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홀로 견디는 마음의 무게
최근 한 취창업박람회에 참여해 고등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하며, 어려운 현실을 마주했다. (실제 자체 진단 검사 결과를 분석하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부정적 마음, 무기력, 자존감 하락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 더 가슴 아픈 순간은 제가 마주한 학생들의 고민 1순위가 진학이 아닌 '교우관계'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고 혼자 견디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도 힘드신데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한 학생의 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부모님도 힘드신데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23~24년 내부 진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성인과 청소년 모두 상당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청소년의 고통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데이터
청소년과 성인의 30~46% 심리적 어려움 호소
청소년이 성인보다 부정적인 마음 3.4%, 무기력 증세 2.2% 더 높음
자존감 하락은 성인과 청소년이 비슷한 수준
2024년, 데이터를 보며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부정적 마음, 자존감 하락의 큰 차이)
부정적인 마음의 경우 청소년이 성인대비 26.3% 더 높음
무기력 증세의 경우 청소년이 성인대비 3.2% 더 높음
자존감 하락이 경우 청소년이 성인대비 21.3% 더 높음
특히 주목할 점은 2024년 들어 성인의 심리 지표는 개선된 반면, 청소년은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마음과 자존감 하락 지표에서 청소년이 성인보다 20%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이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호다.
청소년기의 고립이 청년기로 이어지는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23)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61만 명에 달하며, 이들 중 상당수가 청소년기부터 대인관계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어제 접한 머니투데이 기사(2025.09.09)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의 심리적 고통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여전히 극단적 선택이며,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나다움'을 찾는 것은 단순한 자아실현을 넘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주디스 조던(Judith Jordan)이 제시한 이 이론은 "성장은 고립이 아닌 연결 속에서 일어난다"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연결감은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받아들여지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의 경험은 고립을 깨는 열쇠다. 또한 약함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실제 나도 링크드인을 통해 나의 두려움, 약함을 드러낸 적이 있다.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많은 공감을 얻었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연대감도 느낄 수 있었다. 취약성을 숨기지 않고 나누는 것, 그것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나다움'을 찾는 것은 단순한 자아실현을 넘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우리는 종종 거창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단순한 질문 하나가 고립된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에 담긴 진정성이다. 형식적인 안부가 아닌, 정말로 상대의 하루가 궁금한 마음으로 묻고, 그 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등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며 들었던 고민은 "이야기를 할 곳이 없다"였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모두 바쁘고, 친구들도 각자의 고민으로 힘들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경청이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공감의 말 한마디가 때로는 백 마디 조언보다 큰 위로가 된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학교 차원 : 안전한 관계망 구축
학교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이곳이 경쟁의 전장이 아닌 성장의 터전이 되려면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또래 멘토링 프로그램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지지체계를 만든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운영하는 '또래상담' 프로그램은 1994년부터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또래 학생들이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지원하는 체계로, 상담을 제공하는 학생과 받는 학생 모두의 성장을 돕는다.(현재 솔리언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되는 교실 문화다. "틀려도 괜찮아",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돼"라는 메시지가 일상화될 때, 학생들은 자신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틀려도 괜찮아",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돼"
개인과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가 청소년의 마음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스스로 나서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아웃리치' 프로그램처럼, 전문 상담사가 가정을 방문해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이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은 대면 상담이 부담스러운 청소년들에게 대안이 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채팅 상담, AI 기반 감정 일기, 온라인 자조 모임 등 다양한 형태로 접근성을 높인다. 실제로 '다 들어줄 개' 같은 앱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가족 지원 시스템도 확대되어야 한다. 청소년의 고립은 종종 가족 전체의 문제와 연결된다. 부모 교육, 가족 상담, 형제자매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가족이 서로를 지지하는 건강한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현대 사회는 개성과 독립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진정한 '나다움'은 고립 속에서가 아닌 건강한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경험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즉, 안전한 관계 경험이 있어야 건강한 독립성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려할 부분을 정리해보았다.
첫째,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해"라는 무조건적 수용이다. 성적이 좋아서, 예뻐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확신. 이는 청소년들이 자기 탐색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둘째,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라는 든든한 지지다. 실패하거나 넘어져도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이런 안전망이 있을 때 청소년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셋째, "너만의 길을 찾아가도 돼"라는 격려다. 부모나 사회의 기대가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 이는 진정한 '나다움'을 발견하는 핵심 조건이다.
나다움과 함께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건강한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타인과 깊이 연결되는 것. 이것이 청소년들이 고립을 넘어 성장하는 길이다.
최근 급증하는 은둔 청년 문제는 청소년기 고립이 방치된 결과 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청소년들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들의 고립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갈 때, 청소년들이 고립의 벽을 넘어 따뜻한 연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교육 현장에서 이런 변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해 나가겠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든든한 연결고리가 될 때, 청소년들도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해"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너만의 길을 찾아가도 돼"
통계청 (2024). 『2024 청소년 통계』 - 사망원인 통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3). 『은둔형 외톨이 청년 실태조사』
교육부 (2024).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종합분석』
보건복지부 (2024). 『정신건강실태조사』
OECD (2023). 『Health at a Glance』 - 청소년 자살률 국제비교
마이온컴퍼니(2023~2024). 마이온에고 심리 데이터
Frankl, V. E. (1959). 『Man's Search for Meaning』. Beacon Press
Jordan, J. V. (2018). 『Relational-Cultural Therapy』.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Miller, J. B., & Stiver, I. P. (1997). 『The Healing Connection』. Beacon Press
Winnicott, D. W. (1958). 『The Capacity to be Alon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김현수 (2022). "은둔형 외톨이의 이해와 개입". 『정신건강정책포럼』
머니투데이 (2025.09.09). "청소년 극단적 선택 증가 관련 보도"
한국일보 (2024). "은둔 청년 61만 명 시대" 특집 기사
중앙일보 (2024). "교우관계가 가장 힘들어요" 청소년 설문조사
서울시 (2024). 『은둔 청년 지원 종합대책』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2024). 『또래상담 프로그램 매뉴얼』
교육부 (2024). 『학생 정신건강 증진 기본계획』
일본 후생노동성 (2023). 『히키코모리 아웃리치 프로그램 가이드』
서울시교육청 (2024).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학교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