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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Oct 10. 2024

|이별,

 벚꽃이 쏟아지던 밤이었다. 그날의 달빛은 붉은색을 띠었다. 아른거리는 붉은빛을 두 눈에 가득 담는다. 나는 그만 달빛으로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의 나는 네가 되어 있었다. 그 길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나는 너의 시선으로 나의 세상을 걸어보곤 한다. 나의 세상은 너의 세상과 상반되는 곳이다. 너는 어둠 속의 빛을 빛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나의 별을, 나의 달을, 너는 그저 사그라들 촛불 같다며 빈정거렸다. 너를 향한 나의 서정이 허공을 향해 휘날린다. 밤의 벚꽃이 되어 산산이 흩어진다. 돌아가는 나의 시선이 애처롭다. 피보다 진했을 고요였다.


 하늘 사이에 스며든 작은 소란이 귀를 간지럽힌다. 얼마나 많은 허무를 먹고 자랐는지, 그토록 작은 소란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목소리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위로받는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그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뜨고, 망막으로 내리 꽂히는 요란한 숨소리에 길을 잃은 후에서야 네가 있는 곳을 향해 양팔을 허우적 거린다. "내 손을 잡아줘. 어디에 있는 거야?……." 네가 없다면 나는 어떤 요람에서도 잠들지 못할 것이다.


 숲 속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청록으로 가득한 배경 아래 모난 늪이 있음을 모름이었다. 희망이 손 끝에 닿는다. 스쳐가는 바람에 숲은 최후를 노래했다. 동동거리는 걸음에 빠져드는 깊이는 나지막한 아이의 눈빛이었다. 너의 거름이 될 수 있다면, 나 기꺼이 숨을 참고 이곳으로 빠져들겠노라. 나는 영영 숲이 되어 청록을 노래할 거라고, 너의 바람에 귀 기울여 대답해 줄 거라고. 이토록 많은 다짐을 했어도 나의 손은 성할 날이 없었다.


 밤이 드리울 때 요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요정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나는 너를 양손에 가둔 채로 힘껏 날아오르게 했다.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너의 몸부림을 느끼며 길을 걷는다. 모퉁이의 가로등이 깜빡거린다. 너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싫증을 느낀 나는 너를 놓아준다. 너는 그토록 작은 날갯짓으로 깜빡거리는 가로등을 향해 날아가다, 결국 그것에 툭 부딪히고는. 깜빡. 다시 불이 켜졌을 때 너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의 이기심은 너를 붙잡을 만큼 거대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작은 모래알갱이에 불과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드넓은 세상 어디를 나아가도 나는 다시 내가 되어 돌아온다. 그토록 사소한 것이었어도, 나는 그 작음을 사랑한 것이다. 너에겐 한 번의 불쾌였을지도 모르는 그 알갱이 하나에 나는 나의 숨을 담고 있었다. 밤의 벚꽃은 찬란하지 않다. 그건 나를 바라보던 너의 이별이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며 너의 영원을 직감한다. 같은 방향으로 걸었어도 결코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던 이유다. 너는 별을 보며 나아갔고, 나는 달을 향해 걸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나는 처음으로 돌아오고 마는 거다. 다시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나의 걸음은 달의 뒷면을 거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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