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관하여

1

by 남킹

내 노트의 처음은 그녀를 알게 된 순간이 아니다. 교정에서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낮은 집들과 좁고 구부정한 길들이 엮어낸 소박한 정물화 같은 곳에, 장식 하나 없이 무채색의 마름모꼴 성당을 나는, 일요일 오전, 그녀의 뒤를 밟아 들어갔다. 내부도 단순하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무 십자가의 예수는, 그동안 보아 왔던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닌, 다소 무심한 표정이었고, 좁고 긴 창에는 유럽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하나 없이 맑은 햇살만 곱게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경험한 미사를 기억해내고, 성호를 긋고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잠시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렸다. 그러다 회중석에 자리한 그녀를 본다. 나는 그날, 어디서 그런 배짱이 솟았는지, 그녀의 옆자리에 그냥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곱게 눈을 감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기도하는 척하다가 살짝 눈을 뜨고 곁눈으로 그녀를 살폈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가슴골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선 그녀의 수수한 옷에서 안심을 받는다. 과하게 신경 쓰지 않는 매무새는 포용처럼 느껴졌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육중한 오르간 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모두 일어났고 나도 따라 일어났다. 입당 송이 시작되었다. 다들 찬송가를 펼쳤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빈손으로 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내게 찬송가를 살짝 내민다. 비로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거의 찰나에 가까웠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뛰었다. 나는 입만 벙긋거리며 익숙하지 않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합창 속에 약하게 섞여 있다.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하였다.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마움을 느낀다. 눈부신 젊음은 야속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기억은 오래도록 그 날의 행복을 기록해 두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빠짐없이 일요 미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녀 옆에 앉을 용기는 더는 갖지 못했다. 나는 늘 맨 앞자리에 앉는 그녀의 뒷모습을 항상 지켜보곤 하였다. 그것에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거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박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평화의 영성체에서 주는 밀떡을 받고 돌아설 때마다 마주치는 그녀의 노래 하는 모습.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나는 어느새 신부의 강론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젊고 정직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슬프게도, 지금의 세상은 군사 독재 시절이라는 사실을 용기 있게 말씀하셨다. 그는 정중하고도 부드러운 어조로 인간의 도리와 삶의 가치를,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하게 풀어서 설명하였다. 그는 심지어 기독교의 관점을 벗어나거나 타 종교를 수용하기도 하였으며 철학과 역사, 우화에서도 진리를 찾는 수고로움을 잊지 않았다. 나는, 매주 진행되는 강론을 위하여, 그가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부, 고뇌 그리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가를 그저 짐작으로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일요일은, 그녀의 뒷모습과 신부님 말씀으로 엮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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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And White  Modern Alone Story Book Cover - 2023-12-05T190047.83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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