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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eless Diary Dec 03. 2022

나는 매일 역이민을 생각한다

어쩌다 미국에 살게 된 한국 남자 (ep. 10)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상은 종종 해왔지만, 정말로 돌아가고 싶어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진.


2021년 11월 추수감사절, 우리 가족은 처가를 방문 중이었다. 나는 2층 방에서 재택근무 중이었고, 와이프와 아이들은 1층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평화롭던 오후 4시쯤 갑자기 나를 부르는 외침에 다급히 내려가 보니 9개월 된 아들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무언가 목에 걸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와중에 구급차가 도착해 아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에서 전신마취를 받고 나서야 겨우 빼낸 물체는 내가 그 전날 처가 식구들에게 애들이 가지고 놀다가 목에 걸릴 수 있으니 쓰지 않는 물건이면 치우라고 부탁했던 철제 열쇠고리였다. 화가 치밀어 올 틈도 없이, 감염위험 때문에 당장 어린이 전문병원으로 이송해야 해서 헬리콥터가 오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됐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일단 응급차로 출발해 중간지점에서 헬리콥터가 아들을 실어갔다.


몇 시간 후 소아과 의사들은 물체는 완전히 제거됐으나 혹시 모를 전신마취로 인한 부작용이나 감염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72시간 동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아들은 다음날 깨어나 쉰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바로 퇴원해도 될 만큼 괜찮아진 아들을 보니, 이곳에서 두 밤을 더 자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들이 빠르게 회복할수록 병원비에 대한 걱정은 부풀어갔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기에 대체 얼마가 청구될지 감조차 오질 않았다. 퇴원할 때쯤 그 금액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거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보험사와 얘기한 후 금액이 정해지면 청구서를 보내주겠다고, 원무과는 병원을 떠나는 우리에게 말해줬다.


그 뒤로 아무런 소식 없이 몇 주 동안 비어있던 우편함에 청구서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초까지 스무 개가 넘는 청구서가 도착했다.  병원에서 진료과목에 따라 각기 다른 청구서가 보내져, 아직도 얼마나 더 올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다행히 의료보험에 상한제도가 있어서 우리는 4,000달러만 내고 나머지는 보험사가 모두 커버해주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됐으나, 그 몇 개월 동안 보험사가 얼마나 커버해줄지 알 수 없어 하루하루가 절망스러웠다. 보험 적용 전 병원비 총액이 한화로 1억 3천만 원이 넘어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이때쯤부터 역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험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아찔한 사고이긴 했어도 아들이 큰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1억이 넘다니? 앞으로 누가 또 병원에 가게 되면 어쩌지? 무서운 질문들은 해결책을 찾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게 됐던 것이다. 내 연봉은 줄어들 것이고, 아이들은 입시경쟁을 겪어야 하며, 와이프는 외국인으로 살아가게 될 한국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아플 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을 내 나라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곳에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이 있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도 수월하게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그뿐인가? 자정에 밤길을 걸어도 될 만큼 안전하고, 한국인들 또한 서로를 살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지 않나? 고국이 싫어서 떠난 면이 없지 않았기에, 갑자기 한국의 모든 게 좋아 보이는 나 자신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들의 사고가 한 걸음씩 과거로 멀어질수록 역이민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작아지고 있지만,  생각은 여전히 매일 나를 찾아온다. 당장 실행할 계획은 아니지만 한국의 채용공고를 둘러보고 있으며, 가끔 집값도 확인한다. 처음부터 큰 애착을 갖고 온 미국이 아니었기에 한 번의 큰 일로 여기에 정착하겠다는 마음이 뿌리부터 흔들렸던 것 같다. 지금 사는 곳이 꽤 마음에 들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단기적으론 여기에 있을 계획이지만, 언제라도 좋은 기회가 닿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장기적인 계획도 갖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뚜렷한 이유 없이 떠났을 때와는 다르게 분명한 이유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 그곳에 애착을 갖고 살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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