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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Nov 26. 2022

나는 미국에서 은행에 취업했다

어쩌다 미국에 살게 된 한국 남자 (ep. 8)

2019년 5월 초 나는 링크드인을 통해 한 은행의 인사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사실상 대학원을 졸업한 상태였고, 연초부터 꾸준히 데이터 과학자 자리에 지원했으나 전화면접과 코딩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시며 현장면접은 단 한 차례도 가지 못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은행은 내가 지원한 회사 목록에 없었고,  나는 무슨 영문으로 그가 나에게 연락했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미국에서 데이터 과학자를 비롯한 아이티 기술분야의 채용절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서류전형으로 시작해 인사과 전화면접과 채용팀 전화면접이 이어지고, 통과 시 코딩 테스트 기회가 주어진다. 그 뒤로 패널 면접이라 하여 함께 일하게 될 다수의 팀원들과 만나고, 추가적으로 부서장과 면접을 보는 것을 끝으로 채용이 결정된다. 인사과 전화면접은 직무와 회사에 대해 안내받는 수준이라 부담이 없지만, 채용을 원하는 팀의 팀장 면접은 사실상 기술면접이라 봐도 무방하다. 직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이력서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하는 형식이지만 언제라도 이론이나 실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4월에 첫째 딸이 태어나기까지 열 번 정도의 전화면접을 봤는데, 그중 세 개를 통과해 다음 단계인 코딩 테스트로 넘어갈 수 있었다. 결과를 받는 데까지 각 회사마다 일주일 정도 걸렸고, 한 군데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 A회사라 하겠다. 기쁨도 잠시, A회사의 인사담당자와 현장면접 일자를 조율하던 중 예기치 못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내부 사정으로 데이터 과학자의 채용 자체가 취소됐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데이터 분석가 자리가 있으니 거기에 지원하면 바로 면접을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제안도 뒤따랐다. 그때 이미 눈을 낮춰 데이터 분석가 자리에도 지원중이었지만, 이렇게 제멋대로인 회사라면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그 제안은 거절했다.


앞서 언급한 그 은행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알고 보니 나를 인터뷰했던 A회사의 데이터 과학자가 얼마 전까지 그 은행을 다녔는데, 자신이 떠난 자리가 아직도 공석이란 소식을 접하고 나를 그 자리에 추천했던 것이다. 은행의 인사담당자는 일단 지원서부터 작성하라며 링크를 보내줬다. 그리고 각종 전화면접과 코딩 테스트를 건너뛰고 곧바로 현장면접 이야기를 꺼내며 가능한 날짜를 고르라 했다. 나를 추천한 전 직원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다음 주 비행기를 타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샬럿으로 날아갔다 — 도시 이름 Charlotte은 영국 왕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전 내내 팀원들과 진행된 면접을 통해 채용 시 내가 하게 될 주요 업무는 은행에서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를 자동으로 탐지해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서 팀장과 부서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눈 뒤 같이 점심을 먹는 것으로 절차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생각해보니 경쟁자가 아주 적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비행기표부터 호텔, 리무진 서비스, 그리고 공항까지 내 차로 이동하는 데 든 기름값까지 다 챙겨준 걸 생각하면, 여러 명을 인터뷰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면접이 있던 그 주 주말에 졸업식이 있었고, 그다음 주 초에 나는 합격통보 연락을 받았다. 졸업 전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열성적으로 지원했던 모든 회사는 현장면접 한 번 가질 못했으나 제대로 지원하지도 않은 회사에, 그것도 지원했던 다른 회사들보다 여건이 좋은 은행에 취업하게 됐다. 사람 일이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란 말이 와닿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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