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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낱 Apr 20. 2021

가족의 탄생을 접시로 기념하기

1부 그릇- 로얄코펜하겐 이어 플레이트


 7@년생 여자 3호와 7#년생 남자 3호가 만나 2002년에 결혼하고 200%년에 딸을 낳았다. 나는 이 한 문장을 네 장의 접시로 보여주기 위해 오랫동안 접시를 구했다. 로얄코펜하겐 이어 플레이. 197@년, 197#년, 200%년의 이어 플레이트는 내 손에 있다. 나는 여전히 2002년의 접시를 구하고 있다.


 덴마크의 왕실 도자기인 로얄코펜하겐은 흰색과 쪽빛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짙은 쪽빛의 넝쿨 모양 식물이 그릇 전체에 휘감아 그려져 있다. 아주 숙련된 전문 페인터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 넣는 문양은 화려해 보이지만 여백의 미도 즐길 수 있다. 감히 최고급 도자기 브랜드라고 불릴 만하다. 그러나 나는 쉽게 그것들을 살 수는 없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싼 로얄코펜하겐의 접시가 나에게도 세 장이나 있다. 우리 가족의 탄생 연도가 새겨진 세 장의 접시. 로얄코펜하겐에서는 매년 기념 접시가 나온다. ‘이어 플레이트(Year plate)’라고 해서 1908년부터 시작해 매년 새해 초에 신비로운 새벽 같은 푸른빛의 접시를 출시한다. 아름다운 그림과 해당 연도의 숫자가 적혀있는 동그란 접시이다. 실생활에서 음식을 담아도 되고 벽에 매달거나 접시 스탠드에 세워 장식하기도 한다.

 

 그릇이나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각종 잡지나 인터넷에서 그 접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갈망하게 되었다. 어느새 ‘단순히 갖고 싶다’에서 ‘우리 가족에게 의미 있는 해의 접시가 갖고 싶다’로 바뀌었다. 내가 태어난 해, 남편이 태어난 해 그리고 딸아이가 태어난 해. 그리고 결혼한 해. 나중에 딸아이가 결혼하는 해의 접시도 가지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에게 기념이 될 만한 해마다 접시로 기록을 하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접시를 찾아 나섰다.

 

 한국로얄코펜하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어 플레이트는 해가 지나면 몰드를 파기해 생산 수량을 제한하는 한정 상품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소장 가치를 더한다고 했다. 오케이. 여기까지는 알겠다. 그래야 희소성의 가치가 있겠지. 그럼 나와 남편이 태어난 해의 접시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가. 무려 1970년대의 접시를 말이다. 곧 접시는 앤티크 숍이나 중고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워낙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상품이고 나와 같이 특정 연도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중고 거래가 활발한 품목이었다. 아무리 음식을 담아도 되는 접시라 해도 다들 벽에 걸어 놓았거나 진열해 두었을 것이 분명했기에 중고 거래도 거리낌 없었다. 수소문 끝에 나같이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내가 태어난 연도를 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의 연도도 구했다.


 딸아이의 탄생 연도는 2000년대라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격이 부담스럽고 나와 있는 물건도 없었다. 마음에 쏙 들게 구해지지 않아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사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 이리저리 내 물건들을 놓을 자리들을 생각하다 이어 플레이트가 머리를 스쳤다. ‘이사 가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두어야지.’ 그런 상상을 하다 문득 딸아이의 접시가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분명히 왜 자기 것만 없냐고 서운하다고 할 게 뻔했기에 부랴부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생산을 끝내고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 온라인 매장이나 해외 배송은 너무 비쌌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동안 몸담고 있던 커뮤니티에서 재빠르게 득템해야 할 뿐이었다.


 다행히 한 명의 유저가 200%년의 접시를 매물로 내놓았다. 백화점에서 산 상자 그대로에다 보증서까지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 상태는 좋았다. 당장 사고 싶다고 댓글과 채팅을 했지만 감감무소식. 보통 이런 글을 게시하면 반응을 보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 놓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고 있을 텐데 영 반응이 없었다. ‘사기인가? 그냥 올린 건가?’ 며칠이 지나도 답변이 없어 그냥 포기하고 다른 경로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아, 댓글을 늦게 봐서 미안합니다. 지금도 판매 가능해요.’라는 답변이 왔다. ‘됐다! 드디어 2007년 접시를 갖겠구나.’ 판매자의 마음이 변할까, 값을 올릴까 걱정돼 재빠르게 입금하고 이런저런 필요한 사항들을 알려주었다.


 원래 중고 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 나는 최근 여러 일로 인해 인터넷 중고 거래를 조금 활발하게( 입장에서는 )  편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중고로 물건을 사면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중고나라 정도밖에 없거나 커뮤니티 카페 내에서 회원들끼리 믿고 거래하는 것뿐이었다. 요즘은 당근 마켓, 번개장터라는 지역 중고 거래 앱에다가 반값 택배라고 해서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찾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혼자 사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택배를 부치거나 받기 위해 고안된 최고로 편리한 시스템인  같기는 하다. 그저 집에서 편안히 물건을 받기만 하던 나는 편의점으로 물건을 찾으러 가서 QR 코드로 인증  하면 물건을 찾을  없다고 하여 진땀을  적이 있다. 해당 회사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회원가입까지 해야 하며 거기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력하라고 했다. 결국 QR 코드를 받지 못했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택배비도 내가 내는 건데  착불에다 편의점으로 보내는 거야!’ 결국 편의점 사장님의 휴대폰으로 내가 전화를 걸어 본인임을 인증하고 겨우겨우 물건을 받은 적이 있다. ‘, 다시는 편의점 반값 택배로 보내겠다는 사람과는 거래하지 않으리라!’ 무겁고 소중한  택배를 안고 집으로 오며 다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분도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택배를 보내겠다고 했다. ‘, 이제 편의점 택배는 대세인가. 물건을 쥐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면 어쩔  없는 건가.’ 눈물을 머금고 혹시 편의점 택배라면 내가 찾으러 가야 하는 거냐, 그냥 일반 택배로 보내주시면  되겠느냐고 아주 정중히 물었다. 이런 접시를 사고파는 사람답게 감사하게도 반값 택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걸어왔을 사람이지 싶었다. 긁어 부스럼 만들면  되지. 그렇게 그분은 편의점에서 일반 택배로 보내주었고 나는 편안하게  앞에 배달된 택배를 기쁘게 받을  있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흘러가고 변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걸 모른 채 인터넷상으로 대화하려니 참으로 껄끄러웠다. 문자로 주고받다 보면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대에 못 따라가는 사람처럼은 또 보이고 싶지 않은 오기가 어디선가 불쑥 올라와 아는 척하며 알겠다고 하고는 열심히 검색해 가며 대화에 따라갔다. 그렇게 저렇게 익힌 중고 거래 용어나 형식들을 가지고 이제는 내가 먼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계좌 불러 주세요. 일반 택배 선불로 보내주시고요.” 이 말이 뭐라고.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변해 있는 속도의 시간을 살면서 나는 몇십 년 전의 물건을 찾아 헤맨다. 아이러니다. 그 오래 전의 물건을 찾기 위해 5G의 인터넷 세상을 뒤지고 다녀야 한다. 거기서 빠른 대답을 얻어야 하고 신속하게 입금을 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건을 받을 때까지 길어야 3~4일. 물론 마음에 쏙 드는 제대로 된 물건을 찾는 것은 별개지만 말이다.


 여러 복잡한 과정과 수고를 거쳐  손에 들어온  장의 접시. 이제 작고 예쁜 받침대형 스탠드 위에  장의 접시를 나란히 늘여 놓고 그림을 감상할 생각을 하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하지만 아직  일이 남았다. 2002 접시를 찾으러 나서야지. 가족의 탄생과 기쁨을 접시로 기념하는 나는 그릇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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