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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Sep 23. 2022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했건만

서랍 속 글이 서 말이어도 발행해야 보배.

여름방학의 끝자락에서 문득 브런치 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인용하자면 이유는 터무니없다. 그냥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블로그 등에서 글을 썼던 경험이 있지만, 막상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나니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블로그를 이용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블로그는 아이디를 알면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이유였다. 대학생이긴 하지만, 조별과제를 하며 결과물을 보내거나, 교수님께 문의를 드리려고 하다 보면 메일을 사용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로 네이버 메일을 사용했는데, 확인이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핸드폰이든 태블릿 PC든 네이버 사전을 이용하거나(어학 계열 학과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의 간단한 검색을 하기 위해 네이버 어플이 깔려있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네이버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별과제 조원이나 가르치는 학생의 메일 주소 아이디를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구태여 블로그를 들여다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조원들이나 교수님에게 수없이 메일을 보내면서 오타가 났는지 확인하는 것을 제외하면 메일 주소 아이디를 자세히 들여다본 일은 없었고, 블로그를 들여다본 일을 더더욱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블로그를 알게 된다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웠다.


두 번째 이유는 내 블로그에 친동생과 서로이웃 추가가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전 주간일기 챌린지를 하며 블로그를 시작했던 몇몇 친구들과도 서로이웃을 맺기는 하였지만, 내 글을 동생이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단어 하나도 골라가며 적게 되고, 적으려던 내용도 적지 않게 되었다. 동생과는 거의 매일 카톡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따져보자면, 블로그에 글을 적는 것이나 브런치에 글을 적는 것이나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어쩐지 브런치에서는 조금 더 스스럼없이 글을 발행하고, 블로그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쓰는 글이 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조금 덜 포장하고, 나의 이야기를 썩 좋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쓰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가까운 사이의 사람에게는 나의 그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준다는 게 왜 이리도 부끄럽게 느껴지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기까지도 수없는 고민이 있었다. 작가 심사를 신청하며 서랍 속에 이미 세 개의 글을 써 놓았고,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겠노라 계획까지 적어냈건만 서랍 속에 있던 글들의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도 이 주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올려야지, 올려야지,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오늘은 꼭 서랍 속 글들을 발행해야지. 다짐만 수차례, 막상 발행 버튼을 누르려니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가 심사를 위해 서랍 속에 글을 쓴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 글은 이미 과거의 글이 되어있었고,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끊임없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치고, 추가하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멋진 글을 브런치에 쓰고 있는 같은데 이런 다듬어지지 않은 초라한 글을 발행해도 괜찮은 걸까,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러다 발행을 누르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 브런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브런치 작가 심사 신청을 해서 통과가 됐는데, 글을 써놓고 발행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나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냐고 해서, 서랍에 있던 글들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평소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후배기도 했고, 일전에도 내 글을 몇 번 보여준 적 있는 후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배는 내 글을 읽고 자기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으니, 링크를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그 말 한마디에, 그럼 그 글보다 앞서 서랍에 써 두었던 글을 발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생각해 두었던 업로드 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순서가 바뀌는 것은 싫었다. 제목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고, 차례로 글을 발행했다.


나의 첫 브런치 글 업로드는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막상 글을 올리고 나니, 생각보다 부끄럽지 않았다. 그냥 발행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을 왜 이렇게 고민했는지.


그러고 보니 나는 늘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기 전날부터 시험장에 가는 길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길이 막혀서 입실 시간에 늦으면 어떡하지, 수험표를 두고 가면 어떡하지(이미 가방에 잘 넣어뒀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시험 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모르는 문제만 잔뜩 나오면 어떡하지, 가는 길에 수험표를 잃어버리면, 시험 때 사용할 2B 샤프가 갑자기 고장이 나면 어쩌지, 내일 비가 오지는 않으려나, 따위의 걱정들. 그러나 막상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해보면 전날 한 걱정 중 80%는 쓸모없는 걱정이었던 경우가 많다. 나는 시험장까지 잘 찾아갔고, 아침부터 서두른 탓에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으며, 수험표는 가방 안에 무사히 있었고 샤프 역시 멀쩡했다. 시험 문제는 전날 상상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으며 비는 당연히 오지 않았다. (애초에 강수확률이 10%였으니까.)


그러니 생각해보면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에 했던 걱정들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80%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걱정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발행을 하고 나니 별 거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앞으로는 마음 편하게 브런치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적어보고 싶다. 내 걱정이 정말로 쓸모 있는 걱정인지를 알려면 일단 해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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