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진 Jan 16. 2022

미국에서 MRI,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유방암에 대한 국가별 검진 가이드라인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평균의 위험도를 가진 여성은 40~44세부터 매년 유방촬영술(mammogram) 검진을 받도록 권한다. 유방촬영술 예약은 주치의 의뢰나 보험사의 사전 승인이 필요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달리, 유방암 고위험군에 해당되는 여성은 25~40세부터 매년 유방촬영술과 유방 MRI를 받도록 권한다. 미국암학회가 권고하는 고위험 유방암 검진 대상군에는 BRCA1/2 유전자 변이 여성 보인자뿐만 아니라 가족력이 있는 여성 등이 포함된다. 미국에서 유방암 정기검진으로 유방촬영술 외에 유방초음파는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주치의 진료와 유전학 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쳐 6개월 단위로 유방촬영술과 유방 MRI를 번갈아 받도록 추천받았다. (참고. American Cancer Society Recommendations for the Early Detection of Breast Cancer (American Canter Society))


한국에서도 유방암 고위험군의 유방 MRI 검진이 권해진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에서 비급여이기 때문에 높은 비용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유방촬영술과 유방초음파로 대체되고 있다. 현재, 유방암 고위험군 여성의 유방 MRI 검진의 유용성 평가와 국가암검진 포함을 위한 학술적 근거 마련을 위해 서울대병원 등에서 전향적 다기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참고. 확산강조 MRI로 조영제 없이 숨어있는 유방암 찾아내 (청년의사, 2020/7/22), 유방암 고위험군 여성에서 저비용 단축 자기공명영상 검사를 이용한 검진 (대한유방검진의학회지, 2017;14))


출산 후 긴 수유를 끝내고 4월, KP에서 유방촬영술 검진을 받고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들었다. 6개월 후에 MRI 검진이란 걸 진짜 받아야 하나 고민하며 KP의 고객 센터에 비용을 문의했더니, 내 보험으로 검진 시 추가 비용 부담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주치의에게 메일을 보내 이전에 의논한 대로 MRI 검진을 오더해달라고 요청했다. 10월에 영상의학과(Radiology)에 MRI의 예약을 요청하니 검사에 대한 사전승인(pre-approval)을 통보받으면 연락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며칠 후, 보험사로부터 내 주치의의 요청에 따라 유방 MRI 검사를 1회 승인한다는 통지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사진. 의사가 오더한 MRI 검진에 대한 보험사의 사전승인 통지서. 내 건강보험은 진단 검사 및 영상의학 검사의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100% 커버하는데, CT, MRI, PET과 같은 고가의 검사는 응급이나 입원이 아닌 경우 보험사의 사전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

10월 말, 영상의학과 예약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 키와 몸무게를 확인한 후 안전을 위해 해당하는 목록이 있으면 확인해달라며 전화 상으로 긴 단어를 나열했다. Stent(스텐트), Claustrophobia(폐쇄공포증),... Implant(임플란트), Single Kidney(단일 신장),..., High blood pressure(고혈압), Diabetes(당뇨). 그러고 나서 KP에서 MRI 검사가 가능한 메디컬 센터 지역들을 알려주고 선택하도록 한 후 그곳에서 가능한 일정을 확인해 예약했다.


12월의 첫 번째 금요일, 체크인 시간인 오후 1시에 KP Bellevue Medical Center 1층의 MRI 검사구역 리셉션 데스크에 줄을 섰다. 직원에게 회원번호와 이름, 생년월일을 말하고 본인 확인을 받으니, 내 정보를 출력한 스티커를 붙인 하얀색 팔찌를 손목에 채워줬다. 


사진. 검사구역 근처 리셉션 데스크에서의 체크인. 예약 확인 후 환자 이름을 출력한 팔찌를 손에 채워준다. 알러지가 있는 환자의 팔찌는 흰색 대신 빨간색이다. 

사진. MRI 검사구역 입구. 대기 구역이 검사구역과 구분되어 있어 검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검사실 안이나 검사를 받는 사람들의 이동을 볼 수 없다.

대기하는 동안 작성할 MRI 설문지, 조영제 설명서와 동의서를 건네받아 작성했다. 여자 방사선사인 T가 검사구역의 문을 열고 나와 내 이름을 불렀다. T를 따라 검사 구역 안 넓은 복도를 따라 걸어 MRI 촬영실 건너편의 탈의실로 들어갔다. T의 안내대로, 검사 용 가운으로 갈아입고 탈의실 문을 열었다. 건너편 촬영실에서 남자 방사선사 L과 여자 방사선사 T가 기기와 물품을 소독하고 다음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진. Siemens MAGNETOM Avanto 1.5T MRI 한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검사실 공간. 여자 방사선사 1명과 남자 방사선사 1명이 MRI 검사실 하나를 담당한다. 조정실(Control room)과 촬영실(Scanning room) 왼쪽에 정맥주사 준비를 위한 처치 및 탈의 겸용실이 있고, 복도를 마주하고 반대편에 탈의실이 있다. 첫 번째 환자가 촬영실에서 검사를 받는 동안, 방사선사를 따라 검사구역으로 안내받아 들어온 다음 환자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이, 이전 검사를 끝낸 방사선사들이 다음 검사를 준비한다. 검사용 가운을 갈아입은 다음 환자가 처치실로 이동해 방사선사로부터 조영제 주입을 위한 정맥 주사를 잡은 후 촬영실로 이동해 검사를 시작하는 동안, 검사를 끝내고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은 이전 환자는 방사선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검사구역을 나간다. 검사는 긴밀하게 이어지지만, 같은 검사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방사선사들이 각 환자의 이동을 조율한다.

여자 방사선사인 T가 다가와 나를 조정실 왼쪽에 위치한 처치실로 안내했다. T가 잠깐만 기다리라며 커다란 의자 위에 따뜻한 면담요를 깔아줬다. 내가 의자에 앉자 T는 검사에 대해 설명을 하며 조영제 주입을 위한 정맥 주사를 잡았다. 검사 중 음악을 듣겠냐고 묻기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탁했다.


검사실로 이동해 MRI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몸 위에 따뜻하게 데워진 담요를 덮어주고, 머리 위로 든 손 한쪽에 고무공 벨(Emergency bell)을 쥐어줬다. 검사는 20분 정도 걸리는데 진행 중 힘들어서 손에 든 벨을 누르면 검사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방사선사들이 나가고 적막한 검사실 MRI 통 안에 엎드려 검사를 기다렸다. 헤드셋에서 Spotify(스포티파이)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시작됐다. 헤드셋을 통해 L이 검사를 시작한다며 6분 동안 검사가 이어질 거라고 알려줬다. MRI 검사가 시작되며 들리는 땅땅거리는 자석 소리 사이로 캐럴이 흐릿하게 들렸다. L이 괜찮냐고 물으며, 이제 몇 분 간 검사가 이어질 거라고 알려줬다. 이어서, 다음 검사는 3분이고 조영제가 들어가는데 차가운 느낌이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이후, 잘하고 있다며 마지막으로 몇 분간 검사가 진행될 거라는 설명을 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지고 검사가 모두 끝났다는 마지막 안내를 들었다. 땅땅거리는 자석 소리 사이 흐릿하게 들리는 캐럴과, 중간중간 괜찮냐고 물으며 이제 몇 분 간 검사가 이어질 거라는 방사선사가 마치 옛날 음악다방의 DJ 같은 느낌이었다.


방사선사들이 들어와 내가 기기에서 나와 일어나도록 도와준 후 정맥주사 라인을 제거했다. T가 탈의실로 데려다주며 옷을 갈아입은 후 돌아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옷을 갈아 입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T가 따라오며 검사구역 입구까지 나를 다시 에스코트했다.  


사진. 방사선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각종 검사실들이 있는 검사구역의 긴 복도를 빠져나왔다. 환자들은 검사구역 밖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검사구역 내의 복도에서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검사를 마치고 1시간 정도 지난 오후 3시경, 판독 결과가 입력됐음을 알리는 SMS와 앱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상이길 기대하며 앱을 열었는데, 한쪽 유방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조직검사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먼저 초음파로 조직검사(US-guided biopsy)를 시도하고, 초음파로 문제 부위가 확인되지 않으면 MRI로 조직검사(MR-guided biopsy)를 하길 권한다는 의견이었다. 


화면. KP 앱에서 확인한 MRI 검사 판독 화면

3시 25분,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하다 생각을 고르고 주치의에게 메일로 연락하려던 때에 전화가 왔다. 연배가 꽤 되는 듯한 목소리의 여자 간호사분이 결과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며 곧 MA(Medical Assistant)가 검사 예약을 위해 전화할 거라고 전했다. 검사는 내 주치의가 아니라 유방영상부서(Department of Breast imaging)에서 케어한다고 했다. 잠시 후 3시 38분,  MA가 전화해 다음 검사 절차에 대해 설명한 후 예약 가능한 일정을 알려줬다.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싶다고 요청해, 다음 주 화요일 오후로 검사를 예약했다.


처음 경험하는 '양성이 아닐 수도 있는 결과'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Findings represent a suspicious abnormality.(소견은 의심스러운 이상을 나타냄)"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진료를 통해 결과를 들었다면 결과와 함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함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앱을 통해 결과를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결과 확인과 결과 상담 사이의 시간은 환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업무를 이어가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 금요일 오후, 사막에 혼자 서있는 것 같이 막막했다.


결과 확인 30분 만에 결과 설명을 위한 간호사의 전화와 다음 검사 예약을 위한 전화를 받고 감사했다. 미국이라는 곳에서 이만한 상황에 30분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는 동안 나를 위해 신속히 움직인 사람들을 보며, "나를 케어하는 것은 잘 만들어진 시스템"임을 느꼈다. KP가 강조하는 Connected와 Coordinated라는 말의 의미가 경험적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미국 헬스케어의 양면성"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같은 상황을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 검사를 예약하는 방식과 걸리는 시간이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있는 곳이 모든 것이 연결되고 조율되는 곳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미국 간호사 16년 경력의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인 Sarah An 님의 감수를 받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서 치과검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