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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나도 모르겠다

다바오 적응기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이렇게 무지해서야. 대체 나는 무얼 보고 이곳으로 온 걸까.

어디든 한번 두 번만 봐서 뭘 알 수 있을까 싶다.

얼마 전, 김창욱 강사님이 나온 짧은 쇼츠를 봤다.


지금 거주하는 곳은 임시처소다. 아는 분의 지인 선교사님이 살던 집인데 사역지가 너무 멀어 사모님이 이따금씩 나와서 쉬는 집이고, 자녀들이 오가는 집이다. 또한 비어있는 기간에는 보딩 하우스로도 쓰인다. 우리는 지금 그 집을 렌트해서 잠시 머무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 본다.

왜 잠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을까?


다바오의 날씨는 너무 덥다. 10월, 1년 중 선선한 달이란다. 그래서인지, 막 덥다가도 오후 5시만 넘으면 더위가 싹 누그러지고 어둑 해진다. 여기는 적도.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진다. 어둑해지면 풀벌레 소리가 커지는 데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 우는 소리 정도야 버틸만하다.


며칠 살아보니 정말 머리 아파서 힘들다. 지금 창 밖에서는 진동에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큰 음악 소리가 들린다. 이 음악소리는 꽤 정기적으로 나는데 얼마나 크냐면 내 심장 박동이 크게 들리는 것 같을 정도로 크다. 오전에는 잔잔하지만 꽤 큰 음악소리가 들렸는데, 지금 저녁 시간에는 정기적인 박동 수가 귀를 때린다. 정말이지 골이 울려서 미칠 지경이다. 공항과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지역이다 보니 비행기가 수시로 지나간다. 녹음을 하거나 일을 하다가도 중간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잠시 멈춘다. 그 정도로 소음이 크다.


집에는 개미가 미친 속도로 기어 다닌다. 살다 살다 이렇게 빠른 개미는 또 처음 본다. 무슨 강력 파워 에너지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이런 속도로 온 방을 기어 다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자면 기가 찰 노릇이다. 침대고 식탁이고 책상이고, 주방 싱크대 할 것 없이 자주 출몰한다.


인터넷 와이파이 속도는 정말 속 터진다. 로딩이 길어도 길어도 이렇게 길 수가 없다. 줌은 몇 번이고 렉이 걸려 진행이 안된다. 나는 이제 수업을 다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울고 싶을 정도의 답답함이 있다.


이렇게 와이파이가 느려터진 나라에서 교통은 얼마나 혼잡한지, 길을 나가면 내 심장이 쫄깃거린다. 세상 이렇게 운전하는데 사고가 잘 안나는 걸 보면 신기하다. 베스트 드라이버들만 모여놨나 싶을 정도로 서로 잘도 피해 다닌다. 차 안에 타고 있으면 내 심장이 밖으로 나왔다 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고도 궁금하다.


들어오는 날 지진이 있었고, 여진이 몇 차례 더 있었다. 오늘 낮에는 쇼핑몰에 볼일을 보러 갔는데, 계산하려고 줄 서 있는 상태에서 살짝 어지러웠다. 땅에 붙은 내 발과 다리가 건물의 미세한 흔들림을 느꼈다. 눈을 들어 천장에 매달린 각 구역 안내 표지를 보니 흔들리고 있었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에도 그 흔들림을 느꼈고, 약간은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그러나 주변의 현지인들은 아무도 동요하지 않고 각기 자기 일을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가지 않는다. 입학 테스트는 내일이고, 아직 학교에서 허가가 나지 않았다. 미리 보낸 서류들이 두 번이나 누락 됐으며 서류가 늦어진 탓도 있지만 오자마자 가지 않아서 실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반면, 일주일이라도 현지 날씨와 생활에 적응할 시간이 있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계속해서 이유를 묻고 있다.

이렇게 심장이 쫄깃한 상태를 몇 번이고 겪는 중인데, 왜 나는 이 나라로 왔을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까. 그렇게만 생각하면 한숨과 기대가 동시에 나기도 한다.


너무 더워서 머리가 띵한 상태가 반복되는 중이다.

이렇게 몸이 적응되나 보지만, 그냥 버텨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고려해 봐야 되는 건지도 남편과 이야기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몹시 기대하고 있으며, 나보다 더욱 태연하게 지금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다.


< 미처 제 날짜에 발행하지 못한 저장된 글, 나중 기록을 위해 순서가 뒤틀렸지만 업로드해둔다. 도착한 지 일주일 안에 기록한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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