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애 엄마가 가족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나 혼자 좋자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말끝에는 모두 '애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할 생각을 했어?' 하는 질문이 이어지면 어색한 미소로 부랴부랴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여행 하루 전 날 까지도 짐을 싸지 않고 늦장을 부리는 나에게 남편은 걱정되는 듯 한 마디를 했다. "이제 짐을 좀 싸야 하는 거 아니야?" 질문을 듣고도 나는, "그냥, 혼자 가는 거니까 간단하게 챙기면 돼. 그리고 저녁 비행기라 당일에도 시간 넉넉하니까 괜찮아."라고 답하며 짐 싸기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
그렇게 출발하는 날이 되어서야 실감이 났다. 공항까지 함께 온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오롯이 혼자 남고 나서야 '아, 내가 진짜 혼자 여행을 하는구나!' 하는 것이 실감 났다. 가족들과 같이 있었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들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남편이 검색하고 정보를 찾아보았을텐데 이제는 남편이 해주던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혹시 늦는 거 아니야?' 출국 4시간 정도를 남기고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입국수속을 하는 곳으로 가보니 벌써 몇몇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부지런히 움직여 그 뒤에 서서 수속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10분 남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흘러가던지.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문이 열렸다. '응? 저건 뭐야?' 중간에 열린 문으로 몇몇 사람들이 우르르 줄을 섰다. 나보다 늦게 줄을 선 사람도 중간에 열린 문으로 슉~ 가더니 재빠르게 수속을 밟고 있었다. 남편이 있었다면 '자기야, 잠깐 짐좀 가지고 있어 봐. 뭔지 보고 올게!' 하고 갔을 텐데 나 혼자 덩그러니 있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여전히 내 뒤에 줄은 길었고 중간중간 나보다 늦게 온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중간에 열린 문으로 슉- 들어가 수속을 밟았다. 뭘까 싶어 두리번거리다 세워져 있는 팻말을 발견했다. 줌을 당겨 사진을 찍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 저기는 클래스가 다른 좌석이었잖아!'
그랬다. 더 비싼 좌석을 예약한 사람들을 위한 다른 줄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코노미 좌석이었던 나는 내가 서 있던 자리를 굳건히 지킨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쓰담쓰담해주었다. 중간에 움직였으면 다시 뒤에서부터 줄을 설 뻔했다고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쪼르륵 흘렀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 홍콩에서 하룻밤을 자야 하니까 칫솔이랑 치약, 간단한 세면도구랑 로션정도는 따로 빼둬야겠는데?'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캐리어를 활짝 열어서 몇 가지 도구들을 챙겼다. 평소 꼼꼼한 남편이었다면 진작에 미리 빼놓았을 것들이었다. 줄을 서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찝찝한 입과 얼굴로 홍콩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낼뻔했다.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치고 들어와서 잠시 멈칫했다. 평소 남편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면 그쪽으로 따라가고는 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두리번두리번 한참을 살폈다. 티켓을 꺼내서 게이트 번호를 확인하고 이정표를 살펴보기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방향을 정했다. 혼자서 케리어를 끌고 걸으며 문득,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수화물을 부치고 탑승 케이트를 찾아가는 짧은 한 시간 동안, 남편의 존재가 내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남편은 중요한 결정들을 앞두고 같이 얘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나누어지는 고마운 사람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안전한 선택지를 선택해 주었던 남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과감하고 엉뚱한 선택지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 혼자가 되면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오롯이 혼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전보다 더 안전한 선택을 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음식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혼자니까 무엇이든 내 맘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드코트에 가 보니 줄은 한참 서 있고 자리를 먼저 잡아둬야 하는 상황에서 내 케리어만 좌석에 덩그러니 놔두고 줄을 서자니 한참 불안했다. 전 같으면 남편과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나는 줄을 섰을 텐데 혼자서는 그게 어려웠다. 결국 푸드코트에서 발을 돌렸다. 그리고 찾은 곳은 인천공항 스타벅스 북카페. 평소와 다르게 시킨 것은 음료의 종류 정도였다. 달달한 초코가 먹고 싶어서 전과 다르게 초코 음료를 시켰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과 아이들이 무난한 메뉴를 시키고 나는 조금 엉뚱한 메뉴를 시키고는 했다. '내가 고른 메뉴가 조금 맛이 없거나 이상해도 무난한 메뉴들이 있으니 안심하고 시킬 수 있었던 거구나!' 초코 음료의 달달함 끝에 생각이 머물렀다.
나는 내가 원래 모험심이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과 시도들이 가능했던 것은 나와는 성향이 다른 남편 덕분이었다. 이번에 발리로 혼자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내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남편 덕분에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
"엄마~ 가지 마~"라고 울먹이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엄마는 그럴 자격이 있어. 결혼하고 10년 동안 엄마가 너희들을 낳고 키우며 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엄마는 혼자서 이번 여행을 갈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던 남편. 내가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남편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을 함께 살면서 누군가를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혼자 떠나는 여행길에 문득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었던 가족들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옆에 있을 때는 그렇게 혼자 있고 싶더니 혼자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나는 건 또 뭐야?' 자유를 만끽하며 '신난다!'를 외치고 있을 거라 예상한 나의 모습과 달리 안절부절못한 나의 낯선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번 여행은, 가족과 함께이지 않아서 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오롯이 나 혼자 선택하고 책임지는 그 경험들이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갔을 때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