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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Oct 02. 2024

|이상의 파열

 미웠던 순간까지 사랑하고 말았다.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다. 어쩔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에 걸쳐 있던 거다.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과 변하지 않는다는 이성이 서로의 눈을 맞추며 맞장구치고 있다. 노력으로도 만들어질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를 납득할 수 없었다. 나의 이상향에 가까웠던 눈빛을 가진 너였는데, 너와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과 나는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런 네가 내 앞에 나타나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너라는 의미를 품을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너의 눈빛을 탐했던 나의 욕심이었다. 가질 수 없어서 시기했어야만 했던 건데, 그것이 사랑이 되어버렸으니 우리는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밟고 있었던 거다.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다. 마음이 쓰려왔다. 네가 나에게 주었던 선물들이 나의 폐를 자극한다. 나는 너의 빛에 잠겨 익사하곤 했다. 나의 생을 너에게 모두 주고 나면 너와 동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해 나무가 되었다가 병 속의 배가 되었다가, 가끔씩은 그림이 되었고 소리 없이 몰아치는 파도가 되기도 했다. 나의 과묵함이 그러했다. 소리 없이 들려오는 탓에 너를 깎아내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너를 위한다는 이유로 나의 사심을 채우고 있었다. 남을 위하는 위선. 나를 버려도 너만은 빛낼 수 있다는 오만. 타인을 위한 이기심이라는 것을 배웠다.


 푸른 밤에 기타를 치고 있노라면 온 세상의 별들은 오롯이 우리를 향했다. 어설프게 울려 퍼지는 선율이 어쩌면 더 자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투박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너의 손 끝으로 만들어낸 파동은 선명한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별에게 위로받는 사람과 별을 위로하는 사람. 우리를 닮은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에게 별이 아닌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도 별은 아니었던 거다. 너는 나에게 별을 품은 밤이었고 너에게 나는 밤을 사랑한 들꽃이었으니까.


 너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나의 이상뿐이었던 반면에 멀어져야만 했던 이유가 너무도 많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 흘린 까닭은 그럼에도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짜증 내고 때로는 서로 다른 이유로 함께 울고 어떤 순간에는 분노로 서로를 집어삼킬 뻔도 했었지만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사랑해야만 했다. 내가 나의 이상을 이룰 수 있을 순간은 오직 지금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소망을 잃었을 테고 결국에는 내가 사랑했던 밤마저 무너졌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지만 사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너를 미워해서 더 사랑했다. 애증 같은 것과는 달랐다. 나의 꿈과 이상을 품에 안고도 아파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야. 


 모르겠다. 사랑하기 위해 나는 무엇이 되어야만 했던 건지. 너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 나도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 노력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서로의 손가락 한 마디조차도 닿을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도 영원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평생에서 우리라는 의미는 지워지겠지만 이 순간의 평생 동안에는 차마 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꿈이라는 건 때때로 너무도 쉽게 사라지지만, 또 꿈이라는 건 한 사람의 마음에 지문을 만들어버리고 마는 거니까.


 이대로 영원히 오르고 올라 별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너는 그런 마음들을 위해, 별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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