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섭 60년사(史) 1. 근속 30년 인간

아버지 인생 출판 프로젝트

by 이현승

"회사를 그만둬야겠어"

2018년 6월, 이대섭이 퇴근 후 텔레비전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첫째 딸이 다가와 말했다. 이대섭은 몇 분 간 말 없이 먹고 있던 밥 한숟갈을 마저 씹었다. 초조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는 딸에게 이대섭은 "그래서 앞으로 뭐 할건데"라고 물었다. 왜 그만두냐고는 묻는 대신, 향후 인생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이대섭 다운 한 마디였다고 딸은 생각했다.


딸은 서른한살에 첫번째 회사를 나왔다. 입사하고 6년을 겨우 채운 무렵이었다. 회사가 망해서 내쫓긴 것도 아니고 자기 발로 못해먹겠다고 뛰쳐나온 탓에 실업급여도 못 받았다. 앞으로 뭐 할 거냐는 이대섭의 물음에 딸은 공인노무사를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한 두어달 도서관에 출석해 공부를 해보더니 통번역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또 사기업에 취업하겠다고 했다. 이대섭은 화내지 않고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대섭의 인생은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는" 인생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이대섭은 3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월급을 탔다. 2020년이면 정확히 근속 30년을 채우고 퇴직 한다. 그의 회사에 지금까지 근속 30년 직원을 위한 혜택은 없었다. 근속 10년, 20년, 25년은 있었지만 30년은 2019년 들어 처음으로 생겼다. 지금까지 30년이나 이 회사에 재직한 사람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 된다. 이대섭의 동기들은 일찍 승진해 임원을 하다 회사를 떠났거나 만 55세 정년시대에 퇴직했거나 둘 중 하나 였다.


이대섭은 정년이 만 60세로 연장되고, 임금피크제 라는 제도가 새로 생길 때까지 별 탈 없이 회사에 남아있었던 덕분에 근속 30년을 채운 회사 창립 이래 역사상 첫 베이비부머가 될 전망 이다. 이대섭의 아내인 유경희는 "젊었을 때는 남들보다 승진을 못해 분통 터지는 날이 많았는데, 중년에 이렇게 잘 풀릴 줄 몰랐다"며 "세상은 오래살고 볼 일"이라고 기뻐했다.


이대섭의 퇴직에 맞춰 60년사를 엮어보기로 한 것은 첫째딸인 이현승 이다. 이현승은 첫번째 회사를 때려치운지 약 6개월 만에 두번째 회사에 어렵게 입사 했다. 이직한 지 고작 한 달 만에 이현승은 한 회사에 30년 간 다니는 사람의 대단함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위대함을 32살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된 고약한 한 자식의 뒤늦은 셀프 효도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