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샌드위치.
맘 속에 듬직하게 묵어있는 것들.
더 이상은 추스리기도 어려워서 비워내고 싶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상도 하지 않았던 사람과의 관계
3년을 곰곰이 곰곰이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봤지만 여전히 그 자리이다.
나는 깨닫지 못하는 그 마음을 그 사람은 어떻게 삭히고 있는지
차단만 계속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나도 차마 털어내지 못하는 맘을 어딘가 털어놓고 싶어서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아빠한텐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기일이 다음 주니까, 마침 교향악 축제 기간인 동생과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막내 동생까지 셋이서 시간을 맞추었다.
혼자 가서 실컷 울어 보려 했으나 산소에 혼자 올라가기는 으스스할 거라고 길 잦기도 힘들 거라고..
다들 말렸다,
제주도에서 저녁 장사를 마치고 지연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서울 도착했다.
다음 날 길이 막힐까 해서 새벽에 비가 올 거라는 소식에 걱정되는 마음을 삭히면서 아빠에게 가서
알 수 없는 눈물 쏟아 내고 아빠와 헤어졌다.
다음날 동생들과 헤어져서 난.
아무 연고자도 없고 이유도 없는 상암에 호텔을 예약했고 혼자 도착해서
멍하게 돌아다니다가 호텔이 들어가서 오후네시부터 다음 날 아홉 시까지 잤다.
맘이 힘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방에 들어가자마자 저녁도 건너뛰고 누워서 잠을 잤다.
체크아웃할 시간에 다 돼서야 눈을 떴고 생수 한 병을 비워내고 다시 걸어 다녔다.
사진을 찍었으나 아무런 감흥도 없다.
빌딩 속 사이사이를 뒤지고 돌아다녔다.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많은 생각들.
여전히 복잡한가 보다.
복잡한 맘으로 떠나기 진,
날씨가 비가 내렸다가 햇빛이 비치다가 서늘함과 더움과 텁텁에 가운데,
난 오이 샌드위치를 했다.
처음엔 오이 샌드위치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냉장고에 싱싱한 오이를 보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반가워서
그날은 오신 손님분들께 오이 샌드위치를 그냥 하나씩 드렸다.
두껍게 크림치즈를 턱턱 바르고 오이 슬라이스를 7장 얹고 맛살을 손으로 찢고 끝이다.
팔기는 좀 허술해 보이지만 오이의 향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난 좋아한다.
그냥 뻔한 호밀빵 조각에 간단하지만 오이와 크림치즈가 양껏 들어가니 먹는 내내 입속이 즐겁다.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어 맛을 살피는 재미가 있다면 오이 샌드위치는 정직하게 시원한 맛을 준다.
드시는 손님분들도 좋아라 하시고 나도 좋고.
단순하지만 입이 환해지는 맛이다.
서울에서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부산하고 화려한 곳도 가봤다.
손님 많은 게 부럽기보다는 그냥 내 자리가 좋다.
맘이 부딪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운다고 변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가 아시니까 우리 아빠가 내 맘을 아니까 괜찮다.
이 날 비행기 타기 전까지 가게에서 오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손님들께 드리고 텁텁한 날씨 흉을 보고
손님들과 안녕이라는 인사를 나누고.
난 이런 가게가 하고 싶었는데.... 잊고 있었구나.
흐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