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지 않고 계절을 앞장서는 나무
걷기는 사색이다
허리 펴서 걷는다. 아직 발밑등 명멸한다. 걷는 이들 두런대는 소리. 나뭇잎 툭 하고 손등에 인사한다. 왕벚나무 잎 바싹 말라 간다. 잎을 위로 살짝 만다. 전체적으로 봉긋한 승천의 꼴이다. 왼쪽 다리에서 마비증세로 저리기 시작한다. 아침 걷기가 제대로 안 된 날은 건조하다. 뭘 해도 비어 있는 듯 안절부절못한다. 엉치에 찌릿하며 전기가 온다.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의 제주도로 1908년에 학계에 보고 되었다. 왕벚나무는 일본의 국화이다. 일본에서는 기본종이 아닌 많은 교잡종을 육성해서 그 종류와 수량의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마루길에서는 뛰지 말자
어떤 이는 마루길에서 뛴다. 눈살 찌프린다. 누가 마루에서 뛰지?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달리기나 자전거는 인도와 자전거길이어야 한다. 굳이 시끄러운 소리 내며 걷는 사색에 위협이어야 할까. 다시 발밑등은 자동으로 꺼졌다. 여명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로그램 입력은 기계적이다. 조금의 감상도 개입되지 않는다. 왕벚나무는 벚나무 종류 중에서 꽃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 이른 봄에 무수히 달린 진분홍색의 봉오리를 맺을 때부터 화려하며 곱다. 고상하고 기품이 아름다운 연분홍색 꽃으로 수관 전체를 뒤덮는다. 그야말로 훌륭하고 장대한 광경을 연출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으로 들뜨게 한다. 움찔움찔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한다.
왕벚나무의 일상
봄부터 왕벚나무는 기쁨과 들뜸으로 계절을 차지했다. 꽃과 버찌와 신록과 성록, 녹음의 나뭇바람으로 충분했다. 가히 그 자리다웠다. 이제 옷을 새로 챙겨 입는다. 채비를 한다. 겨울을 맞이하고, 겨울을 떠내버릴 채비에 들었다. 꽃이 활짝 핀 후 바람에 날리며 눈처럼 떨어지는 꽃잎도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가 있어 빼어나다.
봄을 보내야 하는 심정과 맞물려 낙담의 미학에 빠져들게 한다. 꽃잎 떨어지면 곧바로 버찌가 맺힌다. 붉은 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가면서 익는 열매의 모습이 보기에 좋은데,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찌푸리게 된다. 바닥에 굴러다닌다고 할 정도로 많이 떨어진다. 발에 밟히는 일은 예사다. 잘 익은 열매는 까만 색을 지녔는데 즙액이 많고 단맛이 있지만 맛만 보고는 더 이상 먹으려 들지 않는다. 한번 입에 대 본 사람은 다시 입에 대지 않는 열매이다. 버찌는 그렇게 일상의 손길에서는 외면받고 있다.
계절을 순응하는 나무
자연에서 나무가 계절을 살아가는 건 생명력이다. 그 안에 모든 철리가 담겼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걷는 일도 잘 걸으라 했다, 뛸 때도 조심하라고. 하물며 현대를 사는 주행 본질의 삶에야 더 말할 게 있으랴. 그러니 변화하고 순응하며 계절을 달리 하는 나무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봄의 화려하고 기품 있는 꽃으로 주목받던 왕벚나무는 이내 버찌의 계절을 만나 밟히는 소리에 질리면서 평범한 일상의 나무로 되돌아간다. 언제 내가 그랬던가 싶게 얌전하고 의젓하게 뜨거운 여름을 이어간다. 이제 가을이 되면서 나무를 더욱 주목하게 된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계절의 순응이 훌륭하고 귀중하다고나 할까. 왕벚나무의 가을철 붉은 단풍은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한다. 다른 나무들보다 추위에 민감한 것이 분명하다. 추위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발달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왕벚나무 물들기 시작하면서 가을이 왔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제 단풍이 늦은 나무들도 서서히 가을맞이에 몰입하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저장된 기계적 프로그램이 두렵다
왕벚나무 밑을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저 늘어진 녹음도 노란색으로 시작하여 붉게 반짝이다 지는 것을 안다. 다들 알면서도 미혹에 빠지는 것이겠지. 발밑등에 저장된 네온사인의 기계적 프로그램이 부지불식간에 두렵다. 살아가면서 지니게 되는 신념이 더러 기계적 프로그램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저어한다. 어떤 신념은 한번 발 들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미궁일 것이다. 헤어 나온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 어쩌겠는가. 왕벚나무는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고 있지만 사실 맹아력이 약해 강전정을 꺼리는 나무이다. 공해에 약하니 병충해에 쉽게 노출된다. 병충해를 입으면서 수형이 보기 싫게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왕벚나무는 수명이 길지 않은 편에 속한다.
두루 우주가 협업하여 자연을 이룬다
왕벚나무가 계절을 어찌 알까. 두루 우주가 협업하여 자연스럽게 계절을 만든다. 계통 있고 체계를 세우는 일이니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자칫 왕벚나무 단풍만으로 가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풍이 만들어 내는 가을을 왕벚나무 하나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한다. 두루 적합한 생각과 상상력은 한 마디로 집어 내거나 똑같은 방향으로 끌어 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사고의 다양성과 지향의 차이를 왕벚나무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확장한다. 주말 아침 산책이 그래서 황홀하다. 꽃 피는 시기가 왕벚나무보다 조금 늦은 나무로 산벚나무가 있다. 거의 잎이 나올 때 같이 꽃이 핀다. 왕벚나무와 비슷하지만 산벚나무의 수피는 검은 밤색으로 진한 색감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