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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너의 개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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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3. 2024

너의 개

단편소설

너의 개 (9화)



  그렇게 마지막 주가 찾아왔다. 좀 더 깊은 최면으로 들어가 보자는 김영준의 말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편안했고 걱정 근심이 없었고 기분이 가벼웠다. 실제론 그렇지 못했어도 너는 그런 암시를 되뇌며 호흡에 집중했다. 차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해파리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제 개를 생각해 봅시다. 아주 구체적으로 개를 상상합니다.”


  네가 생각하는 개의 이미지는 항상 비슷했다. 곱슬거리는 털. 쫑긋한 귀에 촉촉한 까만 코, 오직 너만 보는 순진한 눈, 온몸으로 기쁨을 드러내며 달려와서 앞발로 턱, 뛰어올라 너의 무릎을 치곤 바닥을 디뎠다가 또 앞발로 턱, 너를 치며 좀 같이 놀자는 듯 물기 어린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애틋한 순백의 개를 생각했다. 따듯한 물결이 흘러와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흐름이 빨라지며 몸이 점점 더 가라앉았고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왔을 때 물 밖의 소리처럼 툼벙대며 김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돌아서 나오세요. 열부터 거꾸로 세서 하나에 깹니다 자, 깨어나세요!”


  너는 눈을 떴다.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보았다. 창밖은 전봇대에 불이 들어와 담벼락은 환하고 하늘은 어두웠다. 저녁인지 새벽인지 모르겠지만 여기가 집이고 찬 방바닥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장롱과 서랍장, 티브이와 라디오, 상보가 덮인 밥상까지 방은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부자리 모양이 이상했다.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는 건 너를 내려다보듯 서있는, 개 유모차였다. 맙소사, 개 유모차라니. 너는 네 생각을 나무랐다. 그것은 개 유모차가 아니라 할머니의 유모차였다. 정확히는 노인용 보행 보조 수레라고 해야 한다. 짐을 싣고 다니다가 등받이를 내리고 의자로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유모차 말이다. 무릎이 아파도 혼자 걸을 수 있었을 때 할머니에게 저 유모차는 얼마나 소중했던가. 외출할 때마다 함께한 동반자. 할머니의 분신 같은 존재. 너는 반가운 마음에 몸을 일으키고 할머니의 분신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철제 프레임이며 어딘가 더 고급스러운 모습이 아무래도 개 유모차 같았다. 돌아서자 이불이 움직였다. 획 들춰보니, 또 맙소사. 개였다. 살며시 쓰다듬는 손가락 사이로 온기가 파고들었다. 힘을 주면 우두둑 으스러뜨릴 수 있을 연약한 뼈도 만져졌다. 너는 개를 안아 올렸다. 신비로운 바둑돌 같은 두 눈이 너를 쳐다보았다.

 

  “치치?”

 

  너는 왜 그 이름을 떠올렸을까? 너는 치치, 하고 다시 불러본다. 개가 웃었다. 너는 치치가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한 듯 와락 개를 끌어안았다. 벅찬 기분으로 멀찍이 들고 쳐다보자 개가 힘겨워하며 버둥거렸다. 겨드랑이를 이렇게 양손으로 들어 올리면 무게가 어깨에 다 실려서 자칫 탈골될 수 있었다. 이불에 내려놓자 픽 주저앉은 개는 눕더니 이내 다리를 쳐들고 배를 보였다. 이리저리 뒹굴며 재롱 피우는 모습을 쪼그리고 앉아서 보던 너는 속삭였다.  


  '걱정 마, 치치, 이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슬쩍 날렸다. 너의 시선은 벽을 타고 내려와 천천히 방안을 한 바퀴 둘렀다.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어진 휑한 기분이었다. 그게 뭐였더라, 중얼거리다 놀라서 크게 눈을 떴다. 그제야 너는 뭐라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런 줄 알았다. 실은 가위눌린 사람처럼 부르르 떨다 겨우 눈만 떴을 뿐이었다. 하얀 천장을 가리며 역광 속에서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평범한 아저씨였다. 멍하니 있던 너는 순간 그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기억하며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굳어있던 김영준이 안도하며 씩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아주 잘하셨어요. 이제 혼자서 스스로 다시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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