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아무 일도 아니야, 나는 매일이 모여서 만들어져

by 정시소



민'은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나 무거운 눈꺼풀 깜박거렸다.


'지금이 몇 시지..' 시간 개념도 없어진 삶 속에서 오늘이 몇 시인지 며칠이 지난 지도 이젠 알 수가 없었다.


'저놈의 새끼 아직도 자나'

바깥에서 지나가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는 듣기 싫다.

차라리 이럴 땐 귀가 안 들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비개에 고개를 파묻으려는 순간 창문 밖으로 부드러운 분홍빛이 아른거렸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그 아이만 보면 나도 모르게 떠오르던 분홍빛 볼 같은, 감출 수가 없이 들켜버린 볼에 옅은 미소로 내 마음을 숨기려 노력했던 그 모습


'민'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창문가까이로 갔다. '끼익끽' 움직인 지가 오래된 듯 덜컹거리며 잘 열리지 않는 창문에서는 솜먼지가 굴러 떨어졌다.


'좀 열려라... 좀'

마음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오늘은 심지어 이 창문 하나까지 도와주지 않는다.


하얗게 퍼지는 분진들은 '민'에게 가만히 있어봐 우리가 너한테 쌓일 수 있게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에 열리지 않는 문을 신경질적으로 마구 당겼다.


'덜커덕 덜커덕‘

창문하고 싸우는 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굳어버린 창문이 살짝 움직이며 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내 세상에 닿을 수 있는 빛은 이 정도만 허용된 것 같았다.


'젠장...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좀'

굳어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잡아당기니 어느새 손가락 끝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아리기 시작했다. '할 수 있겠어? 두드린다고 무턱대고 연다고 열리겠어? 이쯤 되면 포기하지 그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말하는듯했다.


왜 좀처럼 맘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매번 꼬이게 된 거지 어릴 적엔 그러니까 희미한 기억 속에 나는 모두 잘되고 내 뜻대로 흘러갔던 거 같은데


어느새 머릿속엔 이 작은 유리문보다 매일 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아 애써 지워내던 기억들이 가득 차버렸다.


그런다고 지워질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생각들을 지워보려 했다.


'덜컥' 마지막소리와 함께 굳어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순간 호수에 파장이 퍼져가듯 열리는 문을 따라 빛이 퍼지며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를 가득 채우는 부끄럽고도 아름다운 빛이 눈동자에 담겼다. 눈에 담긴 분홍빛 노을은 점점 번져 머릿속 기억들을 밀어내고 그 안에 거대한 바다까지 물들였다.


"아름답다"

내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