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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21. 2024

그는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2007년 4월 21일 드디어 우리는 결혼했다.

 연애할 때 나는 내게 있었던 모든 일을 얘기 했고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숨기는 거 없이 모두 털어 놓았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현재만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예전 모습까지

 끌어 안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감당이 안된다면 나를 떠나라고 말했었다.

 난 내 인생에 있었던 일에 당당했다.

 나는 피해자였을 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데이트를 하다가 내가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어지러워서

 응급실을 갈 때 마다 남편은 

 ‘내가 지금 능력이 없어 미안해. 돈 많이 벌어서 

내가 이 병 꼭 고쳐줄게’ 

라고 울면서 얘기 했었다고 앞전에 얘기했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나 정서적 안정과 치유로 인해

 정신과 약을 거의 끊기 직전이었다.

 정신과 약은 주치의 허락 없이 한 번에 끊으면

 안 되는 약이다. 오히려 재발이 와서 더 심한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안정제 반알만 먹고 있었고 시간적 여유를 두고

 그 반알마저 끊기로 의사 선생님과 치료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사건이 있었다.

 신혼 초였는데 내가 정신과 점심 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가와서는

 ‘내가 제약회사 다녀서 아는데 이거 다 화학 약품일 뿐이야. 

몸에 좋은 것도 없는데 왜 계속 이 약을 먹는 거야?’

 라는 말과 함께 내 모든 약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다 던져 버렸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됐다.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면서 내 병을 꼭 고쳐주겠다며 약속하고

 내 상처까지 다 이해하고 보듬어 줬던 사람인데 나를

 약물 중독자로 취급하는 저 사람이 하늘이 내게 주신

 유일한 선물이라 믿었던 사람인가 싶었다.

 난 너무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그 사람은 울고 있는 나를 놔두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우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가 ‘우리 딸?’ 이라며 반가워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놀라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고 난 사실대로 말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 우울증이 왔었다고 한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자살 유혹이 자꾸

 찾아 왔다고 한다.

 항상 엄마를 따라 다니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며 엄마를 웃겨 주던 딸이 그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반려견인 재롱이 마저 없는 집안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재롱이는 날 너무 좋아해서 결혼과 동시에 내가 키웠다.

 난 처음에 엄마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는데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엄마 친구랑 전화하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내가 힘들 때 엄마가 나를 병원에 데려갔듯이 나도 엄마를

 당장 병원에 데려 갔다.

 엄마의 계속되는 물음에 난 사실을 이야기 했고

 부모님은 급하게 우리 집에 오셨다. 부모님 모두 

이 어이없는 상황에 많이 화가 난 상태였다. 다른 건 

몰라도 현진이가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결혼했는데 어떻게 결혼하자마자 치료제인 약을 베란다

 밖으로 던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남편은 또 다시 약에 손을 대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내가 약을 먹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부모님이 오시자 우선 남편은 무릎을 꿇었다.

 아빠가 말씀하시기를

 ‘다 내가 잘못한거야. 내가 힘들게 해서 현진이가 약 까지

 먹게 했어. 현진이는 잘못이 없어. 정신과 약도 다른 과 

약 처럼 치료제인데 어떻게 치료약을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밖에다 던질 생각을 했어’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아빠가 소리 소리를 지르지 않고 화가 난 상태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훈계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부탁의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이제 편하게 앉으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끝까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일단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무릎을 꿇은 거고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반항하는 마음에 편하게 앉으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자 나한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까지 질책을 받아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기로 끝까지 무릎을 펴고 있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이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이 사람은 시댁 큰 집의 형님들이 자기한테 

뭐라고 하면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대들었다. 

그래서 큰 집 사람들은 오빠에게 말을 잘 안 걸었다.

 왜냐하면 언제 또 화를 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오빠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판단되면 그 누구도

 못 말리게 자기 생각대로 밀어 붙이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고집도 엄청났다.

 근데 이런 모습이 긍정적 작용을 할 때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작용 할 때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께 혼날 때 겉으로는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기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며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

 차가 없던 시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의사 한 분이라도 

더 만나 보려고 그렇게 뛰어 다녔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뚜렷해서 최종적인 꿈이 있었다.

 그런데 신혼 때 회사를 옮긴 이 사람은 아침에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집에 아침 10시나 11시에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놀래서 이래도 되는 거냐며 실적으로 보여주는

 게 영업사원인데 이번 달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냐며 

오히려 내가 걱정했다.

 이 사람은 30살이 되면서 약간 느슨해진 건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취업이 안 되서 대학 4학년을 포함해 1년 

8개월 동안 백수였는데 자기를 받아준 A회사에 충성심과

 20대의 패기로 실적 1위를 달성했다.

 근데 이제는 요령과 수단을 안 것이다.

 난 그런 모습에 실망을 했다. 사람이 출근을 했으면 

집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가 퇴근을 해서 집으로 

들어와야 하는 건데 이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집에 

들어와서 쉬다가 다시 나가고는 했다.

 그리고 기가 막힌 것은 다시 일찍 오전에 집에 들어왔는데

 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에이~ 타이밍 잘 못 잡았네’ 하며 들어왔다.

 도와주기는커녕 재수없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취미는 프라 모델인데 

그 중 건담을 조립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비를

 사서 자신만의 색깔로 도색을 하거나 개조를 하는 등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자기 방이 너무 작아서 장비가 들어갈 수

 없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드레스 룸에 작업실을 만들고

 거기에 쳐 박혀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리지 않고

 자신 만의 취미 생활을 했다.

 나는 마치 과부가 된 것 같았다.

 주말에도 난 집에서 TV만 보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신혼인데도 불구하고 뜨겁지 않았으며 함께 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연애할 때 영화가 너무 좋아 하루에 2편을 본 적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해도 극장에 가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남편에게 또 다른 취미가 있었는데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때 데뷔한

 소녀시대의 뮤직 비디오를 계속해서 재생해서 보고 이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샅샅이 찾아보고는 했다.

 마치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같았다.

 난 하루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고 몰래 보는

 것 보다 차라리 나 보는 앞에서 저러는 것이 낫다 싶어 넘어갔다.

 하지만 연애할 때는 전혀 본 적이 없는 그림이고 어쩔 때에는 

솔직히 변태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만큼 보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우리도 데이트 좀 하자고 졸랐다.

 그러면 나가기는 했지만 영화만 보고 밥 먹고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간단한 집안일은 도와주기로 했는데 그는 도와주기는커녕

 주말에 청소를 하고 있는데 내가 쉬는 날에 왜 청소를 하냐고

 큰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당신도 쉬니까 같이 하면 빨리 끝나는 게 

청소인데 같이 할 생각은 전혀 안하는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크게 싸웠던 기억도 있다. 

 난 이 사람의 엄마가 아니라 아내다.

 근데 이 사람은 나와 결혼을 하면 자신의 엄마 역할까지 

당연히 내가 할 거라는 착각을 한 것 같다.

 와이프가 청소기를 돌리면 자기는 여자가 하기 힘든 화장실

 청소를 해 준다거나 간단한 분리수거 정도는 같이 해 줄 수 있는 일인데

 타이밍을 못 맞췄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책임감은 있지만 나이만 들었지 아직 미성숙한 

상태로 가정을 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모델, 장난감, 피규어 등을 모으는 사람으로 

키덜트족의 모습도 강했다.

 그러니까 결혼 전에 자기 엄마가 청소해 주고 

밥 해 주고 빨래해주는 것을 결혼 후에도 

그렇게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혼 전에 꼭 생각해 볼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한 사람의 독립 인격체로 누구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이 갖춰줬는가를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난 책임감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묘하게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오래 연애해서 결혼한다거나 내 친구들이 다들 

결혼하니까 나도 결혼하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내가 불행하거나 나를 사랑해 준 상대방이 불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보 같이 늦게 눈치 챘지만 이 사람이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나한테 미안하지만 결혼반지를

 안 끼고 다니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 이유는 거추장스럽다는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평소에는 결혼반지를

 끼다가 나중에 결정적 상황이 오면 결혼반지를 빼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라고 한 건데 내가 참 

단순했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순간이 올 줄 몰랐다.

 또 알고 보니 결혼하기 전 까지 자동차에 우리 둘이 

여행 가서 찍은 액자가 결혼 후에 치워져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내가 1순위가 아니었다.

 우리는 신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부관계도 거의

 한 달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렇게 연애할 적에 내 몸을 탐내던 그는 이제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가지고 온 물건을 다시 정리하는데

 CD통이 2개나 있어서 무슨 내용이 담긴 CD인지 궁금했다.

 이 사람이 영화를 좋아해서 아마 영화를 구워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CD를 틀었는데 세상에 야동을 다운로드

 해서 CD로 저장까지 해 논 것을 보고 내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생각에 빠졌다.

 설령 이런 CD를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더 이상 총각도

 아니고 한 아내의 남편이 되는데 굳이 이 CD통을 2개나

 그대로 가지고 와서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것에 대해 말을 꺼내면 남편이 많이

 창피해 할 까봐 못 본 척 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많이 참고 산다고 생각했겠지만 대범한 

면인 있는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토요일에 내가 늦잠을 자고 있는데 거실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안방에서 나왔는데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서

 그 CD를 틀어 놓고 자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로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혼자 자위 하는 모습을 한 여러번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가 많이 민망해 할까봐 왜 야동을 밤에 보지

 않고 대낮에 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침에 성욕이

 있다며 대답하는데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게 그런 모습을 들키고도 그 CD통을 버리지 않았다.

 솔직히 아내로서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나를 더 이상

 여자로 보는 것 같지 않고 내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별 생각을 다하게 되고 매우 자존심이 상한다.

 한마디로 설레임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오래 연애를 하고도 결혼해서 잘 사는 부부들이 

있겠지만 난 너무 오래 연애 하는 걸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권태기가 찾아오고 설레임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혼부부로서 꿀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 때 내 친구들도 줄줄이 결혼을 했는데

 1년 아니면 1년 반에서 2년 동안 사귀고 

결혼을 하니까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신혼부부처럼 

알콩 달콩 하고 함께 있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보였다. 

 선인장은 시들지 않는다. 

 그러나 대신 선인장의 가시처럼 가까이 갈 수 없는 

서로 간에 일정 거리가 있었다.

 나의 신혼 생활이자 결혼 생활은 외롭고 건조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내가 분위기를 바꾸기로 마음먹은 

것이 그가 취미로 삼고 있는 프라모델에 관심을 가져 주고 

정모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주로 우리 또래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는데 그 친구들은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많이 따랐다.

 그래서 이 친구들과 서울이나 일산에서 만남을 갖고 술자리를 

즐기고 노래방을 가는 등 해서 주말에 집에 혼자 쳐박혀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는 것에서 탈출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우리 집에 초대해서 와인을 마시면서 얘기하고 

우리 집에 뻗어서 자는 그들에게 다음날 해장을 하라며 짬뽕을 

시켜주고는 했었다.

 그렇게라도 사람들과 어울려서 부부가 함께 하는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다.

 아마 내가 내 친구들과 매주 만나서 함께 하고 한달에 한 두 번 정도

 주말에 매일 초대해서 자고 가기까지 했다면 이 사람이 그것을 

이해해 주었을까?

 이렇게 우리의 신혼은 그냥 한집에서 산다는 것 빼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 결혼은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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