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완성
https://youtu.be/T3XephPnWYY?si=I0K7k_XPVgg29wWj
장대비가 뜨거웠던 청춘의 격정이었다면
부슬비는 생을 다독이는 나직한 위로다.
땅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마른 삶의 틈새마다 고요를 채우며 내려앉는
하늘의 낮은 콧노래.
서두르던 발길을 잠시 멈춰 세우면
비로소 사물들의 본래 색이 짙게 깨어나고
젖는 줄 모르고 적셔진 소매 끝으로
숨겨둔 진심이 번져 나온다.
세상은 한 권의 젖은 시집이 되고
비에 씻긴 여백은
그렇게 비로소 완성된다.
"때로는 젖어야만 보이는 색이 있습니다."
바짝 마른 채 달려갈 때는 보이지 않던 길가의 이끼, 낡은 담벼락의 질감, 그리고 내 마음의 진짜 색깔들. 부슬비는 우리에게 '멈춤'을 선물하고, 그 멈춤 끝에 우리는 가장 나다운 시집 한 권을 완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장대비가 휩쓸고 간 눅눅한 길 위로
당신이 건넨 낮은 콧노래가 고입니다.
앞만 보고 걷느라 놓쳐버린
길가 이끼의 초록과 담벼락의 숨결이
부슬비의 손길에 비로소 낯을 씻고
제 이름을 찾아가는 시간.
우리는 늘 젖지 않으려 우산을 세웠지만
어느덧 적셔진 소매 끝은
차가운 물기가 아니라
서로의 온기였음을 깨닫습니다.
다 채우지 않아도 좋은
축축한 여백의 시집 속에
오늘도 한 줄, 고요를 적어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