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김 워커는 와이오밍의 샤이엔에서 40마일가량 떨어진 콜로라도 접경에 살았다. 집은 로키산맥이 배경으로 펼쳐진 87번 도로에서 한참 벗어나 비탈진 숲길의 오르막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섯들이 자라는 소나무 숲의 어른대는 빛줄기 속에 드러나는 목조주택은 언뜻 보면 현관도 창문도 번듯한 이층집이지만 자세히 보면 온갖 뿌리가 뒤엉킨 땅 밑의 습기로 인해 외벽 하단이 군데군데 삭아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산들바람에 소똥 냄새를 실어 나르던 축사는 잡초만 무성하고 폭설에 지붕이 내려앉은 빈 창고는 거미줄 천지였다. 산등성이를 뛰놀던 가축들도 일꾼들의 방울 소리도 모두 잊힌 지 오래였다. 끝없는 시간과 구름과 바람이 지나가는 잿빛 그늘 아래 오직 메리 김 워커의 집만 그대로인 것 같았다. 하이웨이보다 느려터진 산길을 선호하고 그중에서도 매의 눈을 가진 운전자라면 간혹 이 집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창한 숲을 날아오르는 새소리와 그 날갯짓에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들, 폐부를 적시는 알싸한 공기에 취해서인지 이 집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도 없었다. 메리 김 워커는 그런 점이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방안을 가린 커튼에 빛이 스며들었다. 곤히 자던 그녀가 번쩍 눈을 뜬다. 시간은 언제나 일정했고 하루의 일과도 비슷했다. 파자마 바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실내화를 신고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의 거울은 가장자리가 부식되어 검은 띠가 둘린 액자 같았고 그 속에 비친 모습은 세월의 더께가 앉아 있다. 윤기가 흐르던 노르스름한 피부는 가느다란 주름으로 덮였고 어깨까지 풀어헤친 머리칼은 부스스한 반백이 되었다. 하지만 쌍꺼풀이 없는 크고 가느다란 갈색 눈은 여전히 반짝였고 손을 들어 팔을 살피고 다리와 발을 내려다보면 몸은 건장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5.7피트의 키에 몸무게가 138파운드가량 나가는 제법 체격이 큰 그녀는 타고난 뼈대가 굵었고 오랫동안 일을 하며 다져진 근육은 탄탄했다. 화장실 창가에 스며든 아침의 빛깔을 바라보며 그녀는 속옷을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멋진 하루가 될 거야.
오줌 누는 소리에 이어 방귀가 나왔다. 손잡이를 누르자 물이 소용돌이치며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변기 수조 뚜껑을 열고 양동이에 물을 부어 새로 채웠다. 그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닭 울음소리였다. 고개를 쳐든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닭대가리.
볼품없는 벼슬을 달고 아무 때나 울어 재끼는 외톨이 암탉을 그녀는 그렇게 불렀다. 지난가을만 해도 닭장엔 암탉 일곱 마리와 수탉 한 마리가 살았다. 하지만 살쾡이의 소행인지, 하루 걸러 닭들이 실종되고 수탉과 암탉 한 마리만 남고 말았다. 그러자 암탉 일곱 마리를 상대하던 수탉은 암탉 한 마리만 올라타기 시작했다. 발톱으로 등을 움켜쥐고 부리로 벼슬을 문 채 매일 수차례 일을 치르느라 암탉의 등허리는 털이 뽑히다 못해 살이 드러나 피가 나고 벼슬은 너덜거렸다. 그녀는 문을 활짝 열어놓았지만 암탉은 도망가지도 않았다. 보다 못해 꼼짝 않는 암탉을 억지로 끌어내려고 보니 알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달려드는 발정 난 수탉을 잡아서 도끼로 목을 내려쳤다. 피를 씻어 살점은 장작불에 구워 먹고 남은 뼈는 우려서 국물을 만들었다. 병아리를 기다렸으나 알은 모두 부화되지 않고 썩었다. 상처가 아문 암탉은 다시 수선을 피우며 뛰어다녔고 닭대가리란 이름을 얻었다.
가운을 걸친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이 층 침실에서 바라보던 풍경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길었던 겨울이 가고 마침내 봄이 오고 있었다. 얼었던 눈이 녹으며 땅이 진흙 밭이 된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얼굴을 찡그리며 기지개를 켠 그녀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땅에는 장작들이 쌓여있고 넓적한 나무 둥치 위에는 쐐기를 박은 도끼가 비스듬히 선 채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도끼를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빈 닭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요년이 어디로 튀었을까.
마당을 가로질러 나무들이 우거진 방향에, 관목 사이를 헤치고 뭔가 지나갔는지 아니면 막 웅크리고 숨었는지 나뭇가지들이 흔들린 것 같았다. 평소보다 활짝 젖혀진 닭장 문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숲에서 해는 빨리 졌고 그전에 그녀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늘 그랬듯 이부자리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탁 펼쳐서 가라앉힌 시트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이불은 상단을 접어 침대 머리까지 끌어당겼다. 창밖으로 귀에 익은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봄이면 찾아오는 이름 모를 새였다. 흥얼흥얼 새소리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들썩이던 엉덩이를 멈추고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고음으로 치닫던 지저귐이 돌연 사라진 거였다. 이상한 생각에 걸어가 창밖을 보았다. 고개를 젖히자 빈 하늘만 파랬다. 내려다보니 현관 앞 흔들의자가 빈 채로 흔들렸고 깃털인지 나뭇잎인지가 햇빛에 반짝이며 날아올랐다. 나무에 가려진 출입구 쪽으로 아무래도 무언가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살쾡이는 아니겠지?
닭대가리를 걱정하며 내려다보던 그녀의 머리 위로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제야 피식 웃고 돌아선 그녀는 두꺼운 담요는 이제 치울까 망설이다 아니지, 아냐, 하고 고개를 저었다. 오후엔 이른 여름이었다가도 해가 지면 초겨울로 뒷걸음치는 게 숲의 날씨였다. 기대어 놓은 베개를 토닥거리고 침대 정리를 끝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이 습관은 여름엔 땀이 나서 시원하고 쌀쌀한 날엔 체온을 올려주었다. 콧노래를 마치고 그녀는 침실을 나섰다.
침실을 나오면 바로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침실을 지나가야 했다.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던 이 침실의 문은 이제 잠겨 있었지만 문을 열면 모든 게 그대로일 것만 같은 기분에 그녀는 숨을 죽이고 걸었다. 신중한 걸음에도 불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오래된 층계는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삐걱거렸다. 그래서인지 계단 난간을 짚고 한발 한발 내려가며 그녀는 층계 벽에 걸린 액자들 앞에서 차례로 잠깐씩 멈추어 서곤 했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좁은 어깨를 한 소년과 소녀 한 쌍을 들여다보았다. 가슴에 긴 리본을 단 흰색의 브이넥 의상, 그러니까 한복을 입은 그들은 그녀의 조부모였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 이 땅에 새로운 궤도를 그리기 시작한 그들은 자신들을 멍청한 사물로 포착한 카메라 너머의 시선에 맞서듯 결의에 찬 미소를 띠고 있었다. 쉼 없이 남의 농장에서 일하며 자립을 꿈꾸던 그들은 어떤 증오가 들불처럼 일어난 폭도들의 난장판에서 도끼를 맞고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이들이었지만 그녀는 사진을 볼 때마다 살아남았다는 자각 속에서 자신이 가지게 된 '김'이란 성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주검에 꽂혀 있던 도끼를 빼 들고 살아남은 소년은 그녀의 부친이 되었다. 층계 위 액자 속에서 부친은 아래위가 붙은 청바지에 챙 넓은 가죽 모자를 쓰고 울타리에 기대어 있었다. 손에는 비록 도끼를 들었지만 어려서부터 그는 남의 목장에서 가축을 지키는 일꾼이었다. 이 땅에선 참으로 희귀한 혈통의 카우보이였던 셈인데 그 희소성의 가치는 철저히 무시되고 대물림한 학대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 의기소침한 남자로 자랐다. 그는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부모가 태어난 조국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제대했다. 훗날 그녀는 생각했다. 만일 부친이 신의 은총을 입었다면, 다리가 아니라 머리에 총알을 맞고 즉사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