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사무실이 없어져버렸다.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뭔가 좋은 일인가 싶은데 영 개운하지가 않다. 여행이 가고 싶어 졌다. 하지만 백수 주제에 무슨 여행이란 말인가? 그래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공원 여행. 교통카드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그런 여행.
첫 번째 여행지는 가까운 낙산공원.
500년 조선의 도읍지였던 서울에는 수도 '한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낙산공원도 그런 곳 중 한 곳이다. 도성의 성곽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내려다 보이는 서울은 또 다른 느낌이다.
성벽 위의 청춘들은 한가로웠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우리는 캠퍼스의 등나무 아래서 저런 시간을 보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 그러니까 어딘가에 취업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숙제 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한 채. 그저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낙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아파트의 도시였다. 저 멀리 높이 솟은 아파트들이 또 하나의 성곽을 이루고 었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산 위의 '공원'이라고 해서 동네 할아버지들이 매일 아침 6시 새하얀 물통을 들고 모여 약수를 받는 동안 소나무에 등을 부딪히며 '허이! 허이!'하는 곳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연인들이 많았다. 교복을 빌려주는 곳이 있는지 60~70년대의 교복을 빌려 입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조금은 맥락 없단 생각이 들었다.
성곽을 따라 아래로 향하면 마주하는 이화마을은 관광지 같다. 전주의 '한옥마을'도 떠오르고, 통영의 '동피랑'도 연상됐다. 또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본래 모두 아름다운 곳들이었을 텐데 관광지가 되어버린 탓에 색깔을 잃어버린 것인지 하나 같이 비슷하다.
여행지에 가면 엽서를 보내고 싶어 진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지만 마치 엽서라도 보내라는 듯이 우체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체통에 무언가를 넣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우체통에 항상 구멍이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 지역'에 보내는 우편물과 '다른 지역'에 보내는 우편물.
카톡을 보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요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카카오톡에 일주일 뒤에 읽어볼 수 있는 메시지 발송 기능이 있다면 좋겠다. 그럼 연애편지 보내는 기분이 날 텐데. 물론 그런 기능이 생긴다면 보내 놓고 일주일 동안 매일 이불킥 하겠지...
이곳의 대장장이 아저씨는 무게 82근의 청룡언월도와 길이 1자 8척의 장팔사모를 만들 수 있다. 거짓말이다.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하다. 확실한 건 화살표를 예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이화마을의 계단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보여준다. 매일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계단을 이용하며 얼마나 힘들고 숨이 찼을까? 그런 그들의 삶의 터전은 이제 관광지가 되었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다행히 돈이 많은 누군가에게 팔려 카페가 된 곳에 살던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 계단을 오르며 고단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편안한 안식을 기대하며 돌아온 집은 더 이상 휴식처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화를 분출해 놓았다. 옛적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관청과 이곳저곳에서 소란스럽게 하는 관광객들에게 잔뜩. 붉은색 락카로.
두 번째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본격 관광지 느낌의 카페 건물들이 즐비하다. 진짜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또다시 나타난 계단.
마지막 계단과 함께 첫 번째 공원 여행이 끝났다. 계단 아래는 대학로의 가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성대 입구역 쪽에서 올라 이화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면 훌륭한 데이트 코스 이리라. 맨 꼭대기의 예쁜 카페에 앉아 서울을 바라다보며 애인과 수다를 떨다가 어스름해질 무렵 내려와 대학로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면 완벽한 데이트가 될 것만 같다. 봄날 애인과 서울 안에서 여행의 느낌을 즐기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첫 번째 공원 여행부터 의외의 소득이다. 다음번 공원 여행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