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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 Feb 28. 2024

사랑노래와 여름

그때는 몰랐었어



1.

어릴 땐 사랑 노래가 싫었다. 유치원생인 내게 이유는 단순했다. 공감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가끔 텔레비전에 절절한 발라드가 나올 때면 얼른 채널을 돌렸다. 신나지 않으면 뭐하러 노래를 부를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했다. 당시 내게 관심을 끄는 노래는 귀에 익숙한 댄스곡 정도였다. 지루한 사랑 노래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이 돼서도 내 고집스러운 취향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친구들은 대개 SG 워너비나 버즈를 들었는데, 왜인지 나는 그들의 노래가 끌리지 않았다. 물론 몇몇 곡은 확실히 멜로디나 후렴부가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대신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른 노래를 찾아들었다. 드렁큰 타이거나 다이나믹 듀오 혹은 소울 컴퍼니. 사랑 어쩌고 하는 가사보다는 다른 걸 원했다. 그게 유치해 보여서였는지 아니면 중학생의 이상한 우월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던 무렵까지 사랑 노래가 딱히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게 달라졌다. 사랑 노래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쯤 나의 음악 취향도 차츰 넓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나둘 듣던 노래는 전부 이전에 느끼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예전에는 공감이 되지 않던 가사가 이제는 이해가 된다거나, 후렴부만 들리던 노래가 이제는 전곡이 다 감동적으로 들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변했다. 어떤 노래는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경험하기 전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나 보다.



2.

날이 무척이나 더운 여름 언젠가였다. 낮에 비가 왔는지 공기는 습하고 묵직했다. 해가 진 뒤라 더위는 조금 꺾였지만 여전히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금방 숨이 턱 하니 막힐 정도인 8월의 여름. 며칠 전 약속을 정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미 식당과 카페는 갔다 온 뒤였고 어딜 더 가기엔 애매했다. 슬슬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갈 시간임을 어렴풋이 느낄 때쯤, 나는 괜히 정돈된 철길과 산책로를 핑계 삼아 일부러 역에서 먼 길을 찾아 더 걷자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왔던 길을 한 번 더 걸었다.


누군가 얘기했다. 자신에게 있어 사랑에 빠지는 징표는 상대와 더 걷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고. 헤어지기 아쉬워 더 걷고 싶은 기분, 그게 자신에게는 사랑의 징표였다고 한다. 이제와 보니 나 역시 그랬다. 그 습한 여름날 왜인지 나는 너와 더 걷고 싶었다. 가로등에 비쳐 선명해진 나뭇잎과 밤하늘의 구름,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모든 풍경이 내 속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 여름의 공기는 분명 묵직했지만 한편으론 내내 간지러웠다.



3.

사람은 그가 이해한 만큼의 세계를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세계는 얼마큼일까. 아마 댄스곡만 좋아하던 유치원생 때보다는 폭이 조금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어른이 되기엔 한참 모자라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예전엔 몰랐던 노랫말이 이제는 이해가 될 때,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장면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질 때, 그때가 비로소 예전보다 더 커진 나를 만나는 때인지 모르겠다.



이문세 - 옛사랑


백현진 -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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