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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l 17. 2024

신비로운 일의 시작 1

그날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되었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가 달란트 잔치를 한다고 꼬셨다. 달란트 잔치라는 것은, 교회 출석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달란트'라는 것을 주고 특정한 날에 그 달란트로 학용품 등등을 사도록 하는 교회 잔치다. 그런데 그 친구의 선생님은 독특하게도 매주 달란트 잔치를 하셨다. 매일 그 많은 물건을 들고 다니시면서 가지고 있는 달란트로 물건을 사게 하셨는데, 솔직히 배운 것보다 무슨 물건을 사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더 강렬하다. 결국 나는 물건을 못 사서 그 선생님이 내 달란트를 가져가서 그에 해당하는 학용품을 사서 안겨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 중학교 때 이사를 가서 교회를 가지 않았다가 다시 고등학교 때 자발적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 후로는 지금까지 계속 다니고 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알겠지만, 다닌다고 다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마음은 없이 '안 가면 왠지 혼날 것 같아서' 주일에 두 시간 정도 시간 보내고 오는 적도 많았다. 실은 거의 재작년까지는 그런 상태였다. 그러다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조금씩 회복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회복은 바로 올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올해 3월에 있었던,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1일 수련회에 참석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그 수련회에서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경험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수련회에 다녀오고 나서는 나름 힘든 부분도 있었고, 고민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련회에서 한 가지 결단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래도 교회 다니고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에 일정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대학에서 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교회에서 훈련 받으면서 하루 한 시간씩 기도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도 한 때라고 생각할 만큼 하루 단 5분도 기도하기 힘들어하는 부끄러운 기독교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처음은 하루 기도 10분이었다. 성경은 매일 한 장이라도 읽고 있었으므로 기존대로 유지하고, 거기에 기도 10분을 더했다. 그리고 처음 알았다. 10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 유투브 볼 때는 그렇게 짧은 10분이 기도할 때만 되면 거기에 0 하나를 더 붙인 것처럼 괴로워졌다. 하지만 운동도 익숙해지면 조금씩 고통을 잊게 되지 않는가. 10분은 점점 짧아졌다. 어느 날은 내가 기도 중에 엉엉 울고 있는데 10분이 끝나기도 했다.


나는 깨달았다. 하루 10분 기도는 위대하다. 내가 차마 쪽팔려서 교회에서도 하루 10분 기도한다고 말을 못 했는데, 10분이라도 꾸준히 하면 정말로 달라진다. 마치 시력 검사할 때 초점 안 맞는 풍차 그림이 초점이 확 맞추어지듯이, 아련했고 아주아주 멀리 있어서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존재가 점차 초점이 맞추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다.


어느 날의 셀모임이었다. 우리 셀모임의 셀원들은 한 여섯 명 정도 되는데, 그날은 나를 포함해서 셋만 모인 날이었다. 모인 사람이 셋이다 보니, 형식에 상관 없이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어쩌다 그랬는지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까요? 사약이 더 깔끔하지 않나?' 그런 웃기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나를 제외한 두 분 중의 한 분은 어릴 때부터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었고 또 한 분은 중간에 약간의 방황을 하다 돌아오신 분이었는데 모범적인 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방황을 하셨던 분이 웃으며 대답하셨다. '예전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필요했는지 알겠더라고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내가 아주 싫어하는 영화이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차분히 밝혀 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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