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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3

사랑의 비대칭성

by 나무나비

“지금 뭘 하는 거야!”

곁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야고보는, 그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남자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허겁지겁 주워 담느라 누가 오는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야고보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야고보의 품에서 음식들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의 얼굴이 험하게 구겨졌다.

“하, 내가 일꾼이 아니라 도둑을 데리고 왔었군.”

“어, 어차피 안, 드시는, 거, 아닙니까, 다 버려두고 가셨길래.”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감히 나사렛 노동자가 세포리스 귀족의 집에서 도둑질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져서 채찍질을 당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남자는 야고보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뭐라고? 버려? 아무리 버린 거라도 너희 따위가 먹으라고 둔 건 아니야!”

남자가 소리를 질렀을 때, 어디선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예수였다. 야고보는 예수를 돌아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저 때문에 이런 꼴까지 당하게 만든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덧 야고보의 곁에 이른 예수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제야 야고보는 제가 손만이 아니라 온몸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장 나가! 로마 군인들 부르기 전에!”

남자는 예수와 야고보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호통쳤다. 야고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로마 군인들을 부르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으나 온종일 고생하고 무일푼으로 쫓겨나게 된 것은 서러웠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정말 남자가 로마 군인들을 부르게 될까 봐 야고보는 입술만 깨물었다. 그때 예수가 야고보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서는 야고보의 앞으로 나섰다. 그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공손하지만 어쩐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품위가 어린 눈빛에 야고보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상황에서 말을 잘못하면 더 최악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예수는 모른단 말인가. 말리고 싶었으나 딱딱하게 굳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 역시 의외의 반응이라는 듯 얼굴을 구기면서 예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이 동의의 표시임을 이해한 예수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잘못한 것이, 버려둔 음식을 취한 것입니까 아니면 버리지 않았는데 그 음식을 무단으로 가져온 것입니까?”

남자의 뺨이 씰룩거렸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거의 예수의 코가 닿을 정도로 삿대질을 했다.

“어디서 말장난을 할 생각이야? 버리든 버리지 않았든 이건 우리 음식이고 너희는 도둑질을 한 거야! 이놈들이 아무래도 로마 군인들한테 채찍질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야고보는 손가락을 들어 살짝 예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만하라는 의미였다. 로마는 유대의 가난한 시골 노동자에게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이 채찍질을 당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감옥에 갇힐 지도 모르고, 채찍질만 당한다고 해도 몸이 회복될 때까지 돈을 벌 수가 없어 가족들이 모두 굶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야고보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전히 차분한 태도로 남자를 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버렸다면 도둑질이 아니고 버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키는 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저희 책임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희가 정당하게 받을 품삯마저도 주지 않으려 하시니 그것이야말로 저희 것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예수의 태도는 시종 공손했으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예수의 눈을 피했다가, 제가 그러는 것에 화가 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도둑질 한 주제에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썩 꺼지지 않으면 진짜로 로마 군인을 부를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불러 주십시오. 하지만 저희가 받을 품삯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아야겠으니 이 집의 주인 되시는 분도 함께 불러 주십시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야고보는 놀랐다. 비로소 그가 끝까지 굽히지 않고 당당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상 남자는 이 집의 청지기일 뿐이고, 주인은 따로 있었으니 뒷마당 정비에 대한 돈도 따로 책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예수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남자의 뒷주머니로 들어갈 것임은 너무도 자명했다. 처음부터 남자가 그들을 쫓아내고 말고 할 권리는 없었던 것이었다. 야고보는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으나 예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야고보에게 죄가 없음을 변호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나사렛 출신이 랍비 학교라도 다닌 거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가서 나머지 일해, 일해야 돈을 줄 거 아니야!”

남자는 버럭 고함을 지르고는 몸을 돌려 가 버렸다. 예수는 고개를 숙이며 일부러 큰 소리로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야고보는 차마 예수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예수가 아무리 저를 위해 그렇게 말을 해 주었다고 해도, 저 때문에 형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음을 야고보는 알고 있었다. 야고보는 조용히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함께 작업을 한 마당에 들어서자 참았던 숨이 내쉬어지면서 야고보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길게 흘러 떨어졌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야고보를, 예수는 조용히 다가와 안아주었다. 들썩이는 어깨를 다독이는 예수의 손도 그제야 떨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집안에서는 노랫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 깔깔거리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예수와 야고보는 함께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일을 끝내고 예수와 야고보는 집에서 나왔다. 그들의 몸에서 쏟아진 땀으로 옷과 신발까지 모조리 축축해져 있었다. 그러나 세포리스의 그 흔한 어느 목욕탕에서도 그들은 씻을 수가 없었다. 감히 가난한 나사렛 사람이 세포리스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땀에 포함된 소금기 때문에 몸이 따끔거렸다. 예수는 오늘 번 돈을 세어보았다. 생선을 사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서두르자. 네가 좋아하는 생선 사러 가야지.”

그들은 오전에 갔던 세포리스 시장에 이르렀다. 무자리(틸라피아라고도 하는 갈릴리 바다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몇 마리를 사서 광주리에 담았다. 나사렛에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동생들이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몸을 씻고 마당으로 나갔다. 좁은 마당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예수는 사온 생선을 직접 구웠다. 생선 냄새가 온 마당과 집안에 퍼졌다.

마리아가 곧 빵과 올리브, 그리고 말린 무화과를 가지고 왔다. 예수도 다 구운 생선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조촐하지만 그래도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함께 즐기는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예수는 구운 생선을 동생들과 어머니께 나누어 주었다.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작은 생선 토막으로도 모여 앉은 이들은 모두 행복해했다.

식사가 끝났다. 달이 유난히 밝은 밤. 예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야고보부터 막내인 안나까지 모두가 기다렸다. 예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다 아는 이야기도 금세 빠져들게 만들었다. 주로 회당 학교에서 배운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를 해 주었으나, 전해져 내려오는 우화나 스스로 창작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안나가 쪼르르 예수에게 다가가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예수는 안나를 한 팔로 안고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에 입을 열었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집안에 들어온 그들은 자리를 펴고 제가 입었던 겉옷을 덮은 채 잠이 들었다. 예수도 이야기를 듣는 도중 잠이 든 안나를 안은 채 그녀를 조심스레 방에 눕혔다. 그리고 저도 제 자리에 누웠다. 야고보는 예수의 옆에 누워 있었다. 곧 깊은 숨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야고보는 가만히 눈을 떴다. 피곤한데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누군가 툭툭 어깨를 건드렸다. 돌아보니 예수가 그를 보고 있었다.

“나가자, 바람 좀 쐬고 오자.”

야고보가 집밖으로 나가자, 예수는 벌써 야고보가 앉을 의자까지 마련해 두고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예수의 말대로 밤이 되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라도 오려는 듯 하늘도 어두컴컴했다. 야고보는 의자에 앉았다. 바람을 맞아도 마음이 시원해지지는 않았다. 아직도 낮의 일들이 무겁게 마음을 덮고 있었다. 예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야고보는 알았다.

“왜, 안 자고 있어?”

어색하게 입을 열자 예수가 야고보를 돌아보았다.

“너는?”

야고보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뙤약볕에서 한 일은 고되었다. 예수도 많이 피곤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를 생각해서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을 야고보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냥, 낮의 일이 생각나서.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야고보는 계속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을 꺼내었다. 무겁게 가슴을 누르는 것은 죄책감이었다.

“늘, 그랬어. 형은 든든한 집안의 가장이고 요셉은 일을 잘하고 유다는 계산이 빠르고, 모두들 훌륭한데 나만 늘 모자랐어. 오늘도 결국은 그렇게 됐고.”

고개를 숙이는데 그런 야고보의 머리 위에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든 야고보는 제 머리에 손을 얹은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예수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예수의 눈에 안타까움과 애정이 어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는.”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늘 밥만 축내는 사람인걸. 야고보는 속엣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다시 긴 한숨을 내쉰 후에 말을 이었다.

“형이 아니었으면 일당도 못 받고 쫓겨날 뻔했어.”

“너는 날 챙겨주려고 그랬던 거잖아.”

손을 내린 예수가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말했다.

“만약 아니었으면 거기에서 혼자 먹고 왔겠지. 싸 가지고 오려고 하지 않고.”

야고보는 눈을 크게 떴다. 예수의 말이 사실이었다. 야고보는 예수에게 하나라도 먹이고 싶었다. 그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나 혼자 먹어?”

“배가 고프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너는 한 번도 너 혼자만 챙긴 적이 없어. 늘 네가 가진 것을 나누려고 했고, 먼저 동생들이나 나를 챙겼지. 넌 그런 사람이야, 야고보.”

예수의 말에 야고보는 말없이 눈만 깜박거렸다. 가슴이 몽글거리면서 눈이 뜨거워졌다. 괜히 부끄러운 꼴을 보일 것 같아서 그는 억지로 웃고는 말했다.

“그거야 형이 마음이 좋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리고 형이야말로 늘 동생들만 챙기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 양고기를 보고 갑자기 형 생각이 나서.”

야고보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전에도 유월절 식사 때에 동생들하고 어머니께만 양고기 나누고 혼자 안 먹었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랬던 거지, 이게 다 형 때문이야. 형이 안 그랬으면 내가 양고기를 왜 훔쳤겠어?”

매년 유월절 때마다 먹어야 하는 음식 중에는 양고기가 있었지만, 가난한 형편에 매년 챙길 수는 없었다. 양고기도 한 마리를 잡을 수 없어 친척과 나누는데 그 작은 고기를 많은 동생들과 다 나눌 수 없어 예수는 아주 적게 먹거나 먹지 않곤 했다.

“그래 다 나 때문이다.”

예수는 웃으며 야고보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이제 마음이 좀 풀렸어?”

야고보가 마주 웃자 예수는 다시 손을 들어 야고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야고보.”

예수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야고보도 고개를 들었다. 까만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네 능력을 너무 작게 생각하지는 마. 너에게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것들이 많이 있어.”

모두 훌륭한데 나만 모자라다는, 야고보의 푸념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었다. 야고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형이라면 몰라도.”

“네가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분의 손에 들리면 크게 사용될 수 있어. 그러니까 야고보,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야. 적어도 나에게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사람이야.”

예수의 말 하나하나가 야고보의 가슴에 깊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꼭 하늘에 떠 있는 별 같아서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며 야고보를 지켜줄 것 같았다. 야고보는 대답 없이 입을 꾹 다문 채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입을 떼면 참았던 것이 아깝게 소리 내어 울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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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네요. 미리 써 두었던 거라 오늘까지는 매일 올렸지만 내일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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