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어쩌든지 살아남아라

by nabiway 나비웨이

(경제위기) 어쩌든지 살아남아라


사울 왕조가 다윗 왕조로 넘어가는 것 같은 시대 전환기의 격동은 요즘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1990년대에는 인터넷 대중화 시대가 열렸고 2010년 전후에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 대중화 시대가 열렸고 2023년부터는 인공지능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향후에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공진화 시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과 함께 기후위기, 인구절벽이 삼중 쓰나미를 만드는 요즘이다. 개인, 기업, 국가가 모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삼중 쓰나미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하고, 어쩌든지 살아남아야 하고, 더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명문대 출신도 실업자로 만든다. 기후위기는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빼앗곤 한다. 인구절벽은 교육 분야를 비롯한 대다수 분야를 뒤흔들고 있다.


2030년쯤이면 디지털 금이라는 비트코인이 실제 금보다 더 활성화할지도 모른다. 모든 정부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대량 살포한다. 세수를 늘려 재정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돈을 계속 찍어내 통화량을 확대한다. 그 결과, 정부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돈 값은 폭락을 거듭한다. 2010년 20억 원쯤 하던 압구정아파트 시세가 2025년 100억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아파트 값이 5배 올랐다기보다는 원화 값이 5배 떨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2025년 12월 현재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38조 달러(5경 원)쯤이고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는 1조 달러(1,400조 원)쯤이다. GDP 비율로 보자면 미국 부채는 120% 수준이고 한국 부채는 50% 수준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부채가 더 확대될 것이다. 그만큼 돈 값이 삭제된다. 원화뿐만 아니라 달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인, 기업, 정부가 한사코 금을 사들인다. 금의 가치저장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보다 비트코인의 가치저장 기능이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비트코인은 2,100만 개로 고정돼 있어 금보다 더 희소하다. 금도 희소하지만 바다 밑에서도 캐내곤 한다. 정부들이 임의로 남발하는 법정화폐 곧 돈이 그 가치가 점점 희석되는 종이 쪼가리라면 비트코인은 수학적 코드와 에너지 투입에 근거한 독보적 가치저장 수단으로 평가되곤 한다. 2030년쯤이면 국내 시중은행에서도 손쉽게 비트코인을 매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에서는 시중은행의 비트코인 담보대출도, 비트코인 매매도 가능하다. 점점 더 취급 은행이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은 38조 달러쯤 되는 연방정부 부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 매년 1.2조 달러(1,700조 원)쯤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국 국채를 계속 팔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국채를 계속 매입해 줄 곳이 없다. 이렇게 미국 정부가 난감하던 차에 비트코인이 그 해결책으로 급부상했다. 비트코인을 사려면 달러 가치와 대등한 스테이블코인이 먼저 준비돼 있어야 한다. USDT를 비롯한 스테이블코인은 그 발행량만큼 미국 국채로 담보돼야 한다. 비트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미국 국채의 수요도 커지는 메커니즘이다.


비트코인 거래가 활성화할수록 스테이블코인이 더 필요하고 그만큼 미국 국채가 많이 팔리게 된다. 비트코인이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 부채의 이자 문제를 해결해 줄 일등공신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자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비트코인 친화 쪽으로 돌아섰고 비트코인을 쓰레기 취급하던 미국 금융기관들도 비트코인 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2026년은 미국 투자은행을 비롯한 기관 투자자들의 비트코인 거래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비트코인은 개인 투자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후위기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구절벽 시대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정부 부채의 지속적 확대와 돈 값의 지속적 폭락은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어찌 살아야 할까. 금이나 비트코인이라도 사 두어야 할까. 언감생심이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중에 시세를 알고 그 아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어쩌든지 살아남아야 하고 또 더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나의 희망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생의 종말과 수명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나에게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내 날을 손바닥 넓이만큼 되게 하셨으니 나의 일생도 주 앞에는 일순간에 불과하며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한 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부산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하는 일도 헛되며 기를 쓰고 재산을 모으지만 누가 가져갈지 알지 못합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의 희망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현대인의성경 시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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