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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너의 개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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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3. 2024

너의 개

단편소설


너의 개 (10화, 최종회)



                                                                   *


  너는 손 그늘을 하고 공원 끝에 솟아오른 산마루를 바라보았다. 서쪽으로 기운 해가 이글거리는 잔디밭에 거대한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개 유모차를 밀던 너의 손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갈림길에서 망설이다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순간 “깽” 하고 들려온 날카로운 소리에 너는 미간에 힘을 주고 두리번거렸다. 저만치 지나가던 개 주인이 길게 쥔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걸음을 멈추고 퍽이나 유심히도 나무를 보고 있었다. 한발 한발 너도 걸음을 늦추며 나무를 쳐다보았다. 평범한 단풍나무였다. 


  '그 옆에 선 목련 나무를 보고 있는 걸까?'


  붉은 단풍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마침 목련이 신비로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기묘한 느낌에 너는 다시 보았다. 이 봄에 단풍이 저렇듯 붉게 타들어 가는 양 물들어있는 거였다.

  

  '저게 봄에 물든다는 적단풍인가? 그렇다고 해도 목련은 왜 이제야 겨우 피고 있을까?'


  햇볕이 내리쬐는 땅 위로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보였다. 현기증이 나면서 세상이 나른하고 불투명해지는 것 같던 그때, 목이 조인 개의 낮고 처량한 울음소리가 깽깽, 깽깽, 귀청을 때렸다. 쇳소리 같은 울음은 마침내 쿠후우우우… 하울링으로 바뀌었다. 그제야 개 주인이 목줄을 늦추며 강아지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너의 귓속으로 들어온 촘촘한 파동은 멈추지 않고 증폭되어 갔다. 그것은 온갖 슬픈 감정으로 한껏 불어넣은 물풍선 안으로 너를 쑤셔 밀고 터뜨리려는 듯 정신을 아뜩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주변이 회전하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단풍나무 때문이었을까, 때늦은 목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개 울음소리 때문이었을까. 셋 다일 것이다. 기가 막히게도… 간신히 발걸음을 떼다 말고 너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식간에 떠오른 오래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래, 치치.’



  치치는 어릴 적 네가 기르던 개였다.

  너의 소중한 친구, 바로 나였다.

  엄마는 나를 개 호텔에 맡기고 사라졌다. 개 호텔에서 나를 찾아가라고 여러 번 연락했지만 아버지는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개를 맡기는 척하며 버리는 사람들에게 당할 만큼 당한 개 호텔 주인은 끈질겼다. 지급명령 신청을 했고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한다는 독촉 문자가 보내졌다. 아버지는 욕을 하며 문자를 지우다 결국 개 호텔에 돈을 내고 나를 인수했다. 너와 나는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또 얼마나 반가워했던가. 너는 나를 끌어안고서 다시는 내어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렀어. 너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내게 속삭였다. 하지만 나를 채간 아버지는 나의 목에 줄을 감고 당겨서 자신을 따라오게 했다. 나무들만 서있는 인적 없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아버지를 따라서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던 너는 뒤처진 채로 헐떡였다. 벌써 아버지가 내려왔다. 하지만 나 또한 부지런히 달려서 아버지를 뒤따라왔다.


  “치치!”


  네가 부르자 화난 얼굴로 돌아본 아버지가 나를 덥석 안아 올렸다. 그리고 너에게 나를 버리고 오라고 말했다. 너는 그럴 수 없다면서 물러섰다.


  “그럼 너를 버려야겠구나.”


  너는 그 순간 창백해졌다. 겁에 질린 너는 아버지가 건네주는 나를 품에 안고서 다시 한 손에 끈을 받아 쥐었다. 그걸로 나를 나무에 묶으라는 거였다. 아버지의 손이 가리키는 빨간 단풍나무는 옆에 보이는 흰 목련나무와 대조를 이루며 산등성이에 눈에 띄게 서있었다. 매듭을 적당히 느슨하게 묶으면 나는 너를 따라올 수 없어도 몸부림을 치다 보면 오래지 않아 풀려날 순 있을 거라고 했다. 너는 매듭을 아주 느슨하게 묶었다. 나는 그걸 재빨리 풀고 너를 쫓아갔다. 순식간에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아버지가 다시 잘하고 오라고 말했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너는 다시 나를 안고서 헉헉대며 올라가다 돌아보았다.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온몸을 흔들며 발버둥 쳤다. 너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보며 나를 놓칠세라 꼭 안았다. 붉은 단풍잎과 하얀 목련꽃이 떨어지는 땅 위에 무릎을 꿇고 너는 나를 나무에 묶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깽깽, 거리며 나는 울었고 너는 부들부들 떨었다. 풀어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아버지가 버릴 거란 생각에 너는 나를 더 꽉 묶었다. 숨이 막혀 나는 께엥, 께엥, 소리치다 목 놓아 하울링을 해댔다. 


  "쿠후우우우우……"

  

  하지만 너는 쳐다보지 않았다. 정신없이 도망치듯 미끄러지며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쫓아서 산비탈을 내려갔다. 버림받은 사실을 모르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잠만 자는 아이가 될 것을 모르고 눈을 뜨면 누군가가 있기만을 기다리던 너는,

 

  기억에서 깨어나 축축하게 땀에 젖은 손바닥을 새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자 너의 눈에 개 유모차가 다시 보였다. 그것은 개 유모차가 아니라 휠체어였다. 빛을 받은 팔걸이가 눈이 부셨다.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틀고 너를 올려다보는 이는 누구인가. 오래전 네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처럼 후 불면 날아갈 듯 민들레 꽃씨 같은 머리칼을 날리며 너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언제나 너를 흔들어 깨우는 그 소리에 움츠리며 귀를 틀어막으려던 그 순간,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휠체어에 양 손목을 묶어놓았던 끈이 비로소 너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얇은 끈이었지만 도저히 끊어지지 않을 질긴 끈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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