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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Apr 10. 2022

노래 못하는 아이돌

가수니까 노래를 잘해야지?

틈나는 대로 유튜브를 보는 편인데 아이돌 영상도 주된 관심사 중 하나다. 보다 보면 아이돌들이 라이브로 무대를 소화하는 영상 하단 댓글에는 가창력에 대한 평가가 많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니 실력에 대한 반응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는데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아이돌이 꼭 노래를 잘해야 하나?'이다.



'아이돌을 가수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치더라도 가수는 꼭 노래를 잘해야 하나?', '아이돌이 꼭 노래를 잘해야 하나?'의 삼단논법으로 간다.



아이돌을 가수라고 할 수 있나?



이후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지만 일단은 가수가'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친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돌 멤버들은 가창력이 천차만별이다. 이들 중에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은 '탈아이돌' 등으로 불리며 아이돌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작곡 실력 등 나머지 능력들은 논외로 한다). 일단 여기서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는 '가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통상 아이돌은 가수보다 노래 실력이 부족한 게 당연한 것으로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에 더하여 아이돌 그룹 개개인들은 '메인보컬','메인댄서','래퍼' 등으로 각자 맡은 포지션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메인보컬을 제외한 댄스나 랩(비공식적으로는 비주얼 담당과 예능 캐릭터까지)을 담당하는 멤버들은 가창 능력 면에서 다소 처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아이돌(우상)이라는 용어에서부터 이미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기보다는 무대와 방송 등 여러 공개활동을 통하여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고 사람들의 인기를 먹는 '종합 엔터테이너'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가수는 꼭 노래를 잘해야 하나?



가수라 함은 노래를 부르고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리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려니 다소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노래를 잘한다 못한다 구분하는 것이 꽤나 주관적인 부분이라 선뜻 실력을 가지고 어떻게 경계를 나누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면 '일반인''직장인''선생님'등등의 타이틀을 달고 무시무시하게 노래를 잘하는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본업이 가수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웬만큼 노래 잘한다는 평범한 사람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것'만도 못한 가창력을 가진 경우 또한 흔하다. 이때 어느 정도 기준선을 가지고 '가수'와'비가수'로 구분해야 할까?



의사처럼 면허가, 회계사처럼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자의 경우 몇 옥타브 이상 고음이 가능하고 소리에 공기를 몇% 섞는 소리를 낼 수 있어야 가수입니다'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와 역시 가수다 노래 정말 잘해", "저게 가수냐? 노래 정말 못 들어주겠다"라는 주관적인 평가는 듣는 각자들이 할 수 있겠지만 노래 실력을 가지고 가수와 비가수를 구분하는 건 실체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가수의 본분은 노래인데 당연히 노래를 잘해야지,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는 것은 노래를 듣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수든 연예인이든 이들은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얻는 것이 본질이자 본분이고 노래는 그 수단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아이돌과 자동차 영업사원을 비교해 보자. 아이돌의 '가창력'은 영업사원에게 있어 '화술' 정도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의 인기(매출)는 자동차 판매량(실적)이겠다. 자동차 영업사원의 본분은 차를 파는 것이고 제각각 능력에 따라 판매량은 천차만별이다. 차를 잘 팔든 못 팔든 이들은 영업사원이다. 여기서 '영업사원이라면 당연히 말을 잘해야지'라는 말이 의미가 있을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국인 직원이 더듬더듬 한국어를 하면서 판매왕이 될 수도 있고 수화를 하든 고객 앞에서 말 한마디 없이 춤을 추든 수단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즉 말을 잘하든 못하든 어쨌건 차를 많이 팔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기 가상의 인물 A가 있다. 그는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려지고 보호시설에서 자랐다. 신체적 불편함으로 인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그는 자신과 비슷한 여건의 환자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어쩌다 누군가에 의해 A가 노래를 하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가고 인기를 얻어 가요 무대에 오르게 되고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하게 된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A가 부르는 노래에 실력을 따지자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대에 감동을 받고 그의 음원이 차트에도 진입한다. A는 가수인가 아닌가? (노래 못하는 아이돌 멤버들의 실력이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 정도다'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는 없기 바란다). 노래 실력만이 아닌 자신이 내는 [생산성]에 따라 인기를 얻고 소득을 올리는 것이고 결국 시장논리라는 얘기다.



아이돌이 꼭 노래를 잘해야 하나?



직전 문단에서 언급한 [생산성]. 가수가 낼 수 있는 생산성이 반드시 가창력뿐일까? 하물며 가수와는 다른 카테고리에 묶여 있는 아이돌에게는 날카로운 칼군무, 독창적인 음색, 아름다운 외모, 가슴 뭉클한 스토리, 일상 영상에서 비치는 친근한 모습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매력을 생산성으로 치환하여 자신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곧바로 도태되는 냉혹한 시장이다.



나는 미모의 여자들을 예술작품처럼 생각한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분들이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만족감을 얻는다. 건축에 심취한 사람들이 미려하게 설계된 건축물에 감탄하고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슈퍼카의 디자인에서 희열을 느끼듯이. 실상 인간 남자로서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아름다움이란 인간 여자의 외모 아닌가? 여자들도 아마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심미적 태도가 결국 예술의 본질이 아닌가? 피카소와 반 고흐의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동이나 수지, 윤아(이들이 노래를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를 보며 떠오르는 감상에는 우열이 없다고 확신한다.



슈퍼카의 유려한 생김새에 감탄하고 있는 사람에게 연비가 어떻고 공기저항이 어떻고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가창력으로 질타를 받는 것을 보는 내 마음 또한 그러하다. 나는 비록 노래는 잘 못하더라도 사랑스럽고 멋진 그들을 연예계라는 시장에서 오래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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