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3

폴란드 2020년 4월 제니아

by 남킹

방은 좁고 투박하고 단순했다.

너무 싸구려에 왔나?

여자가 빙긋이 웃는다. 그녀는 문을 닫고 잠시 침묵에 빠진다. 두툼한 허벅지와 엉덩이에 나의 눈이 딱 멎어버렸다. 제니아는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연다. 바람이 커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이 밤을 채울 사랑을….

삶을 지탱하는 몰입을….

여자가 연기를 내 뿜는다. 우아한 소용돌이가 그녀를 감는다. 연기가 사라진 속으로 미간을 찌푸린 제니아가, 간들거리며 담배 끝에 달린 재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본다. 노면전차 소리가 다시 가까이에 들리고, 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는, 덜컹거리는 반복음에 스며든다. 연기가 제멋대로 흩어진다.

입꼬리가 미소를 표현한다. 설 수 없는 좁은 공간 사이로 끌림과 충동이 춤을 춘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여자의 귓불에 키스한다.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무슨 영화?

삼류영화…. 시나리오가 절대로 필요하지 않은….

새큰거리는 숨 속에 담배 냄새가 뱄다. 그녀는 다리를 천천히 벌렸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깍지를 끼기 시작했다.

여자는 한 번씩 답답한 듯 눈을 불끈거리며 헛기침을 쏟아낸다.

담배를 끊어보지, 그래!

나는 여자의 손에서 담배를 빼서 마치 두 토막 내듯이 크게 두 손으로 허공에 흉내를 낸 다음 다시 돌려줬다. 여자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는 듯했다. 미간을 풀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형언할 수 없이 가득한 애정을 담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곧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뀐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잖아요.

여자는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사랑해.

내가 가르친 유일한 한국어.

탁자 위에 목걸이가 단정히 누워있다. 나의 첫 선물. 그리고 담뱃갑, 성냥, 라이터, 흩어진 여자의 속옷이 있다. 나는 마치 그녀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남자인 듯, 여자의 가슴을 주물렀다. 물컹한 촉감이 전하는 삶의 희열. 그녀의 살이 나를 감싼다. 도대체 남자는 왜 이렇게 만들어진 걸까?

삶이 무가치하고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아무리 외쳐도 결국, 여자의 품속에 빠져들고 만다.

굴곡이 도톰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엉덩이. 흐릿한 흔적으로 남은 음모. 나는 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비굴하고 음탕한 눈빛으로 그녀를 갈구한다. 그녀가 나에게 몸을 주었다는 행복감이 따라다닌다. 여자가 움직인다. 서걱거리는 소리. 울렁이는 침대. 향이 올라온다. 시큼하고 달콤하다.

몸속의 모든 기운이 다 빠진 듯 고저가 없는 쉰 목소리가 흐른다. 나는 다시 키스한다. 끌리는 대로 키스하고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또 한다.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무의미한 듯 키스를 남발한다. 온전히 내 것인 양,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댄다. 그녀가 한숨을 쉬거나 의도적으로 얼굴을 빼기 전까지 그 행위는 계속된다.

내 혀가 그녀의 헤진 입술 사이로 쏙 들어간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빼며 미간을 찌푸린다.

나는 싱긋이 웃고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 그녀의 팬티 선을 따라 천천히 쓰다듬는다. 까칠하게 난 털의 감촉이 손바닥을 지나친다.

제니아의 휴대폰이 갑자기 떨기 시작한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말없이 누워있다. 그 시간만큼 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그녀 곁으로 엉거주춤 다가가며 왜소한 자기 성기를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말없이 이불을 들치고, 그녀의 풍성한 허벅지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지린내와 향수, 럭스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여자의 까칠한 털이 이마를 자극한다. 제니아는 자기 음부에 난 털을 잘 깎지 않는 편이었다. 그게 늘 불만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생각을 그녀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것을 싫어했고, 요구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덕지덕지 풀들이 자라난 민둥산을 생각했다. 방음은 훌륭하였고 숨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여자가 머리를 모로 돌리며 거친 비음을 냈다.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사타구니에 탐닉해있었다. 마치 태초의 탄생으로 파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방이 흐트러진 채 놓여있다. 하지만 아침이면, 이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 포개진 내 속옷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방을 훑어보고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쾌락이 빠져나간 몸이 늘어졌다. 무거운 육체의 반대에 가벼운 행복이 놓여있다.

어스름 속에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단단하게 성난 성기를 쳐다본다. 섹스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고조된 욕망이 끄덕거리는 귀두에 담겨있다.

어둑함 속에 새큰거리는 여자의 숨소리를 느낀다. 고른 규칙에 따라 나는 굴곡진 여자의 허리를 쓰다듬는다. 서글픈 촉감이 전해진다.

뭐해?

여자가 돌아서며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무반주 성악이 공간을 채운 듯하다. 어느 것 하나 없으므로 내세울 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생각했어. 우리가 보낸 시간 말이야.

소중한 거야?

뭔들 중요하고 하찮은 거겠어. 그냥 네가 내 속으로 뛰어든 거야. 그리고 난…. 멈출까 봐 두려운 거고….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 모두 그런 걱정 속에 놓여있지만…. 그다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말이야….

여자가 돌아눕는다. 한숨이 이어지고, 살포시 눈을 떠는 듯 눈꺼풀을 떨더니 다시 감는다. 나는 휴대폰에 비친 시간을 본다. 이제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좁은 새벽의 침대. 단정한 커튼. 빛이 스며든 곳으로 여자가 누워있다.

모든 것은 찰나처럼 펼쳐진다. 매 순간이 단속적이지만 쾌감을 기억하고, 미련을 질질 끌고 다닌다. 그래 그런 거야. 감각이 주는 황홀함 말이야. 무엇으로 바꿀 수 없을 만큼 강렬하지.

중독은 이런 걸 의미하잖아. 내 의지를 넘어선 것들. 아니 그 찰나의 행복 말고 사실 대관절 내게 남은 의미가 있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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