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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가장한 영화일기
by 펭귄씨 Apr 14. 2018

나는 아직도 그날의 바다를 기억한다.

<그날, 바다>



 한 편의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분명 저마다 다를 것이며, 사실 그래야만 하는 게 옳은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나에게 영화를 보는 일은 관찰자가 바라본 세계를 받아들인 몸의 기록이며, 감상을 적는 건 망각과 기억의 충돌에도 살아남은 잔상들을 재배열 하는 사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그날, 바다>를 이야기함에 앞서 굳이 고백해야만 하는 까닭은, 나의 방식으로 이 영화에 다가가는 데 실패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따라서 <그날 바다>의 내용을 직접 언급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일이 아닌 듯하다. 아마 몇 번을 다시 보더라도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세월호의 어떠한 이미지들과 마주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게 시간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날, 바다>를 보겠다. 마음먹었던 이유는 어느 시점부터 내가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피해왔었고 또한 잊어왔다는 점에 있다. 또한,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의 진실이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있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감과 죄의식에 근거한다. 그러니 <그날, 바다>에 대한 어떤 개인적인 평가를 늘어놓는 건 내겐 다분히 쓸모없는 일이다. 그보단 나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이 영화가 담아온 시간과 나의 지난날을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싶다. 그게 내가 이 영화에 그나마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자, 희생자들에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애도이다. 그리고 나처럼 세월호 사건과 <그날, 바다>를 마주하기 힘들어하는 분들께 그래도 마주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라 나는 믿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할 당시의 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주변인이었다. 또래에 비교해 늦게 시작한 대학 생활 탓에 가깝게 지내는 이는 얼마 없었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한동안 그걸 좀 부끄럽게 여겼다.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이었지만, 당시 1학년이던 내겐 막연한 희망이 존재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나는 의무경찰로 복무했으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에 전역했다. 부푼 마음으로 캠퍼스를 거닐 무렵, 얼마 전까지 함께 일상을 나누던 친구들은 시위의 현장에 투입돼 있었다. 다시 말해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방관자로 있던 상황의 내게, 세월호 사건은 이 두 곳을 모두 포괄하고 있던 국가란 거대 사회에 던져진 어떤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학교와 경찰이란 두 사회 내부에 속하진 못했지만,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이 마주했던 충격을 똑똑히 지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한 공간에 놓여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말 이상한 감정을 자아냈다. 비슷한 또래들의 충돌로부터 내가 목격했던 건 슬픔이나 죄책감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 어떤 괴이한 거리감이 형성되고 있는 하나의 광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이 둘은 서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바로 공포와 피로였다.


 나는 아직도 학교 건물마다 붙여져 있던 수많은 노란 리본과 포스트잇을 기억한다. 그곳에 적혀있던 ‘미안합니다’란 문구는 희생자들을 향한 사죄의 언어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간절한 선언처럼 보였다. 그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점차 떠나갔지만, 분명한 건 각자가 지탱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필사적으로 버텼다는 걸 적어도 나는 기억한다. 왜 버틸 수밖에 없었을까. 아마 그건 ‘미안합니다’란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전해지는 어떤 질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혹은 ‘정말?’과 같은 가혹한 질문들. 내게 그건 타인에 의해 전해지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에서부터 느껴지던 무력감에 근거했었다. 내 얄팍한 공감이나 슬픔이 초라하게 숨어버렸던 건 바로 그 무기력증으로의 도피였을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의경인 친구들이 마주했던 공포와 피로감은 분명 시위를 노동으로 여기게 됐을 때부터 발생했다. 왜 하필 노동이냐 묻는다면, 그렇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어떤 집회든 반복해서 벌어진다면, 그걸 막아선 사람에겐 그저 하나의 피곤한 일과에 지나지 않는다. 버스에 앉아 대기하는 동안에도 언제 무전이 터져 시위대와 맞닥뜨리지 않겠냔 불안감. 그리고 정말 시위대를 마주했을 순간에 전해 받는 질타와 폭력은 한 사람이 감내하기엔 너무나 버겁다. 휴일은 사라졌고 언제쯤 밥을 먹어야 할지 잠을 잘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조금 뻔뻔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정말 버거운 건 이 일이 내일도, 모레도 반복해서 이어질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자포자기의 동기로 전환된다는 데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의 반복, 이로부터 느껴지는 무력감과 피로감, 그것이 결국 ‘지겹다’란 말로 내뱉어질 수밖에 없음. 을 당시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세월호 사건에 관해 지겹다고 말할 때, 화가 났지만, 온전히 반대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지겨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그날, 바다>를 온전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건 내가 비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지난 4년 동안 그 지겨움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기록이다. 영화의 이미지는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 총수의 동선을 따라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김어준 총수에게 불거진 최근의 문제들을 근거로 들어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세월호에 보내온 시간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 그들의 지내온 시간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건 다시 말해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던 순간들과의 재회를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바다>가 과학적으로 증명해내고자 한 사실은 모두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했다. 누구의 기억이겠는가. 바로 그날 배에 탑승해 있었던 사람들, 혹은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가족이다. 나의 기억과 그들의 기억 중, 누구의 기억이 더 꺼내놓기 힘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게 내가 <그날, 바다>를 온전히 볼 수 없더라도 봐야만 했던 이유이다. 내 비겁했던 시간을 고백함으로써,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분들이 이 영화로 세월호 사건과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작가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모든 권력에 대한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 세월호의 진실은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할 때 비로소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다시 기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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