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릴 적에는... 1-
"아빠도 출산할 때 분만실에 들어오시겠어요?"
"탯줄 자를 때만 들어오셔도 되고, 아예 안 들어오셔도 되고, 처음부터 같이 계셔도 돼요"
아내의 상태를 체크하러 들어온 간호사의 말에 이젠 정말 출산이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내는 유도분만을 결정하고 어제부터 스무 시간 가까이 분만실에서 출산을 위해 애쓰고 있었고 난 아내의 곁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아내와 상의해보고 말씀드릴게요"
곁을 지키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내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출산 직전에 다시 물어볼 거예요. 그때 대답해주셔도 괜찮아요"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 항상 최선이 아닐 수도 있기에 출산의 상황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괜찮겠어?"
아내는 너무나 현실적일 출산의 모습을 보고 내가 충격이나 받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나도 같이 있을게, 내가 옆에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나는 출산의 고통에 비명 지르고 몸부림 칠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히려 내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남편 분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출산을 위해 각종 기구들이 분만실로 들어왔고 나는 준비하는 동안 잠시 나가 있었다. 의사가 곧 들어왔고 잠시 후 간호사의 호출에 다시 분만실로 들어가서 아내의 머리맡을 지켰다.
이제부터 다가올 상황에 울음 터트리지 않고 아내를 응원해주리라 마음을 가다듬고 다스리고 추슬렀다.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자 아내는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고통을 겪어내었고 더는 버텨낼 수 없는 끝 같은 곳에서 극적으로 터져 나오는 의지가 아기를 세상으로 조금씩 밀어내었다.
의사가 이제 거의 다 나왔다고 하는 순간. 마치 차원의 문을 통과해 이 세상으로 건너온 듯 아기는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갑자기 툭하니 커다랗게 나타났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가위를 건네주었고 나는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아기는 아내의 품에 안겼다.
아내는 울었고 나는 얼떨떨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기다려왔던 아기가 분명했지만 태지와 피로 범벅이 된 첫 모습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계속 울어대는 아기 덕에 낯선 감정은 금세 뒤로 물러나고 우선 아기를 달래야 한다는 사명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아기의 태명을 부르며 부드럽게 달래 보려 애썼다. 그래도 울음소리는 여전히 크게 계속되었다. 나는 간호사가 일러준 대로 아기의 작디작은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밀어 넣어보았다. 그러자 아기는 내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계속해서 울었다.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생긴, 그리고 생기게 될 모든 울음은 내 책임임을 아기와 잡은 손을 통해 약속해야만 했다. 나는 이제 아빠가 되어야 했다.
그래도 분만실에서 생각처럼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텼다.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건 잘 감췄다.
-2019.12.07 튼튼이 태어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