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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Oct 17. 2022

책과 함께 걷는 문학 산책길, 강화

김중미, 함민복의 작품으로

딸기 책방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조양방직 → 1928고택 → 산문마을 (양도초등학교→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느티나무 밑 →마을길) → 책방‘시점’      


              우리는 습관처럼 늘 먼 곳을 동경하며 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국의 어느 골목길, 멋진 문학관이 있는 유명 작가의 생가, 누군가의 사진첩엔 꼭 남아있는 도시의 랜드마크…. 그렇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리스트는 늘 먼 곳에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다정하게 옆을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마을에도 이웃에 같은 길을 오가는 작가가 있고, 이야기가 묻어있는 사람냄새 가득한 골목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강화가 인천에 있어서 참, 좋다. 강화에는 그림, 도예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어림잡아 300여 명이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인천의 보석 같은 문인인 김중미 작가와 함민복 시인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너른 강화의 들판이 빼곡히 곡식들로 푸름을 더해가는 6월, 이웃집에 놀러 가듯 책 속 이야기를 따라갔던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인천지역」선생님들의 강화 문학 산책길을 여러분과 함께 다시 걸어본다.        


읍내는 강화의 유일한 시가지다. 전등사가 가까운 온수리에도 작은 시장과 크고 작은 상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같은 청소년이 놀 곳은 마땅치 않다. 강화읍 터미널에서 내려 강화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우체국에서부터 피시방, 음식점, 카페, 프랜차이즈 빵집, 도넛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화장품 대리점 옷가게들이 쭉 모여 있는 번화가가 이어진다. 강화대로 양옆 상가 뒤로는 군청, 경찰서, 도서관이 있고 초등학교 두 곳과 여고, 남고, 여중, 남중, 사립고가 하나씩 흩어져 있다. 말하자면 이곳이 강화의 중심가다. 예전에는 강화 버스 터미널도 이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시장 뒤로는 오래된 여관이나 음식점도 많다. 또 강화초등학교 근처에는 고려궁지를 비롯한 고려 시대 유적, 철종이 한양으로 돌아가기 전에 살았다던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같은 유적들도 있다. (김중미, 『모두 깜언』 198쪽)     



딸기책방의 외관

               살문리에 사는 아이들도 마음먹고 나간다는 읍내에서 문학 산책을 시작했다. 강화는 특색 있는 동네 책방이 많기로 유명하다. ‘소금빛 서점’, ‘국자와 주걱’ 강화군청 뒤 동문안길엔 ‘딸기책방’이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동네길 낮은 파란 지붕에는 직접 출판한 그림책부터 책방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책들이 표지를 보여주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파란색 외관에 빨간색 간판. 강화 산책길의 첫 번째 방문지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김중미 작 가의 추천에 의해서다.

딸기책방의 내부

 『모두 깜언』의 주인공 유정이와 우주가 좋아했을 것만 같은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모여 앉아 책을 놓고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게 만든다.


               마을과 함께하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책방을 꿈꾸는 주인 부부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는 이곳은 그림책을 번역하고 출판까지 하는 그림책 전문 책방이다. 책방 한쪽에서 진행되는 그림책 작가 되기 프로젝트로 상상력의 기운과 진한 커피 향기가 공존하는 특별함이 느껴졌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근 중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마블사의 캐릭터 전시도 해보았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는 고충을 이야기하면서도 주인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모두 깜언』의 엄친아 ‘우주’의 아버지는 대한성공회 성당의 신부님이다. 늘 반듯하고, 뭐든 잘해서 인기가 많은 ‘우주’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어떠한 결핍도 없을 것 같은 ‘우주’에게도 신부님의 아들로 사는 고민과 내적 갈등이 드러난 부분을 읽다 보면, 누구나 각자 지고 있는 삶의 짐이 가장 무거울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1890년 영국을 출발해 인천에 도착한 성공회 선교사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한국문화의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려는 의지를 담은 성당을 강화에 여럿 지었다. 그중 강화읍의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독특한 건축물이다. 바실리카식 내부 구성과 한식 기와지붕과 목가구 외부 구조는 유럽 양식과 한옥이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목수의 손으로 중세 가톨릭 성당이 한국식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다. 100년이 넘은 목재와 장식품은 그곳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품고 있어서인지 낡았지만 기품 있고, 투박하지만 우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또 밖으로 나와 성당 담벼락을 따라 걸으면 소박한 강화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펼쳐진다.                              

조양방직 입구

               다음 산책길은 ‘조양방직’이다. 강화의 대표 지주였던 홍재묵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인조견방직공장으로 1934년에 운영을 시작해 1960년대까지 최고 품질의 인조작물을 생산 해서 강화를 섬유산업으로 널리 알린 계기가 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방직공장이었으나 세상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러다 빈티지 숍을 운영하던 분이 20년간 중국과 유럽 등지에서 모은 예술품들로 장식하고,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는 믿음으로 폐공장을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재봉틀이 밤낮으로 돌아가고 실밥이 연기처럼 날리던 방직공장이 멈춘 자리에 커피 기계가 자리하고, 일상의 고단함을 잊으려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높은 천장을 가득 채운 이곳에 잠시 머무르면 함민복 시인의 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한객기 대객기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함민복,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이제 조양방직은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만들고, 근심을 덜어놓는 곳이 되었다. 오래된 집을 허물어 함부로 새 건물을 올리지 않고, 다음 세대의 재해석으로 채운다면 과거와 현재를 이을 수 있고, 또 현재에서 미래를 볼 수도 있다. 조양방직을 둘러보며 인천의 오래된 동네의 내일도 그리 딱딱하지 않을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      


1928 고택

               일명 ‘1928고택’은 하와이 이민 1세 황국현이 귀국하여 1928년 강화에 지은 집으로 한국식과 일본식 가옥 구조가 절충된 2층 기와집이다. 김구 선생과의 인연으로도 의미가 있다. 1900년 이 집주인이던 독립운동가 김주경의 동생을 도와 3개월간 김구 선생이 머무른 곳이다. 당시에 김창수에서 김구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1947년 김구 선생이 다시 방문하여 안채 앞에서 기념 촬영한 사진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때 소창을 생산하는 가내공장이던 바깥채는 전통찻집 ‘남문로7 카페’와 그릇을 판매하는 ‘유림상회’, 그리고 ‘소금빛서점’이 자리 잡았는데, 면직에 수를 놓은 수공예품이 곳곳에 높여 있어 소창을 생산하던 시절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고택이 주는 안정감과 무게감을 가진 서점에는 강화 이야기를 담은 책을 특별 전시하고 있다. 책마다 직접 적은 소개 글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덧 책들이 두런두런 말을 거는 듯하다.


마을 입구

               본격적으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기 위해 양도면으로 이동했다. 유정이가 좋아한 계절, 봄과 여름 사이에 이 길을 걷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늘 하나 없는 시골길은 1킬로미터도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파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눈은 편안해지는 산책길이었다. 소설 속 배경이 된 산문마을은 진강산과 덕정산 사이에 자리한 조용한 마을이다. 살문리, 종개리, 흥천리는 행정구역명과 달리 마을 어르신들이 쓰는 옛 이름이다. 김중미 작가가 처음 살문리(삼흥리)에 들어와 살 때는 읍내에서도 비교적 떨어진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펜션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쓰레기가 생기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많아져서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많아진 상황이라고 한다. 우리는 양도초등학교에서부터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을 보는 순간, 우리는 ‘유정’과 ‘우주’가 된 것처럼 마음 어딘가가 간지럽고 몽글몽글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으면 마을회관까지 1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하지만 향긋한 들국화 향기를 맡으니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을에 들국화마저 없었다면 나는 허전한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 이렇게 노란 들국화가 만개하고 추수한 쌀이 농협 마당에 그득히 쌓인 것을 볼 때는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용내천 위로 호를 그리며 날던 노랑할미새마저 보이지 않을 때쯤, 놀이터 그네에 앉아 텅 빈 들판을 내려다보면 논둑과 길가에 핀 은빛 억새와 벌판 너머 고등어 빛 바다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그 빈 들판으로 까치와 까마귀 떼가 날아들기 시작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허우룩해진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딱히 누군지도 모를 어떤 이를 그리워하고, 노래를 듣다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눈물을 찔끔찔끔 찍어 낸다.

 “날씨 진짜 좋다. 나는 가을이 제일 좋아. 윤유정, 너는 어느 계절이 좋아?”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오던 우주가 물었다. 우주는 언제나 뜬금없다.
 “나는 봄이 좋아. 여름도 좋고. 가을은 뭔가 허전해.”
우주는 무안한 얼굴을 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뜬금없이 마을 정자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윤유정. 우리 저기 앉았다 갈래?”
“왜?”
  “더우니까. 그동안 저기 한번 앉아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쑥스러워서 못 앉았거든.”
 10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아직 오후 햇볕은 따갑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서 마을회관까지 걸어오는 동안 땀까지 났다.
  “좋아. 땀 식히고 가자.”

다행히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정자나무인 이 느티나무는 바로 뒤로 큰 밤나무가 있어 동북쪽으로는 나뭇가지가 뻗지 못하고 서남쪽을 향해 더 많이 뻗어 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평상 위로 그늘이 더 많아진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던 이 느티나무 아래 평상은 마을 아이들의 소꿉 놀이터였다. 또 무더운 여름에는 마을 어른들이 이 나무 그늘에 줄 서듯 앉아 바람을 쐬고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더러는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여름이 되어도 정자나무 아래가 썰렁하다.
나는 평상 대신 느티나무 아래 시멘트 턱으로 갔다. 울긋불긋 빛이 바래 떨어진 느티나무 잎을 손으로 쓸어 내자 우주가 가방에서 물휴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속으로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물휴지를 받아 손을 닦았다. 우주가 나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김중미,『모두 깜언』256쪽)       


마을 안 길


               둘이서 걸었던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왼쪽에는 용내천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감자, 파, 고구마들이 계절을 알고 저마다 꽃을 피우거나 이파리를 흔들어 주고 있었다. 나무, 풀, 작물들을 보며 서로 이름을 알려주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함께 걷는 재미가 있는 산책길이다. ‘우주’가 ‘유정’이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마을회관 옆에 큰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 한 그루 아래 자리를 잡고서 소설책을 폈다. 차 한 대 없이 산에서 퍼지는 새소리와 개울물 소리를 배경음 삼아, 접어 두었던 페이지를 낭독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우주’와 ‘광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유정’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간 부분이었다.


모두 깜언 속 느티나무 아래

               필사가 손과 눈으로 작품을 읽는 것이라면 낭독은 귀와 마음으로 읽는 재미를 준다. 글의 리듬이 느껴지고,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이 말로 전해지는 듯하다. 심지어 작품 속 공간에서의 낭독은 마치 우리가 ‘유정’과 ‘우주’가 되는 오묘하고 신기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헷갈리는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연애는 ‘우주’와 결혼은 ‘광수’와!” 라는 결론을 내고 몇 발자국 떨어진 다른 나무 그늘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떠오르는 숫자를 즉흥적으로 말해서 나오는 페이지를 낭독했다. FTA 때문에 고민하는 작은 아빠 이야기가 담긴 부분이었다. 김중미 작가는 사전 인터뷰에서 농촌의 현실과 그 안에서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꼭 쓰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0년, 강화의 한 농가에서 구제역이 시작되었다. 자식 같은 소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수천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그 농가의 농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큰 상처와 아픔으로 남았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김중미 작가는 소설에서나마 마을 사람들의 고민과 농촌의 현실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마을길을 걷다 만나는 주민 분들께 인사도 드리면서, 동네가 좋다는 진심 담긴 부러움도 건네다 보면 어느새 산으로 접어드는 두 갈래의 길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부터는 유정이네 집의 실제 배경인 김중미 작가 댁으로 가는 길과 산 중턱의 펜션으로 가는 길로 나누어지는데 두 곳 모두 사적인 공간이므로 여기서  산책을 마무리하고 돌아내려 왔다. 같은 길을 내려왔는데도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길은 이제 소설 속 배경일뿐만 아니라, 어느덧 우리의 시간과 의미를 담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책방 시점의 입구

               마지막 산책길은 강화도 소담 마을에 있는 책방 겸 북스테이, ‘시점’이다. 돌김, 부추, 우엉이라는 반찬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팟캐스트 ‘청춘의 책수다’를 나누고 있는 세 청춘들이 ‘모든 삶은 시가 된다’는 생각으로 만든 곳이다. 이들은 책방 한쪽에 함민복 시인의 서가를 따로 마련해 두고서 시인과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함민복 시인을 만났다. 시점(時點)이란 시간 속의 어느 한순간,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책과 함께 걷는 길의 마지막 시점에서 함민복 시인과의 만남은 강화를 걸어보는 새로운 시작점이 되게 해 주었다.


              강화에서 산지 20년이 넘은 시인이 일상을 보내며 시를 쓰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언가 한 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일이 시인의 삶인데, 한때 나무를 유심히 관찰했었다고 한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던 어느 날 반려견과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손을 내밀었는데 강아지가 그 손을 받아주지 않더란다. 실망감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단풍나무가 수천 개의 손을 자신에게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나무들의 손 내밂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시적 상상력의 확대를 경험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연이 삶을 둘러싸고 있는 강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순간 같다고도 했다. 시인의 시는 강화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다른 듯하다. 도시를 떠돌던 청년 시기의 날카롭고 예민함과 달리 강화에서의 시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아무리 커도
뭍보다 작음을 인정하는
섬은 늘 겸손하지요    
그러나
작음이 뭍보다 큰 섬은
산과 들판과 바다의 푸름도 도시보다 크지요
푸름의 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푸름의 뭍,
섬을 찾지요
섬 속에 뭍이 있고
뭍 속에 섬이 있어  
우리 섬 같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뭍이 되고 섬도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가지요
함민복, 「섬과 뭍」

 

책방 시점에서 함민복 시인님과 함께


               뭍에서 섬을 그리워하고, 또 섬에서는 뭍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동경은 책 두어 권을 들고 나선 산책길에서 조금씩 채워졌다. 도시의 높은 건물 사이에서 지친 마음은 낮은 울타리가 길인 강화에 와서야 산과 들판과 바다의 푸름으로 위로받았다. 우리가 걸은 곳 말고도 강화 곳곳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대문호 이규보의 흔적을 따라 가도 좋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을 탐구하는 길도 있다. 두 왕의 유배지이자, 한국전쟁 당시 대량학살의 아픔도 서려 있다. 지금은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터를 잡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적 영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또 사계절 모두 다채롭기에 좋아하는 계절 어느 때나 찾아가면 그 계절을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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