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라카운티 마틸리야/에코토피아 온천
'프로즌 컬쳐'(Frozen Culture). 미국 정신건강 카운셀러 욜라 가마시(Yola Ghammashi)가 창안한 정신 분석 개념이다. 새로운 땅에 정착한 성인 이민자들이 현지 문화를 배우는 것을 거부한 채 과거 습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동시에 진보하는 조국의 문화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정체 현상을 말한다. 즉, 정신적 냉동 인간 상태를 뜻한다.
미국 거주 한인 수 180만명. 해마다 한인 4000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인 이민 사회는 마블 영화에서 등장하는 절대적 힘 '타임스톤'이 작동한 것처럼 한 시간대에 여러 시공간이 열려 어지럽게 섞여있다.한국 집회 현장에서나 들어볼 법 한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의 정치적 견해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내 맥도날드에서 접할 수 있고, 한국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냄비근성'이란 단어를 한국을 비판하는 이민자 청년의 입에서 들을 수 있다. 미국 내 한인 회사에서는 강도 높은 군대식 위계 서열 악습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날도 여러모로 '정신적 조인트'를 까여 주말 내내 집에서 누워 있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그렇고 그런 복잡한 사연들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다 차단하고, 그래도 새는 것이 있다면 검은색 셀로판지로 집안 틈새를 다 발라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누가 이상한 거야'라며 혼자 되뇌던 질문의 탑은 와르르 무너져 나를 덮쳤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허나 어쩌나, 미리 정한 여행은 떠나야지.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130km, 캘리포니아 벤투라카운티 농촌마을 오하이(ojai)로 향했다.
'정신적 조인트'를 까여도 여행은 떠나야지
오하이는 북쪽으로는 로스 파드레스 국유림이,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24km 떨어져 있는 휴양마을이다. 영화배우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집 등 영화배우나 유명 사업가의 별장이 많다. 한 지역 언론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느리고 졸린 마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0년 전 주택 중간가격이 우리 돈 60억 원대로 억 소리 나는 동네다. 인구는 7400명, 십중팔구(87.5%) 백인이다.
오하이는 아메리카 원주민 추마시(Chumash) 언어로 '달(awhay)' 또는 '둥지' '보금자리'란 뜻이다. 자기장인 볼텍스(Boltex)가 강하게 흘러 미 전역에서 요가와 명상 수련을 하러 모인다. 대표적인 명소는 '메디테이션 마운트'로 해발 440m에 있는 명상 센터다. 동양식 정원인 '국제 평화의 정원'이 잘 알려졌다. 하지만 2017년 12월 토머스 산불로 인근 산림 11만 4000ha가 불타면서 잠시 문을 닫은 상태다.
마을 곳곳에서 명상, 요가 모임이 활발히 열린다. 다운타운에 있는 마트 앞 게시판에는 영적 축제, 인도 명상, 걷기 명상, 요가 모임을 한다는 광고지가 촘촘히 붙어있다. 그 가운데 태극 문양에 기공(Qi Gong)이라고 써진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종이 오른쪽 상단에 연필로 '오후 3시'란 한글이 암호처럼 작게 쓰여 있다. 여기서도 한국인이 살고 있나 보다.
마을은 흡사 제주도 같다. 구멍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 대신 누렇고 크고 단단한 사암이 많다. 이곳 사암은 해변가 방파제나 주택 외벽용으로 팔려나간다. 무엇보다 오렌지나 귤 농장 주변에 낮은 사암 돌담이 정겹다. 아보카도와 올리브도 많이 재배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3월말에는 느닷없는 꽃 향기가 아침 커피 카페인처럼 맥박을 바르르 뛰게 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용의자는 오렌지 꽃이었다.
제주도 전통시장에서 회 한 접시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오하이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인 파머스 마켓을 꼭 가야 한다. 매주 일요일 오하이 다운타운 디 아케이드 플라자 뒤편 공터에서 열린다. 시장은 왁자지껄한 민화 화폭이다. 곱게 염색한 두건을 쓴 여성 등 젊은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당근과 토마토, 브로콜리를 좌판에 올려 놓고 팔고, 한 켠에서는 악사가 기타와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한다. 흙이 묻은 야채들은 마르지 않은 물감처럼 오하이 푸른 하늘에 반사된다. 갓 잡아올린 횟감처럼 자기 빛깔을 살벌하게 내비친다.
'오렌지 소믈리에'가 되어보라. 오렌지라고 다 같은 오렌지가 아니다. 껍질이 잘 벗겨지는 작은 오렌지인 탱고 탠저린(Tango Tangerine)부터 귤의 한 종류인 골든 너게츠 만다린(Golden Nuggets Mandarin), 오렌지 전형인 워싱턴 오렌지(Washington Navel), 카라카라 오렌지(Cara Cara Navel), 자몽인 스타루비 그레이프프루트(Star Ruby Grapefruit) 등을 시식 코너에서 맛을 비교하며 먹을 수 있다.
오하이의 별명은 '미국의 샹그릴라(Shangri-La)'다. 1933년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이 자기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라마교 승려들이 사는 쿤룬산 서쪽 깊은 계곡을 샹그릴라라고 불렀는데, 4년 뒤 같은 내용의 미국판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프랜차이즈 없는 마을의 탄생
오하이는 1837년 농부 페르난도 티코가 이곳을 지배하던 멕시코 정부로부터 땅을 공여받아 농장과 가축을 기르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 뒤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에서 승리한 뒤, 독일계 이민자이자 부동산 개발업자 알지 서댐(R.G. Surdam)이 1874년 이곳으로 이주했고, 1917년 자신이 좋아하던 독일 태생 미국 작가 찰스 노드호프의 이름을 빌려 이곳을 '노드호프(Nordhoff)'라 불렀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내 반 독일 감정이 격화하자 독일식 이름에서 오하이로 바뀌었다. 현재는 공립인 노드호프 고등학교가 남아 있다.
오하이가 전국에서 주목받게 된 건 유리 가공업체 '리비 글래스 컴퍼니(Libbey Glass Company)' 대표인 에드워드 리비(Edward Libbey)가 놀러오면서부터다. 그는 깊은 계곡에 내리쬐는 햇살과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 1917년, 오하이에 큰 산불이 나면서 집과 상가가 모조리 불탔다.
자선 사업가이기도 했던 그는 많은 돈과 함께 마을 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마을을 스페인 식민시대 복고풍 건축 양식으로 재건하자는 것이었다. 둥근 아치형 기둥에 높이 선 종탑이 특징인 건축 스타일이었다. 스페인 선교사들이 세계를 다니며 유행시킨 스타일로 20세기초 미 서부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오하이 얼굴인 다운타운 아케이드가 이 스타일로 재건축됐다.
오하이에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없다. 2007년 시의회가 도시에 체인점 입점을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일부 체인점 주유소와 은행이 있지만 이마저 185㎡ 이하로 면적이 제한돼 있다. 처음에 일부 주민이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방해한다며 반대했지만 대다수 주민이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독특한 마을 분위기의 자립형 마을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그전에는 중심가 왕복 2차선 도로를 4차로로 확장하려다 주민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미국도 대형 체인점 탓에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대형 마트뿐 아니라 1~2층 규모 브랜드 옷 가게,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일정 공간 안에 밀집해 입점해 있는 '몰'이라는 형태로 지역경제에 들어온다. 한 번은 한인 트럭운전사와 캘리포니아 시골을 여행하는데 그가 말했다.
"화물차를 몰며 캘리포니아 시골 곳곳을 다녀봤어. 참 아름다운 동네지. 개성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저기 봐봐. 고속도로 옆에 몰이 없는 곳이 없지. 저게 들어오면 순식간에 마을 분위기가 바뀌어. 옛 정취가 다 사라지지."
오하이에서는 1947년부터 매년 오하이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피에르 블레즈 등 세계적 음악가들이 축제 감독으로 온다. 1964년 무인 판매점으로 시작한 중고서점 바츠 북스(Bart's Books), 오하이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오하이 밸리 뮤지엄, 히피 친화적인 예술품 가게들도 볼 만하다. 하룻밤 우리 돈 60만 원짜리 오하이 인(Ojai Inn)에서는 미 프로골프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숙박하지 않아도 둘러볼 수 있다.
인터넷 탓에 '개판' 된 온천
오하이 다운타운에서 10km를 이동해 목적지 마틸리야 온천(Matilija Hotsprings)으로 갔다. 굽은 산길 계곡에 면해 있어 지나치기 쉽다. 급한 마음에 불법 유턴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마틸리야는 추마시 언어로 '구역'을 뜻한다. 입구에 도착하니 사무실로 쓰는 캠핑카에서 여직원 마카가 나왔다. 마카는 바구니에 있던 유기농 귤 두 개를 건네주며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술, 마리화나, 사진 촬영 금지. 큰 소리로 말하는 것도 주의해 달라고 했다. 보통 온천에서는 풀어져 노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정숙을 강조했다.
이곳은 주민인 거나 러브레이스 가족이 구입해 비영리단체 에코토피아(Ecotopia)로 운영된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발달로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작은 온천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다. 탕 2개에 20여 명이 복닥복닥 들어가 온천욕을 하고 30명이 두 줄로 대기했을 정도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주변에 쓰레기가 쌓이고 술병이 나뒹굴고 폭력과 교통사고가 난무했다.
그것을 보다 못한 러브레이스 가족이 2000년대 초 주변 20에이커 땅을 사들여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 벤투라카운티 리포터와 인터뷰하면서 러브레이스는 "4대에 걸쳐 마틸리야 캐년을 자주 올랐는데 쓰레기로 망가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영적인 곳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이 주는 고결함을 즐기던 곳이 갈기갈기 찢겨졌다"고 말했다.
온천은 2013년 5월 폐쇄됐다가 6개월 동안 휴지기를 거친 뒤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웹사이트(OJAIHOTSPRINGS.COM)에 들어가 미리 예약해야 한다. 1인당 2시간 이용에 20달러다. 직원 마카는 온천 자랑을 계속했다.
"이곳은 원래 추마시 부족이 살던 곳이야. 온천은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던 공간으로 병을 치료하고 부족 간 물물 교환을 하던 곳이었지. 부족 간 다툼이 있더라도 온천에서는 휴전을 해야 했어."
차를 세우고 30m쯤 계곡을 따라 걸어내려 가니 온천탕 2개가 나왔다. 물거품을 내며 빠르게 흘러 내려가는 계곡 옆에 있었는데, 하나는 수온 40도로 따뜻했고, 다른 하나는 37도 정도로 미지근했다. 주변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는데 지난 겨울 비가 많이 내려 다 쓸려갔다. 온천 바닥에는 화산재 같은 검은 모래가 깔려 있었다. 흑과 백. 수묵화 같았다.
오하이와 로스앤젤레스 중간지점인 시미밸리에서 온 요가 강습팀 7명과 온천욕을 함께했다. 그들은 요가 강사 준비생들로 우리 돈 90만 원 가량을 내고 2박3일간 쉬면서 명상과 요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랑 같이 왔다는 보육교사 브리트니는 "오전에는 명상 시간을 가졌는데 다른 참가자가 펑펑 울기도 했어"라고 말했다.
온천욕을 끝내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도서관으로 갔다.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는 인도 출신 영성가로 14세 때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의 교사를 양성한다는 신지학회에 발탁돼 미국에 와서 철학과 종교를 공부했다. 신지학회 대표 주자로 성장하던 그는 1929년 예고 없이 지도자를 거부하고 그의 조직 '별의 교단'을 해체 선언한다.
그는 "진리는 길이 없는 육지다, 진리를 구할 목적으로 조직이 구성된다면, 그것은 목발이 되고 붕대가 되어 진리를 구하려는 사람을 불구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추종자들을 원치 않으며 인간을 모든 새장, 공포,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며 신지학회를 탈퇴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개 강연을 했다. 1922년부터 86년까지 오하이에서 살았는데 그에게 영향을 받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 찰리 채플린, 화가 잭슨 폴록이 그를 만나러 왔다.
비교도 의존도 하지 않는 온천 같은 삶을 찾아서
우리 부부는 그날 크리슈나무르티가 살던 집을 개조한 페퍼트리 리트릿(Pepper tree retreat)에서 하루를 묵었다. 요가와 명상을 하러 오는 사람이 주로 묵는 곳으로 술과 담배가 금지돼 있다.
이튿날 아침에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유기농 빵과 과일을 먹고 주변을 산책했다. 집 앞 커다란 페퍼트리 나무와 오렌지 나무가 싱그러웠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쉬 아물지 않고 여행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가 이상한 사람인가?'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꺼내 읽었다.
"스스로 '어떻게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또 하나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갈등은 증가하게 된다. 반면, 당신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보듯 그것을 사실로서 분명히, 똑바로 보기만 한다면, 당신은 아무런 갈등도 없는 삶의 진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우리(있는 우리)'와 '그래야 하는 우리(있어야 하는 우리)'를 비교한다. '그래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의 투영이다. 비교가 있으면 갈등이 있는데, 이 비교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과의 비교를 말하며 따라서 '있었던 것'과 '있는 것' 사이에 갈등이 있게 된다. 아무 비교가 없을 때에만 '있는 것'이 있으며, '있는 것'과 더불어 사는 것은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그래,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주변 사람과 화목한 것이 곧 평화도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있고 시기가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상대방을 '그래야만 하는 모습'과 비교하며 갈등을 증폭시킨 건 아닐까? 비교하지 말고 의존하지도 않고 스스로 생동하는 힘으로 홀로 나아가야 한다. 차갑고 거센 계곡 옆에서도 당당히 끓어오르는 온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