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 여성의 역사

by 남재준

요즘 같아서는 쉽게 하면 안 되는 말 같기는 한데, 아주 옛날을 기준으로 본다면 남자의 삶보다 여자의 삶에 감성적 깊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남자의 내조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가 쳐놓은 사고를 수습도 했다.

남편인 세조가 지은 업을 갚으려는 생각이었는지, 정희왕후는 수렴청정할 때 단종비 정순왕후의 생계를 지원하고 문종의 딸이자 거열형을 당해 죽은 정종의 아내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가 과거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정미수는 후에 정국공신 즉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반정공신이 되고 해펑부원군에 봉해진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선 이러한 사실이 반영된 것인지 의경세자 사후 정희왕후가 참회하며 관비가 된 경혜공주를 도와준다.


정희왕후는 조선 최초의 대왕대비(자성대왕대비)로서 성종조가 안정적으로 시작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업적을 남겼다.

옛날에 내가 역사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인물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

상황이 잘 따라준 면도 있으나 수십 년을 이어온 세도정치를 걷어내고 단신으로서 집정하여 개혁을 이루어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뒤에 보면, 대원군은 이준용을 왕위에 앉히려고 기도하고 일본의 허수아비 노릇을 했으며 을미사변의 밤에도 일본의 호위에 싸여 경복궁에 갔다.

대원군은 자신에게 전권이 쥐어지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단적으로 임오군란에서도 그건 오판이라는 점이 드러났다.(즉 일단 개항ㆍ개화가 이루어진 이상 조선의 위정자는 기존의 권력만으로는 외세의 영향 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미 구조적으로 조선 자체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그것을 힘을 모아 이겨내려 하지 않고 권력만 좇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순순히 앉아서 일본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지 않고 동학군ㆍ청군에게 밀서를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외세를 걷어내려고 애도 썼던 것 같다. 후에 밀사외교와 내탕금 지원을 한 아들 고종과 같이 '버티고 저항하기'에 있어서는 닮았다.)

그런 남편의 폭주와 왕실 가족 간의 다툼을 지켜보면서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사람이 아마도 고종의 생모이며 대원군의 부인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였을 듯 하다.

이덕희 배우가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열연했는데, 나는 여흥부대부인의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대원군은 남편이고 고종은 아들이며 명성황후는 며느리이면서 일가 사람이었기에 왕실 갈등은 부대부인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부대부인은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의 탈출을 도왔고, 아직 사교라는 인식이 강했던 천주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여흥부대부인이 실제로 드라마에서처럼 대원군에게 아들ㆍ며느리와 싸우지 말고 순리대로 물러나셔야 한다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서도, 부대부인의 인생역정을 보면 내 친구의 표현처럼 남자는 세상과 싸우고 여자는 운명과 싸운다는 느낌이다.

물론 현대의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에서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 여성들의 서사를 더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Mad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