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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Sep 08. 2024

|약속한 자리

허밍

 오늘은 유독 하늘이 깊다. 저기 멀리에는 구름이 가득한데 머리 위의 하늘은 온통 파랗기만 하다.  깊다라는 건 짙다라고 해석했다. 나는 짙은 파란의 하늘을 볼 때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파스텔 색감의 여리한 하늘이 아닌 우주로의 초입임이 느껴지는 짙고 짙은 파란색. 그 색을 비추던 태양이 저물고 밤이 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나의 정서를 대변하는 색이 된다. 우울한 세상이라고 회색과 검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붉음, 흰, 자주가 될 수도 있고, 그것이 나에게는 푸름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말하고 나니 나의 하루는 우울로 향하는 기로에 서있는 것 같다. 눈을 뜨고 하루를 지내면 자연스레 본연의 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어 발악했던,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나 자신에게로 말이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는 걸음을 오늘도 같은 장소에서 맞이하고자 한다. 걸음이 닿은 곳에 언젠가 네가 있기를 바라며. 조금 늦는 한이 있더라도, 또 어쩌다 가끔은 닿지 못하는 날이 있더라도 나는 내가 닿은 그곳에 가만히 멈춰있는 것으로 너에게 다가가는 역설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약기운 때문일까. 정신이 조금은 몽롱하다. 이 순간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실 정말로 약기운에 정신 못 차리는 것은 꽤나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의 몽롱함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현실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역설을 멈추고 정말로 나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가까워지자 그에 반기를 들듯 머리를 내미는 방어기제. 속된 말로 자기합리화라고 말하는 그런 것 말이다. 너를 만나게 된다면 또렷한 정신이 아닌 이런 몽롱함 앞에 서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로 꿈같을 그 순간을, 꿈처럼 맞이하고 싶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만들어낸 몽롱함 끝에 나의 걸음이 멈춰 섰다. 향하고 있던 곳은 바 형식의 카페였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마지막 공간. 사실 그때 이 자리는 카페가 아닌 작은 바였다. 우리는 항상 바의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그곳에 앉으면 바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주변을 힐긋거리며 주변 사람들을 관찰했고 그들은 또다시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이따금씩 단골로 보이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바텐더도 우리 쪽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함께하곤 했다. 그건 마치 열린 공간에서의 비밀회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십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습관을 예측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 소재였다. 나는 그 순간이 즐거웠다.


 너와 나의 마지막 이야기가 오갔던 날 이후 몇 달 뒤에 바는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카페는 우리가 앉아있었던 바의 형태는 유지한 채로 약간의 인테리어를 거친 후에 영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겨질 그 공간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약속한 자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잠시 동안의 회상을 멈추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투명한 문을 눈앞에 두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주시하는 시선을 느껴버린 탓이다.


 문을 열고 카페로 들어서자 알바생이 눈을 맞추며 인사한다. 이곳의 알바는 오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 알바생은 반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때문에 알바생과는 이미 안면이 트였고 나를 알고 있는 알바생은 자연스레 주문을 받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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