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가고시마 일
30여 년 만에 방문한 구마모토‧가고시마!
구마모토에서는 성, 당일치기 가고시마에서는 사쿠라지마(桜島) 관광.
그런데 어째
외국 문물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구마모토는 정원 스이젠지조주엔(水前寺成趣園) 옆 제인즈 저택(Janes Residence).
군 출신 영국인 고문이 5년간 기거한 후 기독교 포교로 추방
두어 시간 떨어진 아마쿠사(天草)의 오에 교회(大江教会)나 사키쓰 교회(崎津教会) 정도
가고시마는 전무.
이유인즉슨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 정책하에 나가사키 데지마(出島)에 유일하게 네덜란드에만 무역 거래를 허용했기 때문.
1500년대 스페인‧포르투갈에 허용.
실상 빵‧나가사키 카스텔라‧덴푸라는 포르투갈 경유.
그러나 천주교를 포교하자 추방.
네덜란드(화란)는 스페인 지배라는 제국주의 핍박 경험이 있었고 선교보다는 중개 무역과 실리를 중시하는 상업 국가였기에 일본이 부과한 다수의 제약 조건을 수용.
화란(和蘭)은
소국으로 중개 무역 발달, 화폐 탄생지. 이 같은 특성상 다국어 가능. 더치페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실리적.
매우 친절하여 거리에서도 눈이 마주치면 다가와 도움이 필요한가 물어봄. 이런 속성이 내성적 일본인과 통했을 수도 있음.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처음에는 난학(蘭學)을 배웠으나 에도(江戸)에서 화란어가 통하지 않음에 충격을 받고 영어를 학습하는 변신 후 최초로 유료화한 학원을 차렸다. 이것이 게이오대학의 전신.
근대화를 위한 갑신정변에 사상적 영향을 미쳤지만, 삼일천하 이후 정한론자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