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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진서가 Jul 30. 2015

사랑이 끝난 후, 해야 할 일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

세상 어디엔가 살고 있을 내 첫사랑은
나를 또라이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요?”

“영화 보고 있어요.”

“무슨 영화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아, 장애인의 사랑을 상큼하고 산뜻하게 그린 일본 영화!”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해서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는 예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서 대성통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영화를 장애인의 산뜻하고 상큼한 사랑 어쩌고저쩌고 평하는, 센스 없고 감성도 무딘 남자와는 두 번 볼 것도 없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가 하반신 마비 장애인 조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맞다,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것은. 하지만 그게 상큼하고 산뜻했다니,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영화를 보고 울었던 이유는 조제가 나 같아서였다. 아니, 조제가 바로 나였다. 물론 그녀처럼 몸에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마음의 장애가 있다, 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왜 20대 초반쯤에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자신의 상처를 동족상잔의 비극, 이산가족의 아픔보다 더한 것으로 치장할 수 있는 것도 그때다. 세상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의 우정이라는 건 사실 대가를 바라는 우정에 가깝고, 그때의 사랑이라는 건 상대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 가깝다.     


그 나이쯤 하게 되는 첫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낮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이 기적이 잘 믿기지 않는다. 엄마 품에서 떨어져 세상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부터 우리는 끝도 없는 허기와 같은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그것들을 일거에 소탕해 줄 짝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유레카! 우리는 상대에게 이제껏 겪고 입었던 고통과 상처를 달래 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하려는 짓은 이제는 더 이상 엄마에게는 할 수 없는 짓, 그러니까 어리광이다.     


그래서 조제가 츠네오를 만났을 때처럼, 업힐 수 있는 상대가 생기자 나는 그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 어디엔가 살고 있을 나의 첫사랑은 나를 또라이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심지어 나 자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너만큼은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너는 나를 떠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못되게 굴어도 떠나지 않으면 그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적당히 했어야 하는데 너무 심했다. 나는 호랑이를 보고 싶고 물고기를 보고 싶다는 조제처럼 끝도 없이 칭얼댔다.    

  

당연히 그는 등에 업힌 내가 너무 무거웠을 테고, 견디다 못해 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그와 헤어진 지 2년이나 지난 후에, 츠네오의 등에 업혀 물고기를 보러 가자고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조제를 보면서 나는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조제가 지어 준 맛있는 밥을 마지막으로 얻어먹고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서는 새 여자 친구를 만나더니 갑자기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우는 츠네오를 보면서는 땅을 치며 통곡했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는 방바닥에 엎드려 휴지를 몇 롤씩 쓰면서 울거나, 매일 술독에 빠져 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상대에게 복수를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애도의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회복기를 지난 환자처럼 비틀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선다. 이제 우리에게는 재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재활 훈련을 제대로 하기 위한 첫 걸음은 그 사랑이 실패로 끝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실연을 통해 깨달은 나의 문제는 이랬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기에 너무 부족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바꾸기는 힘들었다. 나는 쉽게 좌절했고 잘 상처받았다. 동시에 사람들과 불화했고 세상과 싸웠다. 그것은 비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 날 얇은 비닐 비옷 하나 입고 거리를 걷는 기분과 비슷했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많은 심리상담가들은 우리가 과거에 받은 상처부터 달래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그 상처는 이제 내 일부가 된다. 조제의 장애처럼 말이다. 벗어날 수도 덜어 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끝도 없이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미워하기보다는, 상처와 장애를 안고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할머니 없이, 츠네오 없이도 혼자 살아 나가는 조제처럼.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장을 보고 조용한 집에서 묵묵하게 요리를 하는 조제처럼. 요리가 끝난 후에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의자에서 쿵 하고 담담하게 떨어지는 조제처럼.     


사랑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는 때는 사랑에 실패한 후부터다. 누군가에게 처절하게 버림받고, 가루가 날릴 정도로 자존심이 분쇄된 후에야 우리는 평생을 외면하느라 노력해 왔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삶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의 근본 원인, 우리의 가장 못나고 추한 부분, 잊어버리려 애썼던 꿈. 이것들은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허상들을 억지로 걷어 낸 후에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훨씬 덜 상처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덜 여문 채로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저지른 실수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돌려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때처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최소한 사랑 앞에서 나를 약자 취급하지는 않고 싶다. 나를 존중하고 또 상대를 존중하겠다. 연애에서 여자가 맡아야 할 역할에 연연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그 역할에서 벗어나느라 깐깐하게 굴지도 않겠다. 입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웃겠다. 타협하고 또 타협하겠다. 농담을 자주 하고 장난을 많이 치겠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불안 속에서 흘려보내지 않겠다.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누리려고 노력하겠다. 나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서 찾으려고 애쓰지 않겠다. 건강한 인간이 되겠다. 상대를 내 취향대로 바꾸려고 하지 않겠다.

그리하여 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완전히 헛짚은 남자에게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 남자는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다. 아, 이게 다 《따귀 맞은 영혼》 덕분이다.

도서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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