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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Oct 01. 2022

직장인, 나를 지켜주는 관계 맺기

워킹맘의 직장생활, 돌아가는 길에도 풍경은 있다.


2021년 하반기 근무평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부서에서는 1번이라는 성과가 매겨졌고, 매번 육아 휴직을 문제 삼던 찐-꼰대 부장님의 방해도 없었습니다. 승진 순위가 공개되었고 1순위라는 성적표를 받았지만, 문제는, 우리 부서에 승진 TO(Table of Organization)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2년 후에나 생길 TO를 생각하면,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이 조직에서 조심스럽게 퇴사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돌이켜 준 건, 팀장님이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다른 부서에서 일해본 경험으로 볼 때 나의 성과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TO를 얻어낼 수 있다며 조직에서 나의 존재 이유와 응원의 말들로 죽어가던 나를 살려 내었습니다.



"그래. 밑져야 본전-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12월 한 달을 준비했습니다. 지난번 승진에서 밀려 힘들었던 나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적어 사장님께 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그러한 과정 중에 마침 내년도 프로젝트 예산까지 확보되어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인사팀장님을 만났습니다. 사무적이고 이성적인 팀장님은 승진에 관해선 '인사위원회 소관이다'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 고충에 대한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인사권자를 설득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팀장님께서 심도 있게 검토해달라고 간곡히 청했습니다. 사장님과 인사 팀장님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살펴보겠습니다"였습니다.


부서 간에 TO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 날, 답답한 마음에 전에 함께 일했던 팀장님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나의 찐-친인 두 팀장님은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겠다" 고 의지를 불태웠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술자리에서의 객기(?) 정도로만 생각했다지요.


인사위원회 당일, 두 팀장님은  위원장을 찾아갔습니다. "같이 일해봐서 아는데~ "라며 조직에서 저의 존재가치를 어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서야 알게 됐지만 현재의 팀장님은 소리 없이 인사팀장님을 만났고 "고생한 우리 직원 승진 안 시켜주면 나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하더군요.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며 인사위원회 30분 전, 팀장님이 위원장을 만나러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확보한 예산으로 내년도에 해야 할 프로젝트를 알려야 한다며~~ 위원장님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위원회 전, 잠깐이라도 면담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ㅠㅠ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고, 주변에 많은 선배님들이 마음을 다해 함께 해 주었던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날 옥상 쉼터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아쉬운 마음을 그냥 둘 수 없어 "위로주 사쥬세요~ 오늘 저녁 한잔해요~" 하며 팀장님 이하 팀원들과 저녁 약속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인사예고가 떴나 봅니다. 찐-친인 두 장님들이 숨을 헉헉 대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손을 잡아채  "됐다"라고 하셨습니다.(그 손의 온기와 마음 저 깊은 데서 올라온 울림 있는 '됐다'라는 말이 각인되어 계속 생각남)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나에게 예고가 떴고 바람대로 우리 부서의 TO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애가 타게 나를 찾았고, 팀장님과 팀원들 모두에게 전화했지만 어느 누구도 연락이 안돼 옥상쉼터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지요. ㅠㅠ


확신은 이르지만, 일단 TO가 생겼다는 게 중요했습니다. 승진 순위 1번이라는 성적표가 있기에 가능할 거란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그날 저녁의 술자리는 위로주가 아닌 축하주로 변신했고, 술맛은 참 달달했다지요. 제 인생, 참 버라이어티 합니다. :)

그날의 안주는, 맛집으로 소문난 "돼지 세 끼"라는 곳의 모둠 고기였는데 안주가 영~~ 줄지가 않았습니다. 대신 팀장님과 함께 사장님부터 인사팀, 인사위원장까지 만나는 과정 속에 가슴 졸이며 애탔던 우리의 노고들이 최고의 안주거리가 되었다지요. 술자리가 끝나고 보내온 팀장님의 문자도 얼마나 감사했던지~~♡




작년, 복직 후 미친 듯 일을 했습니다. 한 번에 너무나도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화장실을 갈 때도 뛰어서 갔다 오고, 어떤 때는 일정에 못 맞출까 봐 마우스 잡은 손을 떨어가며 일을 추진했습니다. 스트레스에 마음이 짓눌려 새벽에 깨어 날이 샐 때까지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승진을 앞두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강박감이 저를 지옥으로 몰았고, 이 지옥 같은 일상이 끝나지 않고 지속될까 봐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인사의 승진 실패는 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했습니다.(실은 개미같이 일해서 뭐해~ 그렇다고 승진을 빨리 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부정적인 말들로 시작했지만)  덕분인지 일을 줄이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수용했습니다. 상사가 주최하는 부서 내 회식, 관계를 위해 참석해야 하는 내키지 않은 모임까지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미움받을 각오로 오직 "나"라는 사람에 집중하며 나와의 약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일터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일도 중요하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일터에서의 관계가 결국 나를 지켜주는 힘이었음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몇만 있으면 충분히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자며~~^^


돌아가는 길에도 풍경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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