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일
모름을 받아들이는 용기, 다름을 이해하는 시작 (무농)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단순한 격언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우리의 한계를 조용히 드러낸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지식 안에서 세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생각이나 낯선 시선 앞에서는 쉽게 고개를 갸웃하거나, 때로는 외면하기도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틀렸다고 단정하는 일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수없이 보여주었다. 당대에는 괴짜로 불리며 외면받았던 이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생각은 불편함을 동반하고, 다수에게는 낯설고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상, 허균, 원효, 백남준과 같은 인물들이 그러했고, 서양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프리드리히 니체, 빈센트 반 고흐 등이 그 예로 거론된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문학가였던 이상은 지금까지도 난해한 작가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연구되고 재해석되는 존재다. 이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하기보다, 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안정을 느낀다. 이른바 유유상종의 원리다. 그러나 그 안락함에 머물게 되면 사고는 점점 좁아지고, 결국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마치 특정한 음식만을 고집하다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생각 또한 편식하게 되면 균형을 잃게 된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돌아보면, 내가 이해하는 세계는 내가 아는 만큼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 나와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기보다, 아직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당장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배움의 출발점이다.
모름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부족함의 고백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 위에서 우리는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내가 모르는 것들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앞에서 배우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