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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Sep 18. 2024

|너와 나

 "생각은 할 수 있잖아. 진짜로 죽겠다는 건 아니니까."


 나의 말을 들은 너의 눈빛이 특이했다. 떨리는 눈동자 속에 옅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 떨림이 내 심장의 두근거림보다도 짙었다. 어쩌다 이런 말을 해버린 건지 모르겠다. 꾹꾹 담아왔던 나의 서랍장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대로 터져 나와 버린 걸지도. 너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 또한 고요에 기대어 너를 바라본다. 다른 이가 이 장면을 본다면 절친에게 고백해 버린 뒤의 어색함을 상상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색하지 않았다. 떨리는 눈빛도, 두근거리는 심장도. 단지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그랬듯이 너도 그러했을지 모를 일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마주 보다 곧 울려 퍼진 너의 전화벨 소리에 다른 날의 약속을 기약했다. 너는 전화를 끊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너의 눈동자가 있었던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네가 없어진 지금에서야 어색함이 몰려오는 건 기분 탓일까. 괜한 말을 했나? 그런데 분명 너의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다. 뭐랄까, 말을 한 것은 나였는데 어째서 너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네 눈빛의 떨림은 나를 향한 걱정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둘도 없는 너의 친구가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겠지. 우리는 완벽에 완벽을 기하여 연기했던 거다. 서로의 행복이 우울을 이겨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 숨기기 위해서.


 너는 지금쯤 집에 도착해서 또다시 웃고 있겠지. 너의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아선 안 되는 거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거짓을 고하고 있을 너를 위해 나는 눈물 흘리기를 선택한다. 나는 그럴 수 있었다. 너에게는 있을 가족이 나에게는 없었고 너에게는 있을 주변인이 나에게는 너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눈가에는 자그마한 이슬이 흘러내렸다. 미약한 물줄기는 곧 한 가닥의 비가 되어 아스팔트를 적신다.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너를 실어 보낸다. 나의 슬픔은 걸음으로 대신했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길을 너와 함께 걷고 있었다.


 째깍째깍. 집안을 채우는 소리는 시계소리뿐이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그림 노트를 펼쳤다. 시계소리를 음악 삼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안정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감정의 깊이가 어디쯤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아직도 나는 나에 대해서 정확하게 표현할 어휘를 갖추지 못했다. 일기를 써보기도 했었지만 일기는 단순한 하루의 감상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작품을 그리는 건 아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의 정서를 노트에 흩뿌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따듯한 온실로 둘러싸여 있을 세상으로의 시각이 나에게는 차가운 얼음과 같은 색으로 표현된다. 세상 어느 곳보다 강렬한 뜨거움을 자랑해야 할 사막에 눈이 내리고 있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 빛을 잃었다. 한 줄기의 따스함도 허락되지 않는 얼음장 같은 추위 속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나는 쥐고 있던 연필에 억지로 힘을 주어 심을 부러뜨렸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어. 이 이상의 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너는 무얼 하고 있을까. 시계는 새벽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너는 자고 있을 시간이었을 텐데, 어째선지 지금은 네가 깨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지이이이잉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고요 속의 내 생각이 조금 시끄러웠나 보다. 미리 보기로 확인한 너의 메시지는 짧았다. '자?' 그건 단순한 물음이 아니었음을 나는 안다. 우리 사이에 있던 작은 벽마저 허물어진 지금,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했다. 나는 너의 필요에 답한다. 


 우리는 아침 해가 뜨는 순간까지 문자를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메시지창의 1이라는 숫자는 사라지지만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곤했겠지. 너는 잠에 들었을 것이다. 문자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너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스크롤을 올리며 지금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네가 연기했던 모든 순간들의 진심을. 네가 꿈꾸었던 미래와 지금의 너 사이에 있는 괴리가 얼마나 뒤틀려있었는지. 너는 한참 전부터 나에게 진실을 말해왔었구나. 나는 나의 슬픔에 갇혀 너를 돌봐주지 못했던 거다. 그런 와중에도 너는 위태로운 순간에 있던 나를 쓰다듬어 줬던 거야.


 나의 오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어젯밤 네 눈빛의 작은 떨림이 의미하는 바를 알 것 같다. 그 눈빛에 왜 그리움이 들어있었는 지도 말야. 그건 나를 위한 걱정이 아니었다. 결국 너와 같았던 나에 대한 당황도 아니었다. '이제서야 말해주는구나.' 너는 눈빛으로 내게 말하고 있던 거다. 너의 그리움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찾아올 이 순간을, 너는 그리워하고 있던 거다.


 [ 일어나면 연락줘 ]


 이 말을 끝으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 밖으로는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나 잠들지 못한 나의 마음은 아직 새벽을 향했다. 새벽녘의 섬광이 오늘따라 따스하다. 주홍 빛의 달은 울음을 그칠 줄 모른다. 나는 그 새벽에 머무르며 너를 기다렸다. 어쩌면 곧 찾아올 너와의 만남이, 조금은 어색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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