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쓰기 전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내가 여기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신성모독이 되지 않을까 등을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
하지만 오히려 쓰면서, 이것이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고 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야고보가 극한 갈등을 빚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은 겪은 일일 겁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이 다른 거죠. 저 역시 겪은 일입니다.
껍질은 성경이었지만 실은 그저 사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은 이야기를 다 쓰고 나서 알았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를 사랑하기에, 그의 선택을 지지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그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죽은 후에 후회를 하는데 그것 역시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책하고 무너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신비가 깃들어요.
제가 이 시리즈를 계속 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십자가'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였고, 가장 가까운 형제의 눈으로 본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쓰다 보니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어요. 억지로 잇고 싶고 해결하고 싶었던 관계는 그 관계를 놓고 나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다소 진부한 교훈이 담긴 글이긴 하지만 그런 삶을 제가 또 살다 보니까 이 이야기는 저에게도 참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었네요.
아마도 이 시리즈를 이어서 쓴다면 다음 타자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될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입니다. '가야바'는 원래 이름이 아니고, 그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요셉 가야바죠. 가야바 역시 굉장히 그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전 대제사장 안나스의 사위입니다. 장인을 이어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쩌면 가야바의 집안은 그중에서도 한미한 집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뒤를 봐줄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르죠. 게다가 전 대제사장 안나스는 아들이 다섯이었습니다. 그 아들들도 짧게나마 모두 대제사장을 하게 되죠. 그들 사이에서 어떤 알력 다툼이 있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야고보 편에서 처음에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가, 요셉을 비롯한 형제들의 특징을 잡은 것은 가야바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안나스도 다섯 아들이 있거든요. 그 사이에 사위인 가야바가 낀 거죠. 야고보의 형제들과, 안나스의 아들들 사이의 가야바는 어떠했을지, 비교하는 재미가 또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쓰지 못했으므로 저도 아직은 모르겠네요.
이제 2025년도 저물어 갑니다. 어떤 한 해를 보냈든지, 아쉬운 것 이루지 못한 것 등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야고보가 죽은 형을 기억하던 십자가 뒤에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듯이, 2026년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변하니까요. 2026년에는 바라는 모든 일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뜻깊은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