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시작해 홈클래스를 열기까지
“아, 지금 저희가 밖에 나와 있어서요. 나오면서 정리를 못 해서……. 집이 엄청 지저분할 텐데”그냥 한번 보여드리자. 밑져야 본전이지!”
“알겠어. 네! 집 비밀번호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전세 만료기간 즈음 이사를 가야 하는데 우리가 나가고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었다. 언제 누가 집을 보러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게 정리해 두고 있었는데 하필 정신없이 청소도 못하고 외출한 날 집을 보러 온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어차피 집이 지저분해서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갈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있으면서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을 하루 빨리 끝낼 수 있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사장님. 아!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보! 집 나갔데!”
“아 진짜??? 거봐 내말듣기를 잘했죠?”
진심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집이 나가게 된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본전 수준이 아니라 완전 횡제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4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짐은 생각보다 많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나눌 것은 아낌없이 나눴다. 첫째를 임신하면서 태교로 했던 코바늘과 실도 저렴하게 팔고 맘 카페에서 중고로 샀던 십자수 실과 광목천들은 프랑스자수를 배워보고 싶다고 스치듯 말씀하셨던 형님께 드렸다. 나누고 버리면서도 팔지도 나누지도 못한 것이 있었다. 민화를 그리던 붓, 종이, 물감들. 중고로 얼마에 팔 수 있을까 가격을 재고 따져 봐도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남편이 곤히 잠든 새벽, 물건을 쌓아둔 방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었다. 다시 민화를 그리던 화구에 눈이 갔다. 상자를 열고 하나씩 꺼내 보면서 돌돌 말린 그림을 펴 보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림이 다 완성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돌돌 말려 잘 펴지지 않았다. 방바닥에 그림을 놓고 양 끝을 낑낑 거리며 펴다가 문득 이 그림을 그리며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저는 나중에 아이 낳고도 아기 자면 옆에서 그림 그릴 거예요.”
“나현샘,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낳고나면 잘 안될걸!”
아이가 자면 그냥 그 옆에서 그리면 되는 거지 뭐가 어렵다는 거지? 이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를 키우며 4년 동안 단 한 번도 민화를 그리지 않았다. 한참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 앞으로 아이를 낳고도 그림을 그리겠다 말했던 내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다 만 돌돌말린 그림이 꼭 지금의 나 같아서 새벽에 차가운 골방에 앉아 숨죽여 울었다.
이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 근처에 민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웠다.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핸드폰만 부여잡고 있었다. 수업을 찾아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예쁜 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직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두 아이를 가정보육 하는 상황에서 ‘집’을 나가기 어려웠다. 습관처럼 맘카페에 들어가서 게시 글을 확인하는데 평소에 눈에 띄지 않았던 글이 눈에 띄었다. ‘엄마표 홈클래스’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었다. ‘홈클래스? 이게 뭐지?’ 게시판에 적힌 글을 보니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이거다! 집을 나갈 수 없다면 집을 바꿔보자!’
글을 하나 올렸다. 이사 준비를 하다가 민화 화구를 발견한 일, 혹시 가볍게 민화를 체험해 보고 싶은 분들이 있는지, 집에 아이 둘과 함께 있어서 아늑한 수업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새벽6시. ‘누가 이런데서 그림을 그리고 싶겠어?’ 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다르게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셨고 인연이 닿은 분들과 일정을 잡고 이사 전 까지 민화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업 날을 잡고 보니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물감과 붓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막상 그림을 알려드린다 생각하니 4년 동안 붓을 놓고 있었던지라 나부터 민화를 다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부터 아이들이 잠든 저녁시간 조금씩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들여 색을 칠할수록 아름답게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보며 뿌듯했다.
기다리던 민화 수업 날이 되었다. 내가 예상한 수업 시간은 열시부터 열두시까지 두 시간. 세 분 모두 다른 그림으로 준비해서 한 분씩 따로 알려드리다 보니 예상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열두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아직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약속시간보다 길어져서 죄송해요. 혹시 열두시 이후에 약속 있으신 분 계세요?”
정중하게 여쭈어보고 오늘 약속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색을 만들고 칠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재능기부수업을 하기로 하면서 다짐한 것은‘시간약속을 잘 지키자’였다. 비록 돈을 받고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써서 나와 민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돈을 받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인데 약속된 시간을 넘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노력하고 애를 썼지만 열시에 시작한 그림은 두시가 다 되어갈 즈음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우와! 이거 진짜 제가 그린 거 맞아요? 너무 예쁘다!”
“선생님, 여기에 이름 써도 되나요?”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이 정말 내가 그린 게 맞는지 물어보시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내가 다 기뻤다. 내 이름을 적을 수 있는 그림이 완성되는 즐거움을 나누었다는 사실에 나 또한 뿌듯했다. 완성된 그림을 돌돌 말아 휴지심에 쏙 넣어드리니 아이디어가 참 좋다며 칭찬하셨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준비 요령이 생기고 중간 중간 아이들 보는 것도 익숙해져 갔다. 점점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수업 날 전에는 수업을 준비하고 만날 사람들을 기다리며 행복했고 수업을 하면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다음 수업 공지 글을 올리면서 어떤 분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되었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기억에 남는 일을 하고 있구나!’
내가 누군가의 삶, 한 장면에 기분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이 가슴 뛰고 벅찼다. 완성된 그림을 액자에 보관하시거나 알려드린 방법으로 액자를 만든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시면 그 모습에 또 뿌듯했다. 한 사람의 삶에 그림이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 해서 행복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데리고 민화 홈클래스를 시작했다.
홈클래스에서 많은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엄마들이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을 잃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또한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엄마들에게 집에서 쉽게 좋아하는 일을 수업으로 시작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홈클래스의 매력이다. ‘집’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집’덕분에 엄마가 하고픈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홈클래스는 많은 엄마들이 좋아하는 취미나 잘 하는 일로 수업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수업을 통해 나만의 콘텐츠와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홈클래스를 통해 자존감을 되찾았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비대면으로 하는 수업이 많아지는 요즘, 집을 나갈 수 없는 엄마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위기가 아닌 기회다. 엄마의 꿈! 홈클래스를 통해 집에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