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년만에 해외를 처음 나갔다. 특히 진형이와 단 둘이 가는 해외여행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이전에 치앙마이를 간 게 마지막이었으니, 이번에 가는 해외여행은 우리에게 굉장히 귀한 여행이었다.
발리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은 건 여러 요소들이 다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오프라인 촬영이 거의 2주간 비어있었다. 촬영을 해야 할 클라이언트가 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가면서 그 동안 촬영을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인스타를 통해서 발리 리조트에서 협업 제안이 왔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발리를 선택했다. 이전부터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발리 직항이 꽤 비싸서 우리는 홍콩 경유를 선택했다. 일부러 갈 때는 경유 대기 시간이 긴 비행편을 골랐다. 둘 다 홍콩이 처음이라 홍콩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이었다. 캐세이퍼시픽을 탔고, 호텔은 공항 근처 레갈라 스카이시티 호텔을 잡았다. 발리 숙소 예약하다가 홍콩 숙소 예약하려니, 비용이 훨씬 비싸게 느껴졌다.
처음 타 본 캐세이퍼시픽은 퍽 맘에 들었다. 디즈니부터해서 볼 만한 영화 콘텐츠도 많았고, 체스랑 오셀로 등을 옆 사람이랑 같이 할 수도 있었다. 기내식도 맛있었다. 특히 화이트 와인을 이코노미에서도 무료로 주는데, 진형이는 화이트와인을 매 비행 때마다 과음을 했다.
홍콩 공항의 첫 인상은,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또 공항의 외형 등은 딱히 낯설게 없었다. 홍콩 달러가 하나도 없어서 돈을 인출해야 했는데, 공항에 있는 ATM기마다 줄이 정말 길었다. 힘들게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인출이 되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무거운 백팩 두 개를 어깨에 이고 한참을 돌아다니던 우리는 홍콩 구경을 제대로 하기 전에 지쳐버렸다.
백팩을 호텔에 두고 시내에 나갈 생각이라, 또 호텔 셔틀도 기다려야 했다. 날은 흐렸고, 공항에서 셔틀을 기다리는데 여기가 홍콩인지 그냥 한국 공항인지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레갈라 스카이시티 호텔은 공항에서 차로 5분-10분 거리였다. 무뚝뚝한 호텔 직원에게 키를 받고, 방에 들어가는데 우리는 그때 홍콩 전압이 110v라는 걸 알았다. 평소 계획은 둘 다 정말 못 짜고, 안 짜는 편이라 경유지인 홍콩은 준비를 하나도 안했었다. 다행히 진형이가 옥토퍼스 카드를 미리 온라인으로 사둬서, 열차를 타고 홍콩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사실 내가 홍콩에 대해 아는 것은 왕가위 영화로 본 이미지의 잔상이 거의 전부다.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들, 흔들리는 네온사인 같은 것들. 동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그 오묘한 매력은 사실 홍콩의 매력이 아니라, 감독이 편집해서 만든 아주 극히 일부의 모습일 것이다.
예전에 홍콩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홍콩은 변했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다. 난 예전에 홍콩을 방문한 적이 없으니 예전 홍콩이 어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홍콩에 대한 내 기대감을 꺾기에 충분했다.
진형이가 가자는 곳으로 따라가서, 아직 나는 거기가 어딘지 모르는데 홍콩의 시내 중심 같은 곳이었다. 꽤 현대적인 건물들이 많았고, 도시 여행에는 별 감흥이 없는 나는 그저 그랬다. 사람이 아주 많았다.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복잡한 도심을 걸으며 딤섬을 먹으러 갔다.
홍콩 식당들은 합석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4인 테이블인데 2인, 2인이 오면 2인, 2인을 같이 앉히는 식이었다. 홍콩에서 먹은 딤섬은 맛있었다. 만두피가 엄청 쫄깃쫄깃 했다. 그리고 에그타르트를 사서 길거리에서 먹고, 미슐랭에 등재된 국수를 먹으러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며, 여기가 중경삼림에 나온 곳이구나 했다.
야경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카페도 찾지 못해서 한참을 걸은 우리는 이미 좀 지쳐있었다. 둘다 사람 많은 곳이 질색이라 이미 홍콩 도심에 좀 질려버렸다. 그래서 야경은 포기하고 바로 호텔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열차 내에서 정말 깊게 잠들었다.
그리고 야식을 시켜 먹고 싶었는데, 홍콩 배달 어플을 깔려니 휴대폰 인증이 필요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이심을 사용하고 있어서 번호가 없었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진형이가 휴대폰 인증을 친구에게 부탁해 배달을 시켰었다. 밀크티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밀크티를 딱 배달을 시켜줘서 맛있게 먹었다.
그 날 우리는 유독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했다.
다음 날 여유있게 일어나 홍콩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아침을 사먹었다. 나는 고든램지가 운영하는 브랜드에서 빵과 커피를 사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그리고 면세점에 디즈니 스토어가 있어서 구경을 했는데, 생각보다 구미가 당기는 제품들이 많이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이 귀요미 인형. 인사이드 아웃2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사실 이름을 모른다. 소심이? 부끄미? 퀄리티도 너무 좋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인형이 아니라 바로 구매했다. 홍콩 달러라 얼마나 비싼지 모르고 샀는데 거의 3만원 가까이 했던 듯.
그리고 여유롭게 50번 게이트로 걸어갔다. 왜 50번 게이트라고 생각한지 모르겠는데, 진형이가 50번 게이트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냥 50번 게이트라고 확신했다. 공항이 넓어서 조금 빠듯하게 50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이 타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줄을 서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 도착지를 보니 발리가 아니라 나리타였다.
그래서 놀라서 메일을 다시 확인해보니 게이트가 50번 게이트가 아니라 25번 게이트였다. 진짜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때 탑승 마감하기 10분이나 남았을까. 홍콩 공항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50번부터 25번까지 상당히 멀다. 둘 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있어서 뛰는 데 너무 힘들었다.
놓치면 어떡하지? 비행기표 다시 끊어야 하나 오만 생각을 하면서 죽기살기로 뛰었다. 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진형이 보고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했다. 진형이가 나보다 조금 앞서서 달리고, 나도 숨이 가빠질만큼 뛰었다.
진형이가 먼저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까 승무원이 바로 "너희 2명인데 1명 어딨어?" 라고 했단다. 그래서 곧 온다고, 1분만 기다려달라고 진형이가 말했다. 화면에서는 진작 파이널콜이라고 뜨고 있었고, 마지막 탑승객으로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50번에서 25번 게이트라서 다행이지 게이트가 200번까지 있던데, 100번 이상대 게이트였으면 바로 비행기를 놓쳤을 거다.
그렇게 발리의 10일간의 여행은 좀 허둥지둥 시작을 했고, 다행히 하는 그토록 원하던 눕코노미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근데 막상 눕코노미 자리를 얻으니 잠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