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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도 막는 아령의 위력

다바오 적응기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임시 거처는 아는 선교사님이 소개해 준 또 다른 선교사님의 집이다. 집을 구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 집에서 약 2-3개월은 머물 수 있다고 했고, 우리는 집을 구하는 대로 나갈 생각이었다. 집에 밤손님이 왔다 가기 전까지는 …


집에 도둑이 든 날 이후 이틀 만에 또 다른 도둑이 바로 옆집 그리고 아랫집에 찾아왔다.

“도! 도둑이야!! 도둑!!!”

한참 고요하게 잠들었던 새벽 3시!

남편도 나도 선잠을 자던 중이라 더 잘 들었다. 도둑이 든 이후 우리 가족은 모두 새벽마다 돌아가며 보초를 섰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잠이 오질 않았다. 또 오면 내 이 방망이로 너의 정수리를 내리쳐 주겠다는 마음으로 새벽녘이면 방망이를 들고 문 앞을 서성이기도 했던 때다.

아랫집 아저씨의 도둑이야의 고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무 현관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내 생애 이렇게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언제였는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랫집 2층 아저씨는 골프채를 들고 계단을 뛰어내려 갔고 문 밖에서는 오토바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랫집 아저씨는 새벽 3시경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는데 누가 문을 열려고 애를 쓰고 있어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아랫집부터 내려갔다가 3층으로 올라오는 길 옆집을 봤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문을 뜯은 흔적이 있었다. 옆 집도 털려고 했구나 싶어 집주인을 불렀지만 자고 있는 듯 한참 있다 나왔다.

집 안에 없어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

도둑은 사람이 잠을 자지 않는 방 창문형 에어컨을 뜯고 들어왔고, 나무 출입문 앞을 막아둔 파란색 정수 물도 옆으로 치워뒀다. cctv 선도 뽑았고, 그 집 데스크 탑 본체를 1층에 내려두고 2층 도둑질을 하려다가 걸려서 그대로 도망간 거다. 문 앞에 신발도 벗어두고 갔다.


한 번 아니, 두 번이나 왔다니,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이 건물에 두 달 안에 아랫집 몇 집도 낮에 두 집이나 가방을 도난 당했댔다. 짧은 시일 사이 또 다녀가고 나니 이때부턴 더욱 밤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밤 12시를 향해가면 거실 등을 켜두고 자야 할지 꺼야 할지 고민했다.

자물쇠를 새로 달고도 불안이 계속 됐다. 창 밖에서 곤충 소리만 나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매일 밤 의자, 빈 물통, 선풍기 빨래바구니 등을 켜켜이 쌓아 문 앞을 막았다. 설령 따고 들어와도 소리가 크게 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눈에 파란색 아령이 들어왔다. 5kg짜리가 얼마나 문을 막아줄까 싶어 문 아래 받쳤는데 그 위력은 상당했다.


“자기야, 내가 진짜 좋은 걸 알아냈어! 이거 봐라.”

문 아래 아령만 달랑 받쳐둔 채 문을 힘껏 열었는데 문이 뒷부분은 덜렁 열릴 듯 움직여도 아래는 꿈쩍도 안 했다. 아래 타일과 고무가 마찰을 일으키면서 잠금장치 역할을 해주는 거다. 나이스! 이게 그리 좋아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이 작은 아령이 주는 안정감은 꽤나 대단했다.

우리 나가고 나도 이 집에 살 사모님한테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린다면서 얼른 알려드렸다. 우리를 돕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발견을 나누며 마음이 그나마 좀 편해졌다는 말도 전했다.


도둑맞은 지 일주일 차.

아이패드를 찾았다. 경찰뿐 아니라 현지 NBI까지 동원되어 수색했다. 이례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란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경찰서만 네 번을 갔고, 용의자 추정 거주 지역만 세 번을 갔다. 경찰이 이렇게 적극적인 적도 없고, 잃어버린 걸 찾는 일도 극히 드문데 찾았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다.

용의자를 잡을 생각도 없었다. 잃어버린 물건도, 현금도 맘 속에서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그저 다시 찾아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내 신분증 가져간 그 도둑이 어디서든 나를 알아보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이패드를 찾았고 용의자도 누구인지 경찰은 아는 것 같았지만, 경위서에는 그 이름을 언급하지도 잡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용의자가 은퇴한 경찰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소리도 있었고, NBI 측에서는 깊게 파고들자면 다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이제 덮자고 했다. 그 중심에는 우리를 잘 모르지만 열심히 도와주려는 한국인과 필리피노도 있었다.


남의 땅에 와서 폭풍 같은 한 달을 보내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 것 같다. 그 복잡한 도로를 보면서도 이제는 나름대로의 질서도 보인다. 어떻게든 내가 빨리 적응해야 아이들도 잘 적응할 거란 생각이 일상부터 단속하려 애쓰는 중이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진짜 희한해요. 이 집은 정말 돕는 손길이 느껴진다니까요.” 하나님이 도우시고, 사람이 돕는 손길 속에 그저 또 감사로 위안받는다. 아령도 자기 힘으로 힘껏 나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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