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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Oct 26. 2024

그 사람은 왜 그럴까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

남편에게 화가 난다.

시작은 오후 여섯 시, 아이가 하원할 시각이었다. 나는 오늘 할 일들을 마치고 아이가 하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남편의 전화인데 아이에게 무언가 말을 하라고 시킨다. 나는 그때부터 조금 답답해졌다. 그냥 남편이 말하지 싶었던 것이었다. 아이는 이 말 저 말을 하면서 한참을 뜸을 들였고 남편은 빨리 말을 하라고 재촉했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은, 김밥을 사 가지고 갈 거고 병원을 들렀다 갈 것이라는 말이었다. 알겠다고 하자 남편이 말했다.

"엄마 김밥도 살까?"

"나는 된장찌개 먹을 거야."

"그러니까 김밥을 사 말어? 김밥을 먹을지 안 먹을지를 물어봤잖아."

또다시 답답해졌다. 된장찌개를 먹을 거라고 하는 거면 김밥을 안 먹을 거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다시 묻는 거고, 대답을 잘못 했다고 하는 것은 뭘까. 

"김밥 안 먹어."

"그러면 그렇게 말을 하면 되지. 된장찌개를 먹을 거라면, 김밥이랑 된장찌개를 먹는다는 건지, 된장찌개만 먹는다는 건지 모르잖아."

그의 억지 주장에 나는 결국 팩폭을 날려 버렸다.

"그런데 김밥이랑 된장찌개를 같이 먹을 거면, 김밥 먹을 거냐는 말에 된장찌개 먹을 거라고 답을 안 하지. 김밥을 안 먹을 거니까 된장찌개 먹을 거라고 말을 하지."

남편은 짧은 침묵 후에 물었다.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야?"

내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을 잘 못 알아들었으면서 대답을 가지고 내 탓을 하더니 이제 팩폭을 날리니까 내 말을 완전히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리고 이 대화 다 녹음되고 있어."

내 말에 남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밥을 먹었다. 내가 기껏 된장찌개 끓여 놓고 밥도 해 놨더니 자기 스트레스 받는다고 라면 끓여 먹는 것을 보고 또 속이 뒤집어진 것은 간단한 언급으로 넘어간다. 그 뒤에 또 사건이 벌어졌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가정 예배를 드린다. 그것은 교회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면 아이에게 상으로 달란트를 주기 때문이다. 달란트를 많이 모으면 나중에 좋은 선물을 받는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교회에서 준 교재로 교회에서 배포하는 동영상을 보고 간단한 활동을 하면 된다. 5분에서 10분 정도, 따로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준비를 하고 남편은 참여하다 말다 하고 보통은 아이와 내가 함께 예배를 드린다. 오늘이 그 예배 드리는 날이라서 내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오늘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한 남편이 말했다. 


"텔레비전으로 연결해."


휴대폰은 텔레비전으로 연결할 수 있다. 아이 눈 때문에 우리는 그러자고 합의를 한 상태라 나는 미러링으로 연결해서 텔레비전으로 동영상을 틀었다. 1분 남짓, 이야기와 함께 이러저러한 화면들이 나오고 동영상은 끝났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했다.


"그대로 둬."


그대로 두면 다음 영상이 나올 테고, 예배에 방해가 될 텐데. 나는 알면서도 또 남편과 예배 중에 이러쿵저러쿵 다투기 싫어서 시키는 대로 그대로 두었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다른 활동을 하는데 다음 영상이 저절로 재생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남편이 그대로 두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었다. 내가 휴대폰 연결을 해제하고 텔레비전을 껐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휴대폰을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고서


"그거 끄라고. 다음 영상 재생되는 거라고."


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러더니 기어이


"다음에는 내가 연결할게."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나는 꼭 내가 잘 못하니까 자기가 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그 결과로 다음 영상이 재생되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활동지의 글을 읽는데, 내가 줄줄 읽으니까


"그 다음은 아이가 읽어야지."


하고 남편이 또 참견을 했다. 나는 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고, 누르고 눌러서 화를 참고 나서 말했다.


"다음은 오빠가 다 해."


남편은 그제야 내가 화가 폭발할 지경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자신이 진행을 했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왜 자기가 연결하라고 했으면서 내 탓을 하는 것인지, 다음에는 자기가 연결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내 자존심을 뭉개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서도 김밥 먹냐는 말에 '된장찌개 먹겠다'라는 대답을 왜 못 알아듣고 대답을 못했다고 책망을 하면서 내가 팩폭을 날리니까 '싸우자는 거냐'는 말로 마무리를 짓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런 말들에 내가 왜 그토록 힘들어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남편이 힘들어진다. 남편의 대화법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지면 나빠졌지. 그의 대화는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장을 더 이해시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내가 왜 이렇게 속상해 하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만 하니 나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다르지 않다.


나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 만큼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왜 '김밥을 사 올지 말지 물어보면 김밥 얘기를 해야지'라는 말에 그토록 속이 상할까. '다음에는 내가 할게'라는 말에 왜 또 속이 아파오는가. 멀쩡히 대화하고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도 알고 보면 속이 다 곪아 있다. 나는 간극을, 화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해결하지 못하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이 관계를 마무리하게 되리라.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과 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십여 년이 넘게 나는 이해 받지 못했고, 그가 나라는 인간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 역시 그를 받아주지는 못 했던 것 같다. 그 까닭은 나 역시,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역시 그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한 것 같다.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저 혼란스럽고, 미치겠고,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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