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진 Mar 02. 2021

주치의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 2) 주치의 선택

헬스케어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눈여겨본 일곱 가지

주치의를 선택하는 일이 처음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KP 홈페이지의 검색 창에서 Primary Care(일차 의료)의 카테고리에 보이는 Family Medicine(가정의학과), Internal Medicine(내과), Child & Teen Care(소아청소년과), Geriatrics(노인의학과) 중 '가정의학과(Family Medicine)'를 선택하고, 내 건강보험 상품의 네트워크명, 내가 사는 지역의 우편번호를 입력하자 여러 페이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각 사람의 전문 과목과 진료 지역, 경험한 환자들의 별점, 졸업 연도 등과 함께 현재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는지 여부(Accepting New Patients 또는 Not Accepting New Patients)가 포함된 목록이 나타났다. MD 의사뿐 아니라 DO 의사, 그리고 NP와 PA-C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다고 표시된(Accepting New Patients) 의료진의 이름 아래에 표시되는 'Choose Me(나를 선택하세요)'라는 버튼을 눌러 어느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막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내 '주치의'라고 선택하자니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실력 있는 사람일까',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일까?'라는 답 없는 고민보다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주치의를 변경해도 된다(You can change your doctor at any time, for any reason.)'는 설명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혹 맞지 않는 선택을 했다 해도 언제든 되돌릴 수 있을 테니. 


화면. 주치의 선택을 위해 전공, 거리 등을 입력해 검색했을 때 나오는 PCP들의 목록.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는 경우(Accepting New Patients), 이름 아래에 보이는 'Choose Me' 버튼을 눌러 주치의로 선택할 수 있다.

검색 결과로 나온 목록에서 각 사람의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이 받는 건강보험 네트워크명, 전문 분야, 수상 이력, 환자들이 내린 평점과 리뷰, 근무 시설, 자격과 약력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은 개인별 소개 페이지가 나왔다. 나는 MD 의사뿐 아니라 DO 의사(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 정골의학을 전공한 의사), 그리고 NP와 PA-C까지 포함된 사람들 중, 환자들의 평점과 리뷰, 졸업 연도, 출신 학교와 수련 병원, 이름과 사진과 자기소개로 유추할 수 있는 출신 문화권 등을 참고해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는 MD 의사를 찾기로 했다.


미국에서 의사를 선택하는 일은 한국에서 병원과 의원을 정할 때 익숙한 이름의 학교와 병원 출신의 의사를 찾았던 것과는 또 다른 일이었다. 사는 주와 지역과 건강보험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병원과 만날 수 있는 의사가 이미 달라지고 상황이 긴급한 경우 내 건강보험을 받으면서 당장 예약할 수 있는 의사를 찾는 것이 우선이기에, 그동안 한국에서 가졌던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기준을 내려놓게 되었다. 임신 초기에 유산 증상을 겪으며 최대한 빨리 만날 수 있는 산부인과 의사를 찾을 때, 내가 가졌던 까다로운 기준들은 하나도 의미가 없었다. 우선 누구라도 만나야 했다.


미국에서 의사의 진료를 예약하며 한국인 누구나 알법한 유명한 미국 학교와 병원 출신의 의사를 찾는 이상적인 상황은 가능하지 않았다. 나와 아이가 그동안 미국에서 만난 의사들의 출신 학교를 보면, 미국 내 University of Virginia School of Medicine, University of Washington School of Medicine, Western University of Health Sciences College of Osteopathic Medicine of the Pacific(미국 캘리포니아 소재)부터 미국 밖의 American University of the Caribbean School of Medicine(카리브해에 위치한 네덜란드령 국가인 신트 마르턴(Sint Maarten) 소재), China Medical University(대만 소재), University of Santo Tomas(필리핀 마닐라 소재) 등까지 다양하다. 미국 내 여러 주에 분산된 의과대학과 병원뿐만 아니라 이민자 출신의 의사들까지, 의사의 출신 학교와 경력에 대해 내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이 불가능했다. 심각한 질환이 아닌 상태에서 다른 주에 있거나 내 건강보험 네트워크에 포함되지 않는 명의를 찾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의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이미지. 미국 내에 산재된 의과대학들의 위치(출처. Medical School Headquarters - Map of US Medical Schools). Wikipedia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154개의 MD 프로그램과 38개의 DO(정골의학)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병원과 의사를 선택할 때 일반적으로 참고하는 정보 중 하나는 온라인 리뷰이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정부의 헬스케어 데이터나 병원의 환자 대상 조사 결과보다 널리 이용된다. 미국에서 '병원 입원 후 환자 경험 평가 조사'의 표준인 Hospital Consumer Assessment of Healthcare Providers and Systems(HCAHPS)의 경우, 환자 만족도를 전반적으로 볼 수는 있으나 환자들이 생각하는 문제들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듣는다. 또 기존의 환자 만족도 조사는 응답자들이 보다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편향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어리고 가난하고 학력이 낮고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참고. Yelp Reviews Of Hospital Care Can Supplement And Inform Traditional Surveys Of The Patient Experience Of Care (HEALTH AFFAIRS 35, NO. 4 (2016))


이와 달리, ZocdocHealthgradesVitals 등의 사이트들은 의사에 대해 의사의 이름과 사진, 나이, 전공, 받고 있는 건강 보험, 출신 학교 및 수련 병원, 사용하는 언어 등의 정보와 함께 경험한 환자들의 별점과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리뷰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온라인 리뷰 사이트들에서 언급되는 의사에 대한 평가는 의사의 실력(technical competence)이나 접근성(access to physician), 병원 환경(office staff/environment), 케어의 조율(coordination of care) 뿐만 아니라, 의사의 성격과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참고. Long-Term Doctor-Patient Relationships: Patient Perspective From Online Reviews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 vol. 15, no. 7, Feb. 2013)). 의사를 직접 경험한 환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온라인에 남긴 리뷰와 별점은 의사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때 사람들이 만나는 가장 첫 번째 정보가 된다. 다른 환자들이 인증한 '환자의 질문에 잘 대답해주고 공감해주는 따뜻하고 친절한 의사'가 선택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참고. How Yelping Doctors Is Improving Americans’ Health Care (Fortune, 2017/4/23)).


화면. Zocdoc 내 의사에 대한 별점과 평가 예. 내가 애틀랜타에서 만났던 산부인과 의사를 다른 환자들이 추천하는 이유는 이 의사가 자신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었고 이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으며 상냥하고 친절한 동시에 전문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학벌과 경력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https://www.zocdoc.com/doctor/anna-rybka-md-103698?insuranceCarrier=-1&insurancePlan=-1

물론, 병원과 의사에 대해 환자들의 온라인 평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때로 오해와 모함도 있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환자가 의료과오(malpractice)로 의사를 고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온라인 리뷰에 대해 의사가 환자를 고소하는 예가 드물지 않다(참고. These doctors sued patients for negative online reviews (Newsweek, 2018/7/19)). 또 병원과 의사에 대한 평가는 계속 변한다. 그렇기에 온라인 리뷰를 참고하되 내게 맞는 의사를 직접 경험하고 판단해야 한다.


나 역시 KP의 홈페이지 소개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의사들에 대한 정보와 리뷰를 확인한 후, 나와 아이의 주치의를 선택했다. 주치의를 지정하자, 며칠 후 집으로 주치의의 소개가 담긴 우편물이 도착했다. 주치의의 인사말과 주치의의 약력과 함께, 주치의는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변경 가능하다는 안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나와 아이의 주치의를 한 차례씩 변경했는데, 이는 주치의를 새로 지정하는 과정과 다를 바 없었다.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PCP)이면서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는 의사라면, 즉시 주치의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치의 변경을 최소화하라거나 다시 한번 고민해보라거나 몇 회 이상은 안된다는 식의 제한은 전혀 없었다.


사진. 연말에 건강보험 갱신 후 집으로 배송된 안내 책자 중 주치의에 관한 페이지. 주치의를 선택하는 법과 함께 늘 덧붙여지는 말은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주치의를 변경해도 된다(You can change your doctor at any time, for any reason.)"는 안내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의사를 주치의로 선택한 후 실제 내 마음에서도 이 의사를 주치의로 받아들인 건 의사를 직접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게 되면서 였다. KP의 홈페이지와 온라인 리뷰에서 언급되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의사를 경험하면서 내가 만나는 의사에 대해 나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고 확신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진료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언제든 편하게 이메일로 연락해 상태를 알리고 의견을 구할 수 있는 KP의 서비스 덕에 주치의가 있는 삶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치의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 1) 배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