간에서 세대적 통합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도시 삶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지역에서부터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정착한 젊은 외국인들과 여기 있는 나이 든 한국분들 사이에 벽이 또 있습니다. 어떤 경계를 허무는 것이 필요할 텐데, 여러 방식이 고민됩니다. 커뮤니티라는 것은, 공동체성을 추구하되 개인성을 억압해서는 안 되는데, 많은 지역이 어떤 개인, 소수집단의 개인에 대한 반감과 배제의 모습을 보이기에 복잡합니다.   


우리 주변에 잊히거나 폐기된 공간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마포 비축기지가 많이 생각이 났는데요. 거기도 잘 재생된 거냐라고 물어보면 반은 잘하고 반은 못했다는 느낌이지요. 대중들에게 얼마나 밀착되어 느껴질지 궁금합니다. 정책적으로 돈 들여 만든 탱크 전시공간 같은 것은 공간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방 가면 제철소 같은 규모가 큰 산업시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거대한 공장을 중심으로 가구가 모이고, 슈퍼와 각종 생활시설들이 들어오니까요. 공간에 쌓인 역사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예요. 기존 공간이 시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적인 역사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됩니다.   


새로운 분들이 와서 활용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뼈대는 하나의 단체가 관리하되, 나머지 단체가 침투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외국인 노동자분들도 그들의 시간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들의 노동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이기에,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타자가 기존 공간에 들어왔을 때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각자의 이해관계를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제 2. 공연예술가·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본 공간의 형성과 활용(정성원) 

피에르 위그의 작업을 보면서 어떻게 조형예술가가 미생물학 등 예술 밖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공간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그 예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가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아람 바르톨의 작품을 통해서는 놀이와 같은 연출로 잠깐이지만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점이 그랬지요.   


해외의 경우 공공예술을 위한 공간 자원이 많고 이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사회 전반적으로 합의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특히 서울의 경우에는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의 제한이 있음은 물론이고 높은 임대료 등 주거 공간에 대한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피에르 위그와 같은 대지미술이나 공공미술 전시를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의 공간에서 볼 수 있다면 서울과도 잘 어울리겠다고 느꼈습니다. 또는 국내의 지방은 공간을 서울보다는 비교적 공간을 크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발표 사례와 같은 활동이 활발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위해선 공간과 예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필요가 결핍되어 발생하는 문제보다는 예술가가 공간과 예산 활용의 주체가 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에 주체가 되지 못하고 결정자의 취향에 맞게 작업을 하게 된다면 그 작품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토론 2. 주제에 관한 자유 대화 

마곡집 공공예술 마스터플랜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들이 가장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예술은 아파트 단지나 큰 건물 앞에 놓인, 대기업에서 공공예술법에 의해 진행한 공공예술일 것입니다.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에서는 사람들의 참여, 공간마다의 콘텐츠,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등에 대해서 많이 계획해 두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예술가들은 주최자가 아닌 참여자로 있어야 했습니다. 이밖에도 공공예술 공모나 다른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로 결정권은 관이나 시행사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술가는 자신의 철학이 아닌 결정권자의 취향에 맞추어서 작업을 해야 하고, 이러한 과정으로 구현된 예술 작품을 대중이 즐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안양에서 시행되고 있는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더 원론적으로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앞서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인해 청년 예술가들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정부나 기관의 허락이 있어야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허락을 위해서 자신의 작업이 아닌 발주를 받고 일을 하는 하청업체의 태도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예술가들이 참여를 꺼리게 됩니다.   


공간의 점유와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사람들이 공간이나 예술을 공공재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가령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공공예술 조형물의 경우, 그것은 시행사가 돈을 내고 만들었으니 그들의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아무리 공공재를 표방하더라도 대중은 다가가기에 꺼려질 겁니다. 다시 말해 공공재를 사용할 때 그 마음가짐이 '그것의 사용이 허락되어 사용할 때'와 '마땅히 누구나 사용해도 괜찮은 것이므로 사용할 때'는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공공재의 점유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공론장이 마무리되어가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번 공론장의 이야기를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공감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정교하게 생각을 하고 발전을 시켜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공론장이 있기에 정교한 생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형성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리뷰 끝)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형성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사전 인터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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