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 중독된 사회의 구조적 특징

우리는 왜 A를 반복하고 확산시키는가?

by noddy

※ 이 글에서 말하는 'A'는 익숙하지만 생각을 멈추게 하는 말, 'B'는 관성을 깨고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말입니다.


우리가 A에 머무는 이유는 단지 개인의 심리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확증 편향이나 손실 회피 같은 심리적 장치들이 A에 대한 선택을 강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구조 자체가 A를 선택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 있다.


가령, 모두가 '가성비'를 외치는 것이 A라면, '이 가격을 지불할 만한 진짜 가치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B다. 이 글은 우리가 왜 B라는 질문을 점점 더 하기 어려워지는지에 관한 사회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특징1 : '확신하는 군중'이 만드는 집단적 합리화


A는 혼자서 소비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선택을 참고하며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이게 평균이니까” 같은 말 속엔, 이미 A를 따라야 안심이 된다는 집단적 합리화가 담겨 있다.


이것은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수용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가 ‘표준’이라고 부르는 것들—뉴스 헤드라인, 기업의 슬로건, SNS에서 자주 소비되는 콘텐츠는 A가 이미 대세라는 착시를 강화한다. 이로 인해 개인은 ‘다르게 보기(B)’를 시도하는 일 자체를 회의적으로 여기게 된다. 마치 자신만 그룹에서 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때 발생하는 구조적 현상이 바로 집단 사고(groupthink)다. 다수의 의견이 지배적일 때, 그 의견을 의심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쉽게 소외된다. 회의 테이블에서 “우리 고객이 정말 ‘가성비’만을 원할까요?”라는 질문이 쉽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도 B를 꺼내도록 장려하지 않는 구조, 이것이 A가 유지되는 가장 무서운 시스템이다.


특징2 : 알고리즘이 만드는 인지적 감금


우리가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하는 정보의 대부분은 누군가가 '보여주고 싶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할 것 같은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금의 알고리즘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대부분의 플랫폼은 사용자의 클릭과 체류시간, 좋아요 이력을 바탕으로 추천 콘텐츠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 추천 로직은 대부분 ‘비슷한 것 더 보여주기’를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


우리가 A를 한 번 클릭하면, 플랫폼은 A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천하기 시작한다. 알고리즘은 B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줄이고, A의 파생 콘텐츠로 우리의 피드를 채운다. 이 구조 속에서 사용자는 점점 자신이 선택한 A만이 옳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왜 다른 선택이 필요할까?’라는 질문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 감금(cognitive enclosure)이다. 마치 넷플릭스가 당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끝없이 보여주듯, 사회는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A의 파생형만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만든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이 생긴 빛나는 '좋아요' 아이콘 피드가 보인다.


특징3 : 조직과 미디어는 ‘말 잘 듣는’ A를 선호한다


조직의 구조 역시 A에 중독된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조직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구성원에게 즉각적으로 수용 가능한 해답을 요구한다. “우리 브랜드는 고객 중심이야”, “이건 데이터 기반의 결정이야” 같은 말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보다 그 말이 아무 갈등 없이 모두를 끄덕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말들이 갈등을 피하는 동시에, 깊은 사고와 재구성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점점 A의 언어로만 말하게 되고, 결국 B에 대한 질문은 조직 내에서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말’로 취급된다. 진짜 성장은 B에서 나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미디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누구나 당장 이해할 수 있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 즉 A의 서사에 집착한다. "2030의 무지출 열풍", "MZ는 감성에 열광한다" 같은 기사 제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지만, 클릭을 부르고 공유를 촉진한다. 그 과정에서 B의 관점은 ‘너무 길고 어렵고 낯선 것’으로 밀려난다.


A는 생산자도, 소비자도 편하게 만든다


가장 무서운 지점은 여기에 있다. A는 생각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다. B는 사고(思考)를 전제로 하지만, A는 반사적 반응만으로도 완결된다. 광고에서 “가성비”, “소확행”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미 익숙한 키워드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건 당신의 언어야’라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자(브랜드, 기업, 언론)는 A라는 익숙한 틀에 맞춘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자는 그것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비판도, 성찰도 필요 없다. 모두가 편하고, 모두가 기계처럼 반응하는 사회—그게 바로 A에 중독된 사회의 완성형일지 모른다.

20250709_2319_Crimson Amidst the Crowd_simple_compose_01jzqrtk4efkett0fw7c4mngd2.png


A 시스템을 인식하지 못하면, B는 결코 오지 않는다


A는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세상에 그 말밖에 없을 때 발생한다. A는 사회 전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구조 속에서만 ‘당연한 말’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구조 안에서 살고 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 우리는 A가 지배하는 구조를 인식하는가?
- 우리는 B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부터, 비로소 이 보이지 않던 구조는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구조를 볼 수 있어야만, 우리는 A를 넘어서 B로 건너갈 수 있다.

이전 04화마케팅, 관계, 일상에서의 A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