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파마와 특공복, 츳파리 스타일. 무조건 반항하던 그 시절 일본 폭주족
70년대 부터 마구잡이로 등장하기 시작해 80년대는 낭만으로 그려지며 일본 영화와 만화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고, 90년대를 지나 현재는 사그라 들었지만 아직도 이들 하면 어딘가 뒤틀린 낭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폭주족.
폭주족, 정의를 찾아보면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길거리에서 난폭하게 달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라고 나와있어요. 근데 단순히 난폭한 오토바이족으로 보는게 아닌,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각자 고유의 깃발이나 유니폼을 들고 있는 경우가 있고 여기에 각자 집단의 이름을 새겨넣으며 아이덴티티를 표출하죠.
또 이 폭주족들은 위아래가 세트에 수많은 글들이 수놓아진 특공복을 입고 다녔어요. 원래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카미카제를 특별공격대라고부르기도 했는데, 폭주족들이 입는 이 옷은 특공대랑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워낙 가오에 죽고 사는 폭주족이기 때문에,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는 특공대의 정신이 바탕이 된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특공복은 원래 흰색이나 검은색위주였지만, 1990년대부터는 여기에도 개성(?)이 더해져 빨간색과 파란색 등 색상이 늘었습니다.
컬러 베리에이션이 늘면서 세퍼레이트식의 디자인도 나왔는데 이 특공복에는 자기가 속한 그룹명이나, 포부 등이 수놓아져있거든요. 여기에 더해, 은퇴식이나 싸움의 날 등 이들에게 특별한 날에는 특공복에 완장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펀치파마 라고 해서 컬이 자글자글 들어간 단발 파마를 하곤 했는데, '싸울 때 머리가 잘 잡히지 않는다란 이유로 많이 선호했다고 해요. 그래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야쿠자의 경우에도 이렇게 펀치펌을 한 경우가 많고, 이 당시 영화에 등장하는 악역의 경우 펀치펌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일본 폭주족의 역사는 거슬러 거슬러~ 1950-1960년대 무렵에서부터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부유층을 중심으로 고가였던 오토바이를 집단으로 타고 다니는 젊은이가 등장했는데, 요란한 폭음을 울리면서 스피드를 즐겼거든요.
그리고 이들에게 카미나리족, 즉 천둥족이란 이름이 붙습니다. 이 때까지만해도 스피드와 굉음을 즐기는정도데, 시간은 흘러, 1970년대에는 오토바이가 저가화와 함께 널리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가 불량 청소년들에게도 침투하면서 폭주족이 대두되게 되었는데요. 참고로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언론에서 낮동안 취재로 얻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뉴스 전 급속으로 보내기 위해 오토바이를 썼다고 해요. 그 때 프레스 라이더라고 해서, 이 취재물을 신속하게 운반을 하는 라이더들이 생겼는데, 이 모습이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동경을 얻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렇게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는 폭주족의 전성기가 펼쳐집니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젊은 남성이었지만, 레이디스라고 해서 이 때 여성 폭주족도 등장했는데요.1975년 기준 일본 전국에 571개 그룹, 약 2만 3천명이 폭주족에 몸담았는데, 이 숫자는 점점 증가해 1982년에 4만 2510명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들의 성장기인 70년대 이후부터 츳파리, 양키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해요. 양키는 우리나라말로 바꾸면 일진? 불량배 같은 느낌인데요. 미디어를 통해서도 양키, 양키 소녀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츳파리 역시 비슷한데, 사회에 반항하며, 불량한 행동들을 말합니다. 츳파리는 폭주족 패거리를 넘어서, 불량 학생들의 스타일로도 자리잡게 되는데요..
한 일본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학교에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해요. 이유는 단순하게도 자꾸 학생들이 깨기 때문에…그렇게 유리창이 없는 상태로 겨울이 돼서 “아 추워”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를 보고 자신의 담임선생님이 “이젠 방탄 유리라도 붙여야 되겠다”고 말했다고 해요.
이게 근데 과장 같지가 않은게 이 시기의 반항의 아이콘이자 시대의 상징인 가수중 하나가 오자키 유타카입니다. 이 분 자체가 꽉막힌 사회에 반항하며 학교를 자퇴하고, 자체적으로 졸업이란 노래를 만들면서 10대의 대변자로 우뚝 서는데, 자퇴생이 부른 졸업이란 노래의 가사엔 대놓고 “밤의 교사 창문을 부수고 어슬렁거렸어” “계속 반항하고 몸부림치고 빨리 자유롭게 되고 싶었어”란 표현이 나오거든요. 이런 노래에 힘입어 더더욱 창문이 많이 깨져나갔다고 합니다.
츳파리 컨셉으로 대중에게 어필한 또 다른 가수가 있는데요. 오자키 유타카랑 같이 1965년에 탄생한 가수인데… 바로 나카모리 아키나. 이후에 청순 가련 애틋한 이미지가 많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아키나야 말로 불량 소녀 컨셉으로, 노래에서도 불륜 등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곡 십계 무대를 보시면 당대 라이벌로 꼽혔던 마츠다 세이코의 청량한 이미지와는 달리 어둡고 강한 느낌이 물씬 풍기죠. 세상 전체가 양키를 동경하던 시기였습니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90년대 우리나라는 강한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에 못지 않게 80년대 일본은 폭력과 카오스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츳빠리 문화가 탄생한 배경으로는 전후 일본의 주입식 교육이 꼽히기도 합니다.
1945년 일본의 전쟁 패배 이후 자라난 어른들이 중년이 되는 때가 70-80년대거든요. 이들은 전시 하에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개성의 표출은 오히려 잘못 튀어나온 못으로 치부되며 성장했어요. 이렇게 자란 이들이 똑같이 아랫세대를 대하자 갈등이 발생한거죠. 70년대에는 '수험지옥', '수험전쟁'이라는 말이 퍼질정도로 교육열과 교칙이 강화됐는데, 이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츳파리 패션 역시 '정해진 대로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정신 하에 권위나 강한 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깔려있다고 하죠.
규격화된 교육에 반항하기 시작하면서 자유를 갈망하고 그렇게 폭주족에 가입하거나, 양키로 전향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혈기 왕성한 소년들이 집단으로 뭉쳐다니다 보니 단연 집단간 갈등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가오가 생명이었잖아요. 대화로 풀기보단 육체로 풀었습니다.
싸우고, 깨지고, 다시 무찌르기 위해 뭉치다보니 연합체가 나타나는데 그렇게 나온게 토호쿠 연합, 관동연합과 같은 조직들입니다. 그리고 항쟁의 시대가 도래했죠. 아마 관동연합에 대해선 익숙하신 분들도 계실텐데,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을 가했습니다. 미타테 신이치, 시바타 다이스케 등 관동연합의 우두머리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요. 이시모토 다이치란 인물은 아예 관동연합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서전을 내고 탤런트 데뷔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의 선을 넘어도, 너무 세게 넘으면서 문제는 발생합니다. 롯폰기 클럽 사건이라고 있어요. 롯폰기는 도쿄의 중심 오프 중심이거든요. 그런 롯폰기 고급 클럽에 복면에 철파이프를 들고 온 남성들이 손님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범인이 범행을 벌이는 데 든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고, 일이 끝난 뒤엔 바로 도주했고, 피해자는 사망했죠. (문제는...이들이 폭행한 피해자가 원래 노렸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외모가 비슷했을 뿐이라고)
암튼 폭주족이 범죄집단화 되자 일본 정부도 오토바이 면허체계를 소형과 중형으로 나누는 제도를 도입하고, 집단에 의한 교통 방해나 위험을 초래하는 일련의 행동을 처벌하는, 공동 위험행동을 금지하는 법도 마련됩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는 폭주족 붐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합니다. 폭주족이 사그라들게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문화에 있었습니다. 이들 집단은 상하관계가 비정상적으로 엄격했거든요. 이 때문에 이를 어기면 기합을 받거나, 싸움이 약한 후배는 계속 심부름을 해야했고, 얻어맞는 등이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한마디로 통제 자체가 엄격해진거죠.
근데 사실 이 청춘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학교 대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폭주족에 원래 가입했던 것이거든요. 점차 야쿠자 하청 조직과 같은 형태가 되자 자유는 사라졌고, 엄격한 규제에 낭만도 사라졌죠.
어느 조직이든, 신입사원을 받아야지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되는데 유입이 줄어들자 폭주족은 늙어가기 시작합니다. 90년대 이후에는 구심력의 저하로 후계자가 생기지 않기 시작했는데, 기존에는 후배를 가입시킴으로써 '성인이 되면 은퇴하는 관습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신입이 없어지자 은퇴할 나이가 되어도 은퇴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OB를 재가입 시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죠.
폭주족이 고령화된것입니다. 이제는 특정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듯한 일본의 폭주족들.
그럼에도 문화와 만화에서는 아직도 회자가 되고 있는데요.
도쿄리벤저스란 만화 아시나요? 20217년부터 주간소년 매거진에 연재된 만화인데, 등장인물들이 도쿄 만지회 소속으로 주로 항쟁의 내용을 다룹니다. 폭주족붐은 사라졌지만 도쿄만지회라는 폭주족을 다룬 만화가 일본에서 히트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는데..
이에 한 기자가 ‘폭주족 자체가 멸종위기인데, 이런 만화는 왜 유행인가””なぜヤンキー自体が絶滅危惧種になっているのに、マンガは読まれるのか와 같은 글을 썼어요.
레이와에 접어든 이 시대에 양키 캐릭터가 유행하는건, 폭주족 자체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합니다.
양키만화의 본질은 '싸움'이나 '다툼'의 장면이 아닌, 재지 않고 일단 싸워버리는 '서투름’과 ‘젊음’에 있다는 것이죠. 이는 원피스의 루피, 오공 등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올곧은 바보와 같은 캐릭터성이 시대와 세대에 상관없이 먹히는것이고, 그게 바로 과거 폭주족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현실세계에서 거의 멸종되었어도, 만화와 문화로는 계속 존재하는 이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