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를 올라가는 게 언제부턴가 꿈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가봐야 되지 않겠나! 하면서 벼르던 백두산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백두산은 간데없고 온통 장백산 뿐이었다. 우리 민족의 명산인 백두산은 북한 쪽의 동파(동쪽언덕)다. 중국 쪽에 걸쳐진 또 다른 이름 장백산은 서파와 북파로 오를 수 있었다. 북파를 이용하여 오르는 그 산은 온통 장백산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새겨져 있고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 백두산이여. 그 많은 사람이 오르고 찾는 산이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니.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이 지금 묵묵히 장백산을 오르는 한국인들의 마음이리라.
흰 눈 가득한 설산으로의 백두의 위용을 보기 위해 찾았지만 결국 백두산은 호락호락 내주지 않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확인했던 날씨는 맑고 밝은 최고의 날씨를 주어 더욱 들떠 있었다. 혹여 천지가 허락해 줄까 하며 조마조마했다. 헌데 잠시 후 들려온 소식은 천지까지는 못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들어가게만이라도 허락한 게 어디냐라고 위안하며 나섰다. 백두산은 바람이 불어 많이 춥다는 안내자의 말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메서 단단히 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전용셔틀로 옮겨 탄 후 중국 정부의 세심한 통제 속을 뚫고 차로 이동이 가능한 곳까지 이동한 후 눈 밭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염려했던 눈길의 미끄러움은 기우였다. 눈 자체가 우리가 평소 만나는 습설이 아니어서 미끄러움은 덜했고 그래서 더욱 선명한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눈밭을 걸으며 장난기 섞인 설렘으로 들뜬 일행은 장난치며 즐겁게 올라갔다
'천지까진 올라가지도 못해도 중간지점인 해발 2,300 정도의 비룡폭포(장백폭포)까지만이라도 허용한 게 어디인가.'
라고 애써 위안하며 벼르고 별러 찾은 천지를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달랬다.
실제로 우리 일행이 오른 후 바로 다음날부터는 강설로 산 전체가 봉쇄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천지가 대수가 아니었다.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백두산은 백번 오면 두 번 정도 허용한다 하여 백두산이라고 불렀다는 말을 들을 땐 농담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농담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숙연해졌다.
중간까지 오르는 동안 올려본 백두산의 모습은 그 위용에 절로 숙연해진다.
오전 해가 비치며 만들어낸 산의 음영은 얼굴을 베이듯 찬 바람에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한다.
태양빛을 받은 밝게 비친 주황빛 동쪽 바위 벽과 태양빛을 받지 못한 하얀 눈으로 덮여 아직 동트기 전의 청푸른 빛의 서쪽 바위벽의 대비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며 감탄사만을 하게 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힘든 절경이었다.
그래 천지가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는 건 어쩌면 지나온 삶의 반성과 앞으로 삶에 대한 겸양을 한 번 더 새기게 한다
중국 정부와 이도백하 지역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루 1만 명으로 입장 인원제한할 뿐 아니라 해발 2,300 비룡폭포 바로 앞까지 산장 인듯한 휴게소가 있고 비룡폭포까지 올라가는 길도 많은 인파가 함께해도 문제없을 만큼 안전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애초에 눈 쌓인 천지를 만나고 자하는 설렘으로 출발했던 여정이었지만 천지는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백두산 북쪽 언덕(북파)을 본 것만으로도 백두산의 위용과 '여전히 잘 있구나'를 확인하고 안심하고 내려왔다. '그래 언젠간 눈 쌓인 천지가 허용해 주겠지'라면서 다시 한번 허락을 구해볼 요량으로 다시 만날 날을 다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